당원권 강화냐, 숙의 민주주의냐 이것이 문제로다

탁지영 기자

“정치부 기자들이 전하는 당최 모를 이상한 국회와 정치권 이야기입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오는 28일 새로운 지도부 선출을 앞둔 더불어민주당에서 당헌당규 개정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정지를 명시한 당헌 80조에 이어 권리당원 전원투표를 전국대의원대회 의결보다 우선한다는 당헌 14조의2 신설까지 의원들은 물론 당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지난 24일 당 중앙위원회 부결로 당헌 14조의2가 빠진 채 당헌 개정이 재추진되자 강성 당원을 중심으로 반발했습니다. 이 배경에는 ‘대의원의 권한은 줄이고 권리당원의 권리는 강화하자’는 당 일각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민주당은 당원의 대의 수단으로 ‘대의원’이라는 제도를 운영합니다. 모든 당원이 당의 운영이나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당 소속 국회의원, 지역위원장, 각 시·도당위원장 등을 대의원으로 삼아 당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대의원제는 영남 등 당원 수가 적은 지역의 가치를 보정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 권리당원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3·9 대선을 거치며 민주당 권리당원이 70만명대에서 120만명대로 대폭 늘었기 때문입니다. 대의원 한 표와 권리당원 한 표 간 가치의 차이가 커졌으니 권리당원 의사 반영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이에 전당대회 선거인단 중 대의원과 권리당원 비중이 각 45%, 40%에서 대의원 30%, 권리당원 40%로 바뀌었습니다. 당 일각에서는 대의원제가 계파정치의 수단이 돼 버렸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재명 당대표 후보와 친이재명계 의원들, 강성 의원 모임 ‘처럼회’ 소속 의원 등은 ‘당원 중심 정당’을 만들겠다며 권리당원 권리 강화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이들은 ‘의심’(국회의원의 마음), ‘여심’(여의도 정치인의 마음), ‘당심’(당원의 마음) 등 조어를 사용해가며 소위 여의도 정치와 당원 사이 괴리가 크다고 지적합니다. 최고위원 후보인 정청래 의원은 지난 25일 권리당원 전원투표 신설이 부결된 것을 두고 “‘당심’과 ‘의심’의 거리가 너무 먼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가 지난 24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민회관에서 열린 ‘경기도 당원 만남의 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가 지난 24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민회관에서 열린 ‘경기도 당원 만남의 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당대회 선거인단 비율 조정 등 지난 6월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가동된 뒤로 벌어진 논란은 모두 권리당원이 당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키워야 한다는 쪽과 팬덤정치 등 부작용을 우려해 이를 제어해야 한다는 쪽이 충돌해 발생한 것입니다. 당헌 14조의2가 부결된 배경에도 일부 강성 당원이 당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데 공감한 대의원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당헌 14조의2에는 당원 100분의 10 이상이 연서명해 발의하면 총투표를 실시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당내에선 이같은 논란이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 사이 균형을 찾기 위한 과도기적 모습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대의제를 택하고 있는 정당이 당원의 권한을 어느 정도까지 보장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최근 논란은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의 단점을 각각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라는 정치의 본질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의원은 “(일부 주장대로) 대의원제를 폐지하면 현실에 맞겠나. 과잉대표될 우려가 있다”며 “당원의 10%가 발의하면 전 당원 투표에 붙인다는 강제조항은 극단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한 중진 의원은 “민주당은 대의제를 택하는 대의원 중심 정당”이라면서도 권리당원이 증가한 현실에 맞게 “전 당원 투표의 요건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재명 후보도 지난 24일 경기 지역 당원·지지자와 만나 “대의원제를 존치하되 선출 방식을 바꾸고, 권리당원보다 몇십배를 부여하는 (투표) 비중을 조정하는 것을 의논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이 후보는 “잘못된 우중(愚衆)의 판단이나 결정이 아니라면 (당의 주인인) 당원이 합리적으로 요구하면 그걸 받아들이는 게 대리인들의 역할”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원이 주인인 민주당’을 주장하는 이재명 지도부가 오는 28일 출범한다면 당헌 14조의2를 재추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청래 의원은 지난 25일 “전 당원 투표제 등 권리당원의 권리를 강화하는 제도를 새 지도부 구성 즉시 개정 발의하겠다”고 했습니다. 권리당원 권리 강화 방식을 두고 친이재명계와 비이재명계 간 충돌이 계속될 전망입니다. 차기 지도부는 팬덤정치라는 비판을 어떻게 불식할 것인지 과제도 떠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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