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취임 100일, ‘방탄 프레임’ 갇히고···야당다운 의제 실종

김윤나영 기자    탁지영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이 대표는 민생 행보와 대여투쟁을 병행했지만, 윤석열 정부 국정 지지율 하락에 따른 반사이익을 크게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당이 총력 대응하면서 여당이 제기한 ‘방탄 프레임’에 효과적으로 반격하지 못했다는 자성이 나온다. 이 대표가 강조해온 민생 의제에서도 일관성과 진정성이 모자랐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대표는 노동·여성 의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에 실망한 유권자의 호감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지난달 22~24일 유권자 1002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민주당은 호감도 32%, 비호감도 59%, 국민의힘은 호감도 28%, 비호감도 64%였다. 대선 직후인 지난 4월 대비 국민의힘 비호감도는 52%에서 12%포인트 올랐지만, 민주당 비호감도는 59%로 변동이 없다. 한국갤럽이 지난 2일 발표한 12월 첫 주차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33%, 국민의힘은 35%였다. (두 조사 모두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민생을 강조했지만,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당과 분리하지 못했다. 지난 9월 검찰이 자신을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하자 검찰 소환 통보에 불응하고, 당내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를 설치했다. 지난달 21일엔 최측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당대표비서실 정무조정실장이 구속된 상황을 “검찰독재”로 규정했다. 당 대변인과 정치탄압대책위가 나서 측근들을 일제히 변호했다. 당내에서는 “측근들 혐의까지 당 차원에서 옹호해줘야 하냐”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대여 공세를 강화했다. 최고위원들은 이 대표를 겨냥한 수사의 편파성을 지적하면서 ‘김건희 여사 특별검사제 도입법’을 주장했다. 민주당은 지난 9월7일 김건희 여사 특검법안을 소속 의원 169명 전원 명의 당론으로 발의했다. 민주당은 10월25일 검찰의 여의도 중앙당사 내 김 전 부원장 민주연구원 사무실 압수수색에 반발해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집단 불참했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은 지난달 19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방탄 프레임’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 9월29일 윤 대통령 ‘외교 참사’의 책임을 물어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하자 ‘이재명 방탄용’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지난달 11일 돌입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국정조사를 위한 서명운동조차 ‘방탄용’으로 규정했다. 민주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책임을 물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와 강 대 강 대치를 강화하는 배경은 당의 의사결정이 강한 대여투쟁을 요구하는 강경파 당원들에게 끌려가는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윤 대통령 퇴진을 위한 장외투쟁을 요구하거나 이 장관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라거나, 성희롱 발언 논란으로 징계를 받은 최강욱 의원의 징계를 취소해야 한다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당원 민주주의를 강조해온 이 대표는 상황을 방관하고 있다. 이 대표로서는 가장 큰 우군인 당원들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이 대표의 리더십은 흔들리고 있다. 비이재명계 의원들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이 대표를 공개 비판했다. 이원욱 의원은 “최근 민주당 모습을 보면 사당화 현상이 걱정된다”며 “민주당의 팬덤 정치도 극에 달한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의원들의 반발에는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 없이 팬덤층의 요구에만 따르는 대여 전략을 짰다가는 총선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배어있다. 한 재선 의원은 “일례로 이 장관 탄핵소추안 발의는 참사를 정쟁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민생 문제에서도 일관성과 진정성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초과공급 쌀을 정부가 의무매입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민주당이 확실하게 책임지겠다”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노동계 숙원사업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에는 “사회적 합의”를 거론하며 한발 물러섰다. 이 대표는 여성가족부 폐지, 신당역 스토킹살인사건, 차별금지법에 대한 공개 발언을 삼갔다. 대선후보 시절에는 금융투자소득세 유예 불가 입장을 밝혔지만, 최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금투세 도입 재검토 방침을 시사했다.

이 대표가 당내 확고한 리더십을 확보하고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한 민생 전략으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트레이드마크였던 기본소득 의제도 대선을 거치면서 포기하는 등 이 대표와 민주당이 지향하는 정치가 무엇인지가 완전히 상실됐다”며 “이 대표 사법 리스크에 계속 반박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만든 프레임에 끌려다니고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가 당내 강경파에 휩쓸려가서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화물연대 파업 입법 대책, 평등법(차별금지법) 등 민생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검찰과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검찰 수사의 탄압받는 피해자가 돼야 여론도 이 대표를 동정한다”며 “이 대표는 민생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