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개발에는 찔끔, 기름값엔 펑펑… ‘사적 경비’ 의심도

2022 국회의원 정치자금 3사 공동취재

(3) 잘 쓴 의원도 있지만, 여전히 이상한 지출도

정책 개발 1만원이라도 쓴 의원은 35%에 불과

지난달 7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최저임금 인상 대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달 7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최저임금 인상 대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전세보증금 보호법, 고물가 대응, 기후위기, 화물노동자 안전운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이러한 현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고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데 모두 1043만원의 정치자금을 썼다. 심 의원의 2022년 전체 정치자금 지출액 1억6428만원에 비춰볼 때 적지 않은 규모(6.3%)다.

심 의원 같은 사례는 흔치 않다. 12일 경향신문·뉴스타파·오마이뉴스 공동취재팀이 2022년 국회의원 정치자금 지출액을 분석한 결과 1만원 이상이라도 정책 관련 비용을 지출한 의원은 전체의 35%인 108명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정책자료집 발간 등 홍보성 지출이 대다수다. 10대 분야별 지출액을 비교해봐도 정책 관련 비용은 2억28만원(0.5%)으로 꼴찌였다.

정책 개발에는 찔끔, 기름값엔 펑펑… ‘사적 경비’ 의심도

등록금, 학원비…자기계발도 의정활동인가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역할은 정책 개발과 입법활동이다. 국회의원은 입법활동비로 매달 120만원을 지급받는 데다 입법 및 정책개발비도 별도로 지원받는다. 그럼에도 정치자금을 활용해 정책 관련 비용을 추가 집행했다면 그만큼 정책에 신경을 더 쏟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교사 출신인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교육과정 문제, 장애인 교원 업무환경 개선, 사학법, 3D프린터 실태 등 교육 현안을 다루는 토론회를 여는 데 700만원 가까이를 썼다. 정책 비용은 아니지만 노숙인 시화전 가벽 설치비와 포스터에 610만원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동주 민주당 의원은 온라인 플랫폼 시장 연구용역에 500만원, K-ESG 관련 연구용역에 300만원을 썼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금융 관련 공공기관 기후공시 현황 과제 연구용역에 500만원을,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대응 국제포럼에 517만원을 지출했다.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은 첨단의료복합단지 균형발전을 위한 토론회에 771만원,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위한 토론회에 130만원을 썼다.

정책 개발에는 찔끔, 기름값엔 펑펑… ‘사적 경비’ 의심도

정치자금으로 대학원, 최고위과정 등의 등록금을 지출한 사례도 있었다. 본인의 자기계발을 위한 비용이라 할지라도 의정활동과 관련이 있다고 인정되면 정치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강선우 민주당 의원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환경미래전략과정 등록금으로 400만원을 썼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대 미래융합기술최고위과정 교육비로 400만원을 지출했다.

스피치 훈련 학원에 정치자금을 지출한 의원도 있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의정활동 역량 강화 교육 수강료’ 명목으로 220만원을 썼다.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은 ‘의정활동 관련 자기계발 비용’ 명목으로 130만원을 지출했다. 조정식 민주당 의원도 ‘언론 스피치 교육비’로 50만원을 썼다.

전기차는 남의 얘기, 주유비만 수천만원

기후위기 시대에 전기차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지난해 정치자금으로 전기차 충전 비용을 낸 의원은 심상정 의원과 윤영덕 민주당 의원 2명뿐이었다. 심 의원은 충전비로 229만원을, 윤 의원은 55만원을 썼다. 정치자금으로 주유비를 가장 많이 지출한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이 2348만원을 쓴 것에 비하면 큰 차이가 난다. 이어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2120만원,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1834만원으로 주유비를 많이 썼다.

국회의원은 매달 유류비 110만원, 차량유지비 35만8000원을 별도 세비로 지급받는다. 여기에 공무수행으로 인정되는 경우 유류비가 포함된 출장비를 별도로 받는데 의원 1인당 연평균 737만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정치자금으로 추가적인 유류비를 상당 금액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정치자금으로 주유비를 결제한 의원은 모두 238명, 총 13억9477만원을 썼다.

정책 개발에는 찔끔, 기름값엔 펑펑… ‘사적 경비’ 의심도

주유비를 제외하고 차량 구입이나 렌트, 유지비만 보면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이 5753만원으로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지역수행차량으로 팰리세이드를 매입하고 보험료와 취득세 등으로 4000여만원을 쓴 것이 컸다. 할부나 렌트 비용이 만만찮은 경우도 있었다. 김영주 민주당 의원은 ‘의정활동용 차량 할부’ 비용으로 매달 292만원, 지난해 통틀어 3505만원을 썼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의원님 차량 렌털료’로 매달 268만원, 연간 3216만원을 썼다.

교우회비·신도비, 백지신탁 수수료도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의 ‘사적 경비’ 지출을 금지하고 있다. 사적 지출에는 가계의 지원·보조, 개인적인 채무의 변제 또는 대여, 향우회·동창회·종친회나 동호회·계모임 등 사적 모임의 회비 및 지원 경비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를 어긴 것으로 보이는 의원들도 있었다.

김도읍·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구룡회’라는 모임의 회비로 각각 120만원, 80만원을 지출했다. 조명희 의원은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2022년 회비’ 명목으로 500만원을 지출했다. 김선교 전 국민의힘 의원은 고려대 교우회 회비, ‘카네기 33기’ 회비로 각각 20만원씩을 썼다. 엄격히 보면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적 경비 지출에 해당할 수 있는 내역들이다.

김도읍, 송석준 의원 측은 “사전에 선관위에 확인해서 문제 없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는 입장이다. 송 의원 측은 “구룡회는 현직 의원 9명이 모인 정치현안 모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10명 미만이어서 국회 연구단체에 정식 등록돼 있지는 않다. 조명희 의원 측은 “실수로 신도회 회비를 냈다가 선관위 지적을 받고 지난 4월 개인 경비로 환입했다”고 밝혔다.

정책 개발에는 찔끔, 기름값엔 펑펑… ‘사적 경비’ 의심도

백지신탁 수수료를 정치자금으로 지출한 사례도 확인됐다. 조명희 의원은 백지신탁 수수료로 2차례에 걸쳐 747만원을 지출했다. 유동수 민주당 의원은 백지신탁 보수료로 50만원을 썼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직무와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주식(3000만원 이상)을 보유한 공직자는 해당 주식을 팔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을 해야 하며 이때 수수료가 발생한다.

하지만 백지신탁한 주식은 거의 거래가 되지 않으며 공직 퇴임 후 돌려받는 일이 많다. 조명희·유동수 의원 소유의 주식 역시 지난 5일 현재 매각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특히 조 의원의 경우 본인이 주식을 보유한 업체의 사업과 관련한 민원성 질의를 하거나 해당 업체가 정부 사업을 수주받은 사실로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이처럼 사실상 본인의 재산을 유지·보관하기 위한 목적이나 다름없는 비용을 정치자금으로 지출하는 일이 맞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국회의원직을 갖게 되면서 백지신탁을 한 것이므로 가능하다고는 본다”고 말했다.

4381원의 격려금은 무엇?

규정을 어겼다고 보긴 어렵지만 비품이나 소모품 구입에 다소 많은 지출을 한 경우도 있었다.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은 ‘사무실 화분 분갈이동’에 57만원을 사용했다.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도 ‘사무실 화분 외 2종’에 37만원을,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 역시 ‘지역사무실 화분 분갈이’에 30만원을 썼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사무실 커피머신 원두 등 구입비로 8차례에 걸쳐 231만원을 썼다. 최강욱 민주당 의원은 의정활동 휴대전화로 아이폰을 사는 데 199만원을 썼다.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지출도 있었다. 조태용 전 의원(국가안보실장)은 ‘퇴직에 따른 직원 격려금’ 명목으로 4381원을 지출했다. 격려금이라고 하기엔 미미한 액수다. 주미대사 임명으로 탈당해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사용할 수 없게 된 남은 정치자금을 0원으로 맞추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휴대폰을 해킹당해 ‘불상의 타 계좌’로 95만원을 송금한 뒤 추후 60만원을 회수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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