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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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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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오부치 선언’ 조율, 최상용 전 주일대사

지난 25일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대해 “두 나라 정상 간의 신뢰가 돈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한·일관계는 더 이상의 악화를 막고 현상을 관리하는 차악의 수준은 넘은 것 같다”며 “역사갈등을 극복하고 EU(유럽연합)를 이끌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 모델을 염두에 두고 한·중·일 연합을 위한 하나의 주춧돌로 한·일 협력 모델을 우선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지난 25일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대해 “두 나라 정상 간의 신뢰가 돈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한·일관계는 더 이상의 악화를 막고 현상을 관리하는 차악의 수준은 넘은 것 같다”며 “역사갈등을 극복하고 EU(유럽연합)를 이끌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 모델을 염두에 두고 한·중·일 연합을 위한 하나의 주춧돌로 한·일 협력 모델을 우선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김대중 대통령의 대일 외교는 귀중한 자산이자 좋은 선례
당시 두 나라 정상 간의 신뢰 돈독했기에 공동선언 가능
박근혜·문재인 두 대통령의 실수로 한·일관계 악화돼

정치, 특히 외교 문제는 선과 악의 이분법으론 풀 수 없어
양국 정상 관계 개선 의지 공유…윤 대통령, 기회 잡아야

역사 문제 쟁점 있어도 경제·문화 교류만큼은 열려 있어야
역사 갈등 극복하고 EU 이끄는 독일·프랑스 본보기 삼아
한·일 협력 모델 만들어 한·중·일 연합의 주춧돌 놓아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해 한·일관계를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김대중·오부치 선언’(공식 명칭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1998년 10월8일 김대중 대통령(DJ)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서명한 합의문서다. 한·일관계를 우호협력 관계로 바꾸는 일대 전기가 됐다.

그러나 역사 왜곡과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는 지난 10년간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양국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일본은 이듬해 7월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경제성 보복을 했다. 국민감정도 최악으로 치달았다. 임박한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와 관련한 한국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양국 관계에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원로 정치학자인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80)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이하 공동선언)의 밑그림을 그린 주역 중 한 사람이다. 정치사상 분야 석학이자 일본통(日本通)인 그는 공동선언 당시 DJ 특별수행원으로 현장에 있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주일대사로서 한·일관계의 막전막후를 조율했다. 그는 ‘위기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해법을 제시할까. 지난 25일 최 교수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만나고, 29일 전화 인터뷰를 추가로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0월8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21세기 새 시대를 위한 공동선언 협정서’를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교환하고 악수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0월8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21세기 새 시대를 위한 공동선언 협정서’를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교환하고 악수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대한민국 외교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대미 외교와 김대중 대통령의 대일 외교는 귀중한 자산이고 좋은 선례로서 비중 있게 기록될 겁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외교와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평화 외교는 외교 현장에서 본보기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 판단의 사례 연구로도 매력적인 주제죠. 윤석열 대통령이 DJ와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합의한 공동선언을 계승하면서 현안을 풀어 나가겠다고 한 것은 적절한 정치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선언은 11개 항목의 원칙과 43개 항목의 행동계획으로 구성돼 있다. 핵심은 오부치 총리의 한·일 과거사 사죄, 정상회담 연 1회 이상 개최,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공조, 한국 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비롯한 양국 간 문화·인적 교류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중략)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痛切)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였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같은 날 오후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 국회에서 600명 이상의 일본 중·참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공동선언에 바탕한 미래비전을 설명했다.

- 1998년 공동선언은 어떻게 성사될 수 있었습니까.

“두 나라 정상 간의 신뢰가 돈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DJ는 나한테 두 차례나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부치 총리는 유덕(有德)하고 신뢰할 만한 분’이라고요. 오부치 총리는 DJ를 ‘존경하는 정치 선배’라고 말했습니다. 한·일관계에서 역사 쟁점은 변수가 아니고 상수입니다. 따라서 언제나 존재하죠. 공동선언 전후로도 일본의 대중문화를 개방하겠다고 하자 국민의 80%가 반대했습니다. 심지어 일본의 문화식민지가 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왔습니다.”

-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나는 DJ에게 문화 교류를 특정 시점에서의 우열 문제로 보지 말고, 상호 학습의 긴 과정으로 보자고 말했습니다. 백제는 말할 것도 없고 오랜 한·일관계에서 한국은 일본에 문화를 전수하는 입장이었잖습니까.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우리나라에서 금서라는 것은 그만큼 많이 본다는 것이니, 더는 막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렸죠. DJ가 결단했습니다. 나는 영단(英斷)이라고 봅니다. 그것의 결과가 한류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일본에서 한국드라마 <겨울연가>와 배용준씨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습니까.”

- 24년 전 맺은 공동선언이 오늘날 갖는 의미는 뭘까요.

“1998년에 맺은 협정이지만 11개 항목의 원칙과 43개 항목의 행동계획 거의 대부분이 공식 명칭 그대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입니다. 시대가 변했는데 24년 전 협정이 무슨 소용이냐는 이들은 공동선언의 내용을 잘 모르는 겁니다.”

원로 정치학자인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25일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최 교수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밑그림을 그린 주역 중 한 사람으로, 주일대사를 역임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원로 정치학자인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25일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최 교수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밑그림을 그린 주역 중 한 사람으로, 주일대사를 역임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한·일관계는 늘 뜨거운 쟁점이었다. 특히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2015년 박근혜·아베의 위안부 합의,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중요한 변곡점들이다. 박근혜·문재인 시기 위안부·강제징용 문제를 포함한 한·일관계 접근에 대해 최 교수는 어떤 비교 평가를 할지 궁금했다.

-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28일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는 이후 문재인 정부가 피해자 중심이 아니라며 보류했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해결이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이라며 2년8개월 동안 버텼어요. 2015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청와대에서 첫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고, 그로부터 한 달여 뒤 한·일 정부 간 12·28 위안부 합의가 체결된 겁니다. 그래서 참 안타까워요. 박 대통령이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위안부 문제는 완전히 해결될 수 있었다고 보거든요.”

- 어떻게 말입니까.

“박 대통령이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피해자들을 찾아가 이렇게 호소했다면 어땠을까요. ‘제가 대통령인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고 버텨왔습니다. 그러나 협정은 상대국이 있고, 서로 간 다른 의견이 있어 조율이 참 힘들었습니다. 제 노력을 조금만이라도 이해해 주시면 저의 결정을 따라주세요’라고요. 문재인 대통령은 더 큰 실수를 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국가 간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고 했어야 합니다. 두 대통령의 실수가 한·일관계를 악화시켰습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는 출발이 항일이었으니까요.”

- 그렇다면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의 바람직한 해법은 뭐라고 보십니까.

“위안부 문제는 2015년 한·일 합의가 있었기에 이후는 관리의 문제일 뿐입니다. 지금 가장 긴급한 현안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한·일 합의를 만드는 일이잖습니까. 우리는 민간협의회가 전담해 심도 있게 논의해 왔습니다. 핵심은 현금화와 (대위변제를 위한) 기금 조성, 일본 기업의 사과겠죠. 정말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악마의 디테일이 필요합니다. 그 결과가 한·일 외교당국 협상 테이블에 올라가겠죠. 한·일 정상이 관계 개선 의지를 공유하고 있는 만큼 지켜봐야 합니다.”

한·일 외교당국은 지난 8월26일 일본 도쿄에서 국장급 협의를 개최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 기업의 사죄문제 등 민관협의회 논의 사항을 일본 측에 상세히 설명했고, 일본 외무성은 “일본의 일관된 입장을 토대로 한국이 책임을 갖고 대응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다만 일본이 대화 자체를 거부했던 지난해와 달리, 양국이 확고한 관계 개선 의지를 갖고 의견 조율에 나선 것은 달라진 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일본은 한국 측이 제시하는 방안을 결국 받아들일까요.

“일본은 우리가 민간협의회라는 전담기구를 만든 것을 평가합니다. 한국 측이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방안들에 대해 일본은 일본대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겠죠. 사실 문재인 정권 때도 일본과의 신뢰가 형성돼 있었다면 징용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말기에는 정의용 안보실장 주도로 상당히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파기돼 국가 간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 정부와 국민, 이해당사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접근 방법은 없을까요.

“역사와 외교, 국민감정과 국가이익의 갈등 상황에서 정치인의 자질로 도덕성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치, 특히 외교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풀 수 없다고 봅니다. 외교현상은 가능한 최선, 즉 차선이면 충분합니다. 지금 한·일관계는 더 이상의 악화를 막고 현상을 관리하는 차악의 수준은 넘은 것 같습니다.”

- 한·일관계는 양국의 국내 정치와도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양국 정부에 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정치의 현장에서는 선순환보다 악순환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한·일 양국은 한·일 갈등을 자국의 국내 정치 자원으로 이용한 사례가 적지 않죠. 역사 쟁점은 악순환을 유도하기 쉽고, 경제교류나 문화교류는 선순환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평화 공존이 잘된 나라는 상호 경제 의존도가 높아요. 특히 청소년 미래세대의 교류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와 문화는 평화친화적인 영역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독도, 교과서 등 역사문제에 쟁점이 있더라도 경제와 문화의 교류만큼은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는 “그런 점에서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제조공정의 핵심 소재 3개 품목을 ‘화이트리스트’ 목록에서 제외한 데 이어 같은 해 8월 한국을 아예 화이트리스트 대상국에서 배제한 것은 한·일관계의 싹을 자르는 일본 정부의 중대한 패착”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었다.

최상용 교수는 “역사 쟁점은 악순환을 유도하기 쉽고, 경제교류나 문화교류는 선순환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며 “독도, 교과서 등 역사문제와 관련한 쟁점이 있더라도 경제와 문화의 교류만큼은 열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가 2019년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경제성 보복을 한 것은 한·일관계의 싹을 자르는 중대한 패착”이라고 비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최상용 교수는 “역사 쟁점은 악순환을 유도하기 쉽고, 경제교류나 문화교류는 선순환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며 “독도, 교과서 등 역사문제와 관련한 쟁점이 있더라도 경제와 문화의 교류만큼은 열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가 2019년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경제성 보복을 한 것은 한·일관계의 싹을 자르는 중대한 패착”이라고 비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 중국은 2010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고 미·중 갈등은 격화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90년 한국의 3.8배에서 지금은 1.1배로 좁혀졌고요. 또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현실이 됐습니다. 크게 변화된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한국은 어떤 외교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우리에게 미국과 중국은 양자택일 관계가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한 균형자 외교는 현실성이 없습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압도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러한 중심축이 견고해야 일·중·러와도 평화 공존할 수 있고, 우리에게 힘이 실립니다. 그것을 당당하고 일관되게 설명해야 상대국들도 대한(對韓) 외교정책을 짤 수 있습니다. 한·중·일, 한·미·일 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2019년 중국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뒤 개최되지 않고 있는 한·중·일 정상회의 재개를 박진 장관이 제안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특히 한·일 파트너십이 잘되면 미국에 대한 건설적 조언이 가능합니다.”

- 주일대사 경험자로서 바람직한 한·일관계 비전을 어떻게 제시하시겠습니까.

“두 나라 국민의 역량을 상호 인정하고 협력함으로써 윈윈할 수 있는 미래를 열어가야 합니다. 역사갈등을 극복하고 EU를 이끌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 모델을 염두에 두면 어떨까요. 중국까지 합친 동아시아 공동체(지역통합)가 어렵다면 한·중·일 연합을 위한 하나의 주춧돌로 우선 한·일 협력 모델을 생각할 때입니다. 한·중·일 3국의 GDP 규모는 세계의 25%에 달합니다. 그만큼 한·중·일이 뭉치는 것을 세계의 지도자들은 두려워합니다.”

- 윤석열 정부에 특별히 하고 싶은 제언이 있습니까.

“2022년 8월15일 경축사에서 밝힌 약속을 실천하기 바랍니다. 외교협상에는 언제나 합의하기 어려운 각론이 있기 마련이지만, 다행히 두 나라 정상이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랍니다.”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전 주일대사. 우철훈 선임기자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전 주일대사. 우철훈 선임기자

최상용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후 도쿄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부임 전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와 일본연구소 객원교수·연구원 등을 거쳤다. 대통령 측근 정치인이나 외무 공무원이 아닌 교수가 어쩌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밑그림을 그리고, 주일대사로 임명됐을까. DJ와의 인연을 묻자 그는 “내가 노태우 정부 시기 고려대 평화연구소장으로 있으면서 1991년 이토 히데코 등 일본 사회당 중·참의원 11명에 이어 1992년 프란시스 사이스테드 노벨평화상 심사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성사시킨 것에 DJ가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고 짐작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 정부는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에 적대적 태도를 보여온 일본 사회당 국회의원들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노벨평화상 심사위원장의 방한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 어떻게 일본 사회당 국회의원들의 비자 문제를 해결한 겁니까.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 저를 청와대로 불러 독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대화 속에 저는 소망이 하나 있다고 말씀드렸죠. 일본 사회당 중·참의원들에게 비자를 내달라고요. 안기부(현 국정원)가 공작을 해서라도 한국 쪽으로 유도할 일본 사회당이 제 발로 오겠다면 불로소득이 아니냐고 설득했습니다. 이후 외무부, 안기부, 심지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 핵심 실세들이 다 반대했음에도 노 대통령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 프란시스 사이스테드 노벨평화상 심사위원장은 4일간 서울에 머무르며 고려대에서 강연하고 판문점도 시찰했어요. 어떻게 방한이 이뤄졌습니까.

“‘냉전의 마지막 외로운 섬 한반도를 한 번 볼 필요가 없느냐?’고 제가 간곡하게 편지를 보내자 초청에 응했습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듬해인 1999년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도 고려대 초청으로 인촌기념관에서 강연했고, 내가 사회를 봤습니다.”

-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관련해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습니까.

“공동선언에 양 정상이 서명한 1998년 10월8일 오후 김대중 대통령은 600명 이상의 일본 중·참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공동선언의 정신과 내용이 담긴 국회 연설을 하셨습니다. 연설문에 ‘기적은 기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가 한국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기적임을 어떻게 표현할까 각고의 심사숙고 끝에 만든 문장입니다. 그 한 문장이 이튿날 일본 모든 주요 신문의 머리기사 제목으로 소개됐습니다. 뿌듯했습니다. 신문을 본 김대중 대통령이 만족해하는 웃음을 지으며 기뻐하셨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최 교수는 지난 60여년간 평화와 중용(中庸)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의 저서 <평화의 정치사상>의 영문판(<A political philosophy of peace>)은 노벨평화상을 심사하는 노벨위원회 부속도서관에 비치돼 있다. 또 다른 저서 <중용의 정치사상>은 지난 3월 <중용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출간됐다. 최 교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같은 주제를 다룬 마지막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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