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만 보느라…윤석열 정부, 잃어버린 대중국 외교 1년

박은경 기자

중, G7 정상회의 견제 메시지에 즉각 반격

한국에 유탄 우려에도 윤 정부 ‘일방통행’

국내 업체들 미·중 갈등 한복판에 내몰려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발리 한 호텔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발리 한 호텔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미국 주도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대중국 견제 한 목소리가 나오자 중국은 즉각 반격 조치를 쏟아냈다. 한국에 유탄이 튀지 않을지 우려가 커지는 데도 윤석열 정부의 경제·안보·외교적 위험 회피(디리스킹)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 일변도 외교로 대중 압박 선봉장을 자처한 윤석열 정부의 외교력은 한·중관계 관리를 두고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중국은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폐막일인 21일에 맞춰 개최국인 일본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같은 날 미 반도체기업 마이크론 제품에 대한 구매 금지라는 ‘맞불’ 조치를 내놨다. 이어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마이크론의 중국 시장 공급 감소분을 한국 반도체 기업이 채워주지 말라고 미국 측이 요구할 가능성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국내 업체들이 미·중 반도체 갈등의 한복판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미국의 편에 선 일부 국가들은 국익을 우선한 각자도생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을 세계 안보·번영의 최대 도전으로 규정한 G7 정상들조차 공동선언에 “중국과 디커플링(특정국 배제나 분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디리스킹과 경제적 탄력성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란 표현을 담으며 중국을 적대시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내세워 미국과 초밀착하고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갈등 구도의 나침반을 자처하면서, 이로 인해 야기될 위험을 최소화하고 국익을 최대화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다. 당장 코로나19 방역 정책 전환 전인 지난해 8월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박진 외교부 장관이 중국을 찾은 이후 각 부처 장·차관 등 정부 고위직 인사의 중국 방문은 전무한 상태다. 최용준 외교부 동북아국장과 방한 중인 류진쑹(劉勁松) 중국 외교부 아주사장(국장)이 22일 외교부 청사에서 한·중 국장급 협의를 했다. 이번 면담은 지난 1월 박 장관과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의 전화 통화 이후 양국 외교당국 간 첫 대면 소통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중관계가 최상의 시기와 최악의 시기를 거쳐 관계 회복을 꾀하는 중요한 시기에 출범했다. 중국은 윤 대통령 취임식에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오른팔’로 불리는 왕치산 당시 국가부주석을 보내며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전진하도록 노력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취임 열흘 후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실상 미·중 균형외교 폐기를 선언하고 ‘경제도, 안보도 미국’이라는 방향을 명확히 했다.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확정하고 지난해 11월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 아세안 정상회의 계기로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등으로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 대 비동맹국의 양자 구도에 뛰어들었다.

예상된 수순인 ‘중국발 후폭풍’에 대한 관리는 치밀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올해 초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우리 정부가 취한 중국인들의 단기 비자 발급 중단 조치는 양국 감정 악화의 도화선이 됐다. 이탈리아, 대만 등 다수 국가들은 2월 들어 중국인에 대한 방역 기준을 완화했지만 유독 한국만 비자 발급 중단 조처를 2월말까지 연장하자 중국의 화살은 한국을 향했다. 지난 4월 국빈 방미를 앞두고 가진 외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에 대해 “힘에 의한 현상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미 의회 연설에서는 중국이 한국전쟁에서 승리 토대를 닦았다고 주장하는 장진호 전투를 한·미동맹 상징으로 언급하고, 귀국 후 기자들과 오찬에서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면서 양국 감정은 더 악화됐다.

그동안 한·중관계를 지탱해 온 경제도 심상치 않다. 22일 관세청이 발표한 5월 1∼20일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을 보면 중국에 대한 수출이 23.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 수출의 감소세는 지난달까지 11개월째 지속 중이다.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외교 동력으로 삼기도 어려운 데다 양국 여론까지 악화돼 정밀한 외교 정책이 요구된다.

황재호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미국 밀착 외교 기조가 중국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외교적 테크닉을 발휘해야 한다”면서 “대만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 같은 미국의 표현 대신 한국만의 메시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 “한발 빠른 외교보다는 한발 늦은 외교가 한국에 유리하다”면서 “변화하는 국제 정세, 미국의 대선 결과 등 상황을 고려할 때 정책을 너무 빨리 결정하는 것은 되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0~11일 설리번 보좌관과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의 오스트리아 빈 회동을 계기로 미·중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될 조짐을 보이는 등 시시각각 변하는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반대 방향을 택하는 ‘ABM(Anything But Moon)’이나 민주주의 가치 동맹에 얽매인 이념 외교에 따른 외교적 경직성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한 외교 소식통은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11월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의 ‘1.5트랙 대화 체제’를 제안한 것을 언급하면서 한·중 간 소통 채널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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