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재벌 소유·지배구조 개편, 결국은 내 자식의 취직 문제인 것”

오창민 기자

(1) 경제민주화 - 민주당 문재인 캠프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

이정우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위원장(62·경북대 교수)은 10년 전 이맘때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선 후보 캠프의 핵심 브레인이었다. 노 후보가 당선되자 청와대에 들어가 정책실장으로 2년5개월을 일했다. 당시에도 재벌개혁은 중요한 과제였지만 참여정부는 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구호도 ‘시장개혁’으로 순화했다. 이 위원장은 “재벌의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내 상생의 경제체제를 만들어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경북대 국제경상관 연구실에서 이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다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참여정부 때 실패한 개혁
국민지지 있을 때 해내야

▲ 복지 재원 마련 ‘증세’로 돌파
‘가장 우수한’ 종부세 살려야

이정우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위원장은 지난 19일 자신의 경북대 연구실에서 한 인터뷰에서 “현재의 재벌 소유지배 구조로는 새로운 대기업이 출현하기 어려워 새 일자리도 생겨날 수 없다”면서 “재벌 지배구조 개혁은 결국 내 자식의 취직 문제와 직결돼 있다”고 말했다. | 이상훈 선임기자

이정우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위원장은 지난 19일 자신의 경북대 연구실에서 한 인터뷰에서 “현재의 재벌 소유지배 구조로는 새로운 대기업이 출현하기 어려워 새 일자리도 생겨날 수 없다”면서 “재벌 지배구조 개혁은 결국 내 자식의 취직 문제와 직결돼 있다”고 말했다. | 이상훈 선임기자

- 경제민주화가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양극화 때문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사람들이 몸부림치다가 발견한 해법이 경제민주화이다. 양극화는 이명박 정부가 각종 재벌 규제를 풀면서 지난 5년간 더욱 악화됐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불화, 불평등은 늘 있었는데 재벌이 영세자영업자의 밥그릇까지 침범한 것은 처음이다. 바다에서 놀아야 하는 고래가 강을 넘어서 시내까지 들어와 작은 물고기가 전혀 살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 이명박 정부를 낳은 것이 참여정부이다. 참여정부 경제가 성공했다면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자로서 양심을 걸고 이야기하겠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아니고 이전 정부에서 정책을 펼친 경제 관료들의 실패다. 노무현 정부가 정권을 인수받았을 때 이미 경제 거품이 심했다. 거품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경기가 좋고, 성장률도 높은데 그게 동시에 다 꺼진 시기가 참여정부이다. 그렇지만 참여정부는 과거 역대 정부가 했던 식으로 임시방편적이고 도식적인 경기 부양책을 쓰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은 ‘내가 욕을 먹더라도 뒤에 오는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경기가 나쁘고 저성장이 왔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5년간 평균 4.3% 성장했다. 거품이 꺼진 상태에서 인위적 경기 부양 없이 그 정도 했다면 선방한 것이다.”

- 경제 관료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경제 관료들은 양면성이 있다. 누구보다도 유능하고 헌신적이다. 보고서도 딱 부러지게 잘 만든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밤 늦게까지 일한다. 다만 부족한 것이 개혁성이다. 본능적으로 사고가 나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조바심을 낸다. 그나마 과장까지는 개혁적인 생각을 갖기도 하는데 국장 이상 가면 개혁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은퇴하면 재벌회사나 로펌 등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안락한 자리가 보장돼 있는데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개혁을 하려 하겠는가. 관료를 뛰어넘지 않고는 개혁이나 경제민주화가 될 수 없다. 최종 판단까지 관료에게 맡겨서는 안된다. 결정은 민간 출신의 개혁적 인사가 해야 한다.”

- 참여정부 때는 왜 재벌개혁이 이뤄지지 못했나.

“이명박 정부와 비교하면 (참여정부가) 선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경제력 집중 추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현상 유지 정도에 그쳤다. 악화시킨 것은 아닌데 개선시키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라고 볼 수 있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큰 것이다. 그런 실패를 바탕으로 문재인 대선 후보가 ‘두 번 실패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전에는 사실 재벌개혁이 어려웠다. 국민의 지원을 등에 업어야 가능한데 그렇지 못했다. 사회적 분위기도 많이 달랐고. 오죽하면 참여정부가 ‘재벌개혁’이라는 말을 걸지 못하고 ‘시장개혁’이라고 했겠는가. 이제는 다르다. 재벌개혁이라는 말을 걸 수 있다. 재벌의 행태에 국민이 분노하는 형국이니까 그 지지를 바탕으로 재벌개혁을 해내야 한다.”

- 문재인 후보의 재벌개혁 관련 공약은 대부분 지난 총선 전에 발표된 것들이다.

“그렇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순환출자 금지 등 민주당 당론을 그대로 수용했다. 국민에게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좀 더 다듬고 외국 사례를 인용하기도 했지만 핵심 내용은 이미 당에서 만들었다.”

- 출자총액제한이나 순환출자금지 등은 일반인에게 와닿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따져보면 국민 개개인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의 재벌 소유지배 구조는 총수 일가가 적은 자본으로 많은 기업을 거느릴 수 있게 돼 있다. 총수가 황제경영을 하며 문어발식으로 기업을 확장하고,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자기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편법적으로 재산을 상속하고 있다. 이런 구조가 계속되는 한 새로운 대기업이 출현하기 어렵다. 중소기업이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모두 패배한다. 대기업이 새로 생겨나지 않으니 대학생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다. 청년실업이 발생하는 것이다. 청년실업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대기업이 많이 생겨나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주는 것인데 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재벌체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벌 소유지배구조 개편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문제가 아니고 나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재벌 지배구조 개혁은 결국 내 자식의 취직문제와 직결돼 있다.”

- 안철수 후보 측과 공약이 많이 겹치는 것 같다.

“우리는 출총제가 있는데 안 후보 측은 없고, 우리는 계열분리명령제를 넣지 않았는데 안 후보 측은 포함시킨 것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별 차이가 없다.”

- 복지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문 후보의 복지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재원은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사회가 저출산 고령화의 덫에 빠지기 전에 먼저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전체 예산에서 복지예산 비중이 50%에 이르면 복지국가이다. 노무현 정부는 직전 20%였던 복지예산을 28%로 올렸다. 이명박 정부가 이를 받아서 36% 정도로 올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금도 28%이다.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 지출 분야에 대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4대강 사업 등 사회간접자본에 과잉 지출된 부분을 줄여야 한다. 다음으로 각종 조세감면을 정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조세감면은 대기업 부자들에게 많이 간다. 역진적이고 효과도 의심스러운 것이 많다. 그 액수가 연간 30조원이다. 불요불급한 것은 폐지하거나 감축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해도 복지재원은 부족할 수 있다. 그럴 때는 증세해야 한다. 후보들이 이제는 증세 이야기를 솔직하게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 증세를 하게 된다면 어떤 세금을 늘려야 하나.

“며칠 전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부가가치세 이야기를 꺼냈는데 부가가치세는 장단점이 있다. 비교적 조세저항을 덜 받으며 세수를 확보할 수 있지만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은 비율로 세금을 내게 돼 분배를 불공평·불평등하게 하는 단점이 있다. 그보다는 고액의 부동산 보유자에게 매기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늘리는 것이 낫다. 종부세는 부부합산이라는 부분이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오해를 받고 있는 세금인데 알고 보면 가장 우수한 세금이다. 위헌 요인을 제거하고 다시 확대하면 세수를 늘려가면서 부동산 투기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세금을 늘린다면 부가가치세보다는 소득세를 늘리는 것이 맞다. 직접세니까 조세 저항이 크다는 단점이 있지만 정면승부하는 것이 당당한 태도다. 한국은 소득세가 외국에 비해 너무 낮다. 소득액 대비 소득세 비율이 4%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9%대의 절반 수준이다. 우리나라 소득세 수입 총 규모가 45조원쯤 되니까 잠재적으로 45조원의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는 여지가 있다.”

- 분배도 중요하지만 경제를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4대 성장전략을 제시했다. 포용적 성장, 창조적 성장, 협력적 성장, 생태적 성장 등이다. 그중 제일은 포용적 성장이다. 포용적 성장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성장이다. 서민 중산층 노동자의 소득이 늘게 해 이들의 구매력을 바탕으로 수요를 창출, 경기도 활성화하고 성장도 촉진하자는 것이다. 보수파가 이야기하는 ‘낙수 효과’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부자들 세금을 깎아주면 소비가 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돈이 흘러들어갈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인정받은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룰라는 집권 후 최저임금을 크게 올렸고, 복지 정책을 밀어붙였다. 밑에서부터의 성장을 이끌어낸 것이다.”

-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 현안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문제는 어떤 식으로 풀 계획인가.

“연착륙을 유도하되 특혜를 줄 수는 없다. 다만 너무 심한 비인간적, 탈법적인 그런 것은 막아야 한다. 최소한의 주거권은 보장해야 한다. 개인 회생 절차 기간도 5년은 너무 길기 때문에 3년 정도로 줄이는 것이 맞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막으면서 스스로 벌어가며 빚을 갚고 재기하도록 돕는 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집값 하락은 어떻게 봐야 하나.

“아직도 거품이 있다. 지금처럼 서서히 더 떨어지게 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전세금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불가피한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매매 가격과 전세의 괴리가 너무 컸다. 투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그것을 바로잡는 과정이 매매 가격의 점진적 하락과 전세 가격의 상승이라고 생각한다.”

- 일자리 부문은 문재인 후보가 직접 담당하겠다고 했는데.

“일자리는 여러 가지 방안이 서로 얽혀 있다. 앞서 언급한 4대 성장을 통해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사회서비스를 확충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일자리 나누기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국 노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일을 하고 있다. 다만 일자리 나누기는 기존 노동자와 새 노동자 간에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 있으므로 사회적 대타협이 전제가 돼야 한다.”

- 과거 참여정부 때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강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한·미 FTA에는 독소조항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이다. 투자자-국가소송제는 해외투자자가 상대국의 법령·정책 등에 의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국제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이걸 놔두고 경제민주화를 하는 것은 지뢰밭을 걷는 것이나 다름없다.”

▲ 이정우는

소득분배론을 전공한 대표적인 진보경제학자. 특히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은 세금으로 환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 역할을 담당했다. 노무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거쳐 청와대 초대 정책실장과 정책기획위원장(장관급) 등을 역임했다. 참여정부 시절 ‘분배주의자’로 ‘시장주의자’인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대척점에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의 싱크탱크인 ‘담쟁이 포럼’의 연구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2 대선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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