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노조 힘 강했던 87년부터 92년까지 ‘분배’가 가장 잘 이뤄졌다”

오창민·강병한 기자

(1) 경제민주화 -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72)을 지난 18일 서울 부암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는 당내 인사들과 갈등을 빚자, 잠적·침묵으로 맞서다가 당무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김 위원장은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는 1960~70년대부터 들었다. 이만큼 경제를 키워놓고도 나누지 못하겠다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라는 말로 당내 성장론자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그는 “끝없는 탐욕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공동체를 병들게 했다”며 “이를 방치하다간 언젠가 폭발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골목상권까지 진입한 재벌의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이 공약으로 제시한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순환출자 금지 등에는 부정적 태도를 취했다. ‘재벌 개혁’이나 ‘재벌 해체’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

그는 “외부의 힘으로 재벌을 개혁하거나 해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사실 재벌 개혁은 헛소리
재벌 스스로 바뀌게 해야

▲ 비정규직 노조 권리 막는
교섭창구 단일화는 잘못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지난 18일 서울 부암동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면서 “끝없는 탐욕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공동체를 병들게 했다”며 “이를 방치하다간 언젠가 폭발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상훈 선임기자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지난 18일 서울 부암동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면서 “끝없는 탐욕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공동체를 병들게 했다”며 “이를 방치하다간 언젠가 폭발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상훈 선임기자

- 지금 시점에서 왜 경제민주화가 이슈로 떠올랐다고 보는가.

“시대의 흐름이다. 한국동란 이후 25년간 경제가 압축성장했다. 이후 25년간 정치민주화가 이뤄졌다. 압축성장에서 발생한 경제사회 모순을 정치민주화로 해결하려고 했는데 아무 변화가 없다. 그러니 제도권 정당들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멋지게 무소속 후보(박원순)에게 떨어져 날아가버린 것이다. 결국 국민이 생존에 위협을 느껴서 변화를 추구한 것이다.”

- 분배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사회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파이를 키울 생각만 하면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져 파이 자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이 온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이 1·2·3차 경제개발에 성공해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적 기반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분이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하면서도 마지막 운명을 아름답지 못하게 마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당시 노사 문제가 심각해 해소해야 한다고 했으나 파이가 작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했다. 그러다 1979년에 사회가 터져버린 것 아닌가. 대통령이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시대 변화가 이뤄지면 사람이 변한다. 경제가 발전하려면 경제만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다. 사회구조도 바뀌고 사람의 의식 수준도 바뀐다. 정치집단은 변하는 국민의식을 따라가야 한다. ”

- 지금 상황이 1979년 말과 비슷한가.

“비슷하다고 본다.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정부가 발표한 통계 자료를 보면 국민 45% 이상이 자신을 하층민이라고 여긴다. 60%는 나라에 희망이 없다고 한다. 그동안 3~4%대라도 경제성장을 해왔는데 일반 국민은 이를 소득 증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소득은 늘지 않고 지출은 계속 늘어나고 그러다가 가계부채가 1000조원에 이르게 됐다.”

-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해달라.

“처음부터 ‘기업 프렌들리하겠다’는 것은 일반 서민들의 삶에 관심없다는 이야기다.”

- 하지만 국민들은 5년 전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선택했다.

“국민은 뭔소리인지 모르고 속은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민대통령이라고 했는데 생활이 어려워졌다.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후보를 찍으면 생활이 나아진다고 하니 그렇게 투표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충족이 안되니까 지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어떻게 평가하나.

“김대중 정부 때는 사실 경제질서를 재조정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하려고 재벌 위주의 정책으로 가버렸다.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재벌은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으로 커지기 시작했는데 대통령이 전체 재벌을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1985년부터 재벌이 벌써부터 권력에서 자유롭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그 세력이 더욱 공고해지고 확대됐다. 모르는 사이에 양극화가 심해졌는데 노무현 정부도 글로벌 시대에는 대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켜야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논리로 기울어버렸다.”

-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과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를 바꾸는 공약을 내세웠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효과가 없다. 순환출자도 신규 출자만 금지하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 경제현실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일거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정치하는 사람의 가장 큰 덕목은 책임이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도 하면서 우리 경제가 큰 손상을 받지 않고 같이 가는 그런 정책을 내야 한다. 그런 데서 (박근혜 후보는) 차별성을 찾으려고 한다. 박 후보가 기분대로 ‘재벌 해체 하겠다’는 식의 이야기는 할 수 없다. 사실 재벌 개혁 하겠다는 것도 헛소리다. 재벌은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없다.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 우리가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 놓고 (재벌이) 그것을 지키지 않을 때 처벌하면 된다. 그러면 재벌들이 적응할 것 아닌가.”

- 어떤 구체적인 대안이 있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같은 정책이 실제로 실천 가능한 것이다.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감독하는 기구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기구들이 작동을 제대로 못한다. 지금 재벌들의 내부자 거래 액수가 173조원에 이른다. 자기들끼리 내부자 거래를 하니깐 불공정거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은 참여 기회가 없는 것이다. 내부자 거래는 자기들에게 유리하지만 외부의 고용창출 가능성이 없다. 이를 감독하는 기구가 공정위인데 공정위가 제대로 안 하고 있다. 검찰에 고발할 수 있는 권한을 독점하고 있으면서 소비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검찰에 고발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면 공정위 기능이 살아난다. 밖에서 고발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공정위에 심각한 도전이 생길 수밖에 없다.”

- 경제민주화를 위해 노동시장에서 분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의미인가.

“우리나라에서 분배가 제일 잘된 시기는 통계상 1987년에서 1992년이다. 그때 분배도 잘 이뤄지고 경제도 연 7~8% 성장했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노동조합의 힘이 세져서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노사 관계가 과거보다 복잡해졌다. 과거에는 비정규직 문제가 없었다. 외환위기 이후에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해서 기업 경쟁력을 향상시킨다고 해서 외주 업체가 늘어나고 비정규직, 하도급이 많이 생겼다. 이런 데서 노·노 갈등이 생겼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루려면 노동시장과 관련한 전반적 문제를 함께 다뤄야 한다. 굉장히 어렵고 효과도 나기 어렵다. 단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관심 없다. 나라 장래를 생각하고 제대로 된 자유시장경제를 갖추면서 사회 갈등을 해소하려면 이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한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현행 노동법과 노동조합법 등의 기본적인 개념을 고쳐야 한다. 기업에 노조가 있다. 그런데 노조 가입자는 전부 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의 숫자가 간단치 않지만 노조는 비정규직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깎아내려야 정규직의 권익이 올라가기도 한다. 이런 구조와 체제에서는 비정규직·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복수노조를 허용하면서 노사 협상 창구는 단일화해서 정규직 노조와만 협의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적당한 시점에 공약으로 내놓을 것이다. 새누리당에서 할 수 있는 범주 안에 있는가도 생각해야 한다.”

- 경제민주화 못지않게 복지 확충도 대선의 주요 이슈이다. 현 상태에서 복지를 더 늘리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걷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얼마 전 모 라디오에 출연해 복지재원 이야기를 하길래 ‘일단 현재 예산과 세입 범위 내에서 복지를 하고 다음 정부가 들어서서 복지 재원이 더 필요하면 세원을 더 건드릴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증세하려 한다고 기사가 나왔다. 복지를 늘리지 않아서 사회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무조건 해야 한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은 재정위기 긴급명령을 내렸다. 국회가 확정한 예산을 다 뒤집었다. 사회 상황이 긴박하다고 하면 그런 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통령 되는 사람이 판단해서 할 일이지 내가 판단할 일은 아니다.”

- 누군가 용기 있게 증세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감세만 했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21%에서 19%대로 갔다. 그랬다고 경제가 효율적으로 잘됐나, 아니면 투자나 고용이 잘됐나. 일부 대기업 이윤만 증대됐다. 그러니 소득분배가 더 악화됐다. 요즘 유럽 선진국 같은 곳은 선거전에서 솔직히 증세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소심한 사람들이 모인 (한국의) 정치집단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안 한다. 복지는 본질적으로 재정이 한계다. 재정능력이 없으면 복지는 늘어날 수 없다. 복지는 인간 생존을 보장해주는 것이라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 없다. 지속적인 재원조달이 가능해야 이뤄질 수 있다. 일단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재원을 어떻게 잘 배분할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금 예산 구조상 어디에서 재원이 나오는지, 그것으로도 절박한 복지 수요가 충당되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세입 쪽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그게 순서다. 소위 경제질서와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는 마당이니 새로 취임한 대통령은 세입과 세출구조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증세 논의는 내년도에 하는 것이 정상이다.”

- 복지 확대 정책에 대해 경제 관료들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모피아’로 대표되는 경제관료들이 있는 한 경제정책의 방향은 지금과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관료들은 재벌에 손해가는 것은 안 하려고 해서 문제다. 하지만 관료는 자동차의 엔진 같은 것이다. 새 운전사가 가속페달을 밟았는데도 엔진이 돌아가지 않고 저항하면 그땐 뽑힐 수밖에 없다. 관료는 주인을 새로 섬겨야 하기 때문에 확고한 영혼을 갖고 있으면 생활을 못한다.”

▲ 김종인은

비례대표만으로 4선을 한 국회의원 출신이다. 11·12대는 민정당, 14대는 민자당, 17대는 새천년민주당 소속이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서강대 교수로 제4차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 입안에 참여했다. 1987년 개헌 때 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을 입안했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이었던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이다. 1963년 가인이 ‘국민의 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야당 통합을 이끌 때 조부를 직접 보좌한 덕분에 정치감각도 매우 예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2 대선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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