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인권·여성·노동…여전히 ‘실종’

유정인 기자

이재명·윤석열, 대선 유세 연설 키워드 전수 분석

시작된 재외투표…인도서 투표하는 해군 장병들 20대 대선 재외투표 첫날인 23일 호위함인 광주함에 승선 중인 해군 장병들이 인도 첸나이 총영사관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광주함은 25일부터 인도 인근 해상에서 열리는 ‘밀란-2022’에 참가한다.  주첸나이총영사관 제공

시작된 재외투표…인도서 투표하는 해군 장병들 20대 대선 재외투표 첫날인 23일 호위함인 광주함에 승선 중인 해군 장병들이 인도 첸나이 총영사관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광주함은 25일부터 인도 인근 해상에서 열리는 ‘밀란-2022’에 참가한다. 주첸나이총영사관 제공

윤, 유세 1곳서만 ‘여성’ 언급
이, 여성 대신 ‘남녀’ 18차례
소수자·다양성 관련은 전무

20대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23일로 9일째에 접어들었다. 공식 선거운동의 백미는 거리 대중 연설이다. 대선 후보들의 국정 철학과 비전,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돼야 하는 이유, 상대가 뽑혀선 안 되는 이유 등 핵심 메시지가 여기에 담긴다. 무엇을 담았는지만큼 무엇을 담지 않았는지도 중요하다. 연설의 빈 공간을 살펴보면 비호감, 네거티브 대결로 불린 이번 대선에서 조명받지 못한 의제와 차기 정부에서 한국 사회의 과제로 다시 등장할 의제들이 드러난다.

경향신문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8일 동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대중 연설 키워드를 전수 분석했다. 이 후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대선 후보 토론회가 열린 21일을 빼고 7일 동안 25차례 전국 곳곳에서 연설했다. 윤 후보는 토론 준비로 일정을 비운 20~21일을 제외하고 6일 동안 31차례 각 지역을 돌며 연설했다.

두 후보 연설에서 시급한 과제로 꼽히는 기후위기는 거의 언급되지 않거나 주변적 화두에 머물렀다. 차별금지법이나 소수자·다양성 등 인권 문제도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여성 인권 문제는 분열 극복이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설명하는 차원에서 일부 등장했고, 노동 문제도 주요하게 거론되지 않았다.

연설에 주로 등장한 단어들은 비호감 대선의 일면을 보였다. 이 후보는 ‘위기’ ‘경제’를 강조하면서 ‘신천지’ ‘정치보복’ ‘무능’ 등의 키워드로 윤 후보를 공격했다. 윤 후보는 ‘공정’ ‘상식’을 강조하면서 ‘부정부패’ ‘대장동’ ‘좌파’ 등의 단어로 이 후보를 공격했다.

■사라진 단어들

몇몇 단어들은 두 후보 연설에서 ‘부재’해 시대적 과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이번 대선의 한계를 드러냈다. 윤 후보의 31차례 연설에는 ‘기후위기’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울산 연설에서 에너지 문제를 거론했으나 현 정부의 탈원전을 비판하며 산업경쟁력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

이 ‘정치보복’ 31번, 윤 ‘좌파’ 27번…네거티브 대선 방증

지켜보는 눈 시민들이 23일 충남 천안시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지켜보는 눈 시민들이 23일 충남 천안시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이재명·윤석열, 대선 유세 연설 키워드 전수 분석

이 ‘위기·경제’ 윤 ‘공정·상식’ 강조…시대적 과제는 외면
노동 의제, 이 ‘코로나 피해’ 윤 ‘노조·여당 비판용’으로 사용

이 후보의 25차례 연설에선 기후위기는 5번 나왔다. 재생에너지 전환을 일부 언급했지만, 대체로 ‘위기 극복 총사령관’이라는 메시지에 맞춰 여러 분야 위기를 나열하는 때에 사용됐다.

연설에서 기후 의제 실종은 예견된 일이다. 이 후보는 선관위에 제출한 10대 공약에 기후 관련 공약을 포함하지 않았다. 윤 후보는 10대 공약 중 9번째에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과 원전 최강국 건설’을 넣었다. 세 차례 법정 후보 토론 주제에도 기후위기나 탄소중립 등 기후 관련 의제는 빠져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나 소수자·다양성 등 인권 관련 단어들도 찾아볼 수 없다. 19대 대선에선 거대 양당 후보 중 문재인 당시 후보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했지만, 이번엔 양강 후보 모두 차별금지법 거론에 소극적이다. 두 후보는 최근 한국교회총연합·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가 주최한 정책 발표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도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소수자·다양성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지만, 양강 후보의 8일치 연설에서 관련 단어가 등장한 적은 없었다.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 인권 문제가 ‘갈등’ ‘분열’ 차원으로 다뤄지는 이번 대선 특징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윤 후보 연설에서 여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건 지난 18일 경북 칠곡 유세가 유일하다. ‘여성’이라는 단어가 8차례 나오지만, 방점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설명하는 데 찍혔다. 앞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윤 후보는 유세에선 “여성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보호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후보는 여성(1차례) 대신 ‘남녀’를 주로 언급했다. 모두 18차례 ‘남녀’라는 단어를 썼다. 구조적 성차별 해소 방안보다 ‘갈등 사안’의 하나로 설명하는 때가 많았다. “남녀로, 남북으로, 동서로 갈라서 싸우게 하면 되겠나”(17일 서울 성동), “청년들이 남녀로 갈라 싸우지 않아도 되는 나라”(17일 전남 목포) 등 주로 통합과 화합을 말하는 데 남녀 문제를 포함했다.

‘노동’은 적게 언급된 건 아니다. 다만 노동 의제들이 화두로 다뤄지진 못했다. 이 후보 연설에선 노동이라는 단어가 ‘소년 노동자’ 경험, 코로나19로 경제적 피해를 입는 플랫폼 노동자를 언급하는 데 주로 사용됐다. 이 후보는 20일 경기 안양 유세에선 “친노동 친기업이 바로 친경제”라는 노동관을 말했다. 윤 후보는 ‘노동의 가치’를 적지 않게 말했지만 “민주당 정권의 노동가치는 강성 노조밖에 없는 것인가”(19일 경남 양산), “노동의 가치가 소수의 강성노조와 결탁한 민주당 정권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은가”(19일 경남 거제) 등 주로 ‘강성’ ‘귀족’ 단어를 붙여 노조와 민주당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거 등장한 단어들

두 후보가 핵심 화두로 삼은 단어들은 거리 연설에서도 대거 사용됐다. 이 후보의 경우 ‘위기극복 총사령관’ ‘경제대통령’ ‘국민통합 대통령’ 등 세 목표를 거의 모든 연설마다 말했다. 윤 후보는 ‘국민이 부르고 키워준 후보’ ‘공정과 상식’ 등을 강조했다. 코로나와 경제위기, 민생, 통합 등은 두 후보 모두 자주 사용했다.

상대 후보 공격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이 후보 연설에선 ‘신천지’가 37차례 등장한다. 이 후보는 윤 후보가 검찰총장 당시 법무부의 신천지 압수수색 지시를 거부했다는 의혹을 자주 거론했다. ‘정치보복’(31차례)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정치보복을 하겠다고 대놓고 선전포고하는 사람이 있다”(18일 전남 나주), “미리 정치보복을 예고하는 사람이 있다”(18일 광주) 등 문재인 정부 적폐수사 필요성을 말한 윤 후보 발언을 공격하는 발언이 잦았다. ‘무능’(23차례)도 적지 않게 등장했다. ‘유능한 경제대통령’을 내세운 만큼 정치신인인 윤 후보를 겨냥해 사용하는 때가 많았다.

윤 후보 연설에서 민주당을 비판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부정부패’(76차례)였다. 정권교체의 핵심 이유로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우는 때가 잦았다. 이와 관련해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도 36차례 거론했다. 특히 이념을 들어 공격하는 단어가 늘었다. “철 지난 좌파 이념에 빠져서 상식을 도외시”(17일 서울 송파), “좌파 혁명 이론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비즈니스 공동체”(19일 울산)처럼 ‘좌파’(27차례) 등의 단어로 색깔론 공세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 대표적 정책 실패로 꼽히는 부동산 문제도 적지 않게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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