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잡겠다고…21세기에 ‘관제 서명운동’

이용욱·송진식 기자

박 대통령 길거리서명 나선 뒤

총리·장관·기업들 줄줄이 동참

경제단체, 회원사에 독려 공문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활성화 입법 촉구를 위한 ‘길거리 서명’에 동참한 후 권위주의 정부 시절 유물인 ‘관제 서명운동’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부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통령에 이어 국무총리가 인증샷을 올리며 가세하고 장관들에 이어 기업들까지 참여 독려 공문을 돌리며 일제히 서명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나서달라’는 박 대통령의 말과 서명이 ‘동원령’으로 작동하면서 재계 주도 형식을 빌린 서명운동이 사실상 관제동원으로 변한 것이다.

<b>삼성사장단, 서명 동참…사옥 로비엔 부스까지</b> 설치 삼성전자 사장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사옥 1층 로비에 마련된 부스에서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이 주도하는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명 서명운동’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사장단, 서명 동참…사옥 로비엔 부스까지 설치 삼성전자 사장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사옥 1층 로비에 마련된 부스에서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이 주도하는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명 서명운동’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총리는 20일 모바일로 서명운동에 참여했다고 총리실이 밝혔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날 서명을 마쳤다. 서명운동은 전 부처 장관들에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도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18일부터 삼성전자 서초사옥 1층 로비에 부스를 마련하고 삼성 임직원의 서명을 받고 있다. 삼성 계열사 사장들은 20일 수요 사장단회의를 마친 후 줄줄이 부스에 들러 서명했다. 현대자동차그룹·LG그룹 등 20대 기업들도 회사 차원에서 서명에 참여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경제단체와 금융협회들도 회원사에 공문을 보내 참여를 독려 중이다. 특히 서명운동을 주도하는 대한상공회의소는 14일 내방자와 보험설계사들까지 서명에 동원하도록 하고, 매일 서명 인원을 취합해 보고해달라는 내용 등을 담은 협조공문을 32개 서명 참여 단체장에게 발송했다고 참여연대가 이날 밝혔다.

재계 서명운동이 청와대·정부와 교감하에 시작됐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박 대통령이 13일 대국민담화에서 “국민이 나서달라”고 한 당일 대한상의 등이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은행연합회 등 6개 금융단체는 보도자료에서 “박 대통령께서는 대한민국이 다시 비상할지, 정체 길로 갈지는 우리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선진경제로 도약하도록 금융권이 앞장서겠다”고 했다. 권위주의 시절 관제 대회에서 단체들이 내놓던 결의문을 연상시킨다.

참여연대는 “청와대 청부를 받은 서명운동을 재계와 금융계가 시작하자, (박 대통령이) 기다렸다는 듯이 서명에 동참하면서 마치 일반 국민들 서명운동처럼 둔갑시키고 국회를 무력화하려는 얄팍한 꼼수가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 사장단이 서명운동에 참여한 것은 경제살리기 관련 법안의 통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외부 요청 때문에 서명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박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동부 등 4개 부처 업무보고에서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탈퇴를 놓고 “지금 한쪽의 일방적 주장만으로 시간을 끌고 가기에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어렵다”며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노사가 서로 양보하면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거리 서명을 통해 기업을 사실상 관제동원하며 노동계와 갈등하고 대립하도록 만든 것과는 다른 메시지다.

박 대통령이 국회 무력화를 위해 직접 거리정치에 나서는 등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한 것이 국가적 혼돈과 대결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는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서명 참여가) ‘나를 따르라’는 메시지로 관료사회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며 “21세기에 관제적 성격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면 역효과가 나기 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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