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야, 보훈처장 해임 결의안 추진…‘여소야대’ 본때 보여주나

정제혁·유정인 기자

청 회동 때 “방안 마련” 뒤집어…야 ‘대화 필요성’ 의심

번복 없인 정국파행 불가피…새누리, 청·야당 사이 곤혹

<b>노래 끝까지 ‘침묵’</b>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18일 광주 국립5·18묘지에서에서 열린 3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합창단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 시작하자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 진보정의당 노회찬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부터)는 선 자세로 끝까지 노래를 따라 불렀지만 박 대통령은 태극기만 손에 쥔 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연합뉴스

노래 끝까지 ‘침묵’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18일 광주 국립5·18묘지에서에서 열린 3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합창단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 시작하자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 진보정의당 노회찬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부터)는 선 자세로 끝까지 노래를 따라 불렀지만 박 대통령은 태극기만 손에 쥔 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연합뉴스

20대 여소야대 국회에서 ‘협치’ 가능성을 보여줄 첫 가늠자로 여겨졌던 ‘님을 위한 행진곡’의 5·18민주화운동 기념곡 지정 및 제창이 무산되면서 정부·여당과 야당 간 협치는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될 상황에 처했다. 협치의 마중물로 기대됐던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대한 정부 태도가 도리어 협치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됐다.

지난 13일 청와대 회동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님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 문제와 관련해 “국론 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가 도출한 6개항 중 그나마 구체적 내용을 담은 유일한 항목이었다. 나머지는 ‘자주 만난다’ ‘머리를 맞댄다’ ‘노력한다’ ‘검토한다’는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님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 여부는 박 대통령의 협치 의지를 재는 바로미터로 받아들여졌다. 야당이 대통령과 만나 얘기하면 국정에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이 있을 때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데, ‘님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 문제가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험대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은 물론 제창마저 불허했다. 야당 입장에선 박 대통령과의 ‘대화 필요성’ 자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16일 “ ‘님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정권에 협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했고,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대통령께서 (청와대 회동) 3일 만에 협치와 소통을 강조한 합의문을 찢어버렸다”고 분노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과의 협치를 강조해온 새누리당도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청와대와 야당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새누리당은 이날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는 박 대통령이 아니라 국가보훈처 결정이라는 점을 애써 강조하며 ‘재고’를 요청했다.

박 대통령이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 한 정국 파행은 불가피해 보인다. 더민주·국민의당이 박승춘 보훈처장 해임촉구 결의안을 추진하고 나선 데서 보듯 야권 공조에도 시동이 걸렸다. 특히 3당 체제의 균형추 역할을 자임하는 국민의당은 호남이 지지 기반이어서 ‘야성’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세월호특별법 개정 문제 등 각종 현안과 쟁점법안 처리는 물론 20대 국회 원 구성 협상에서도 강한 야권 공조가 이뤄질 외부적 여건이 조성된 셈이다.

당장 박지원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보훈처장 해임촉구 결의안에 대해 선을 긋자 “협치가 불가능하다, 그런 얘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야당의 강 대 강 대치 국면에서 새누리당은 ‘청와대냐, 협치냐’를 선택해야 하는 첫 갈림길에 섰고, 수평적 당·청관계를 당 혁신 키워드로 잡은 새누리당과 청와대 간 긴장 수위도 고조될 가능성이 커졌다.

청와대·여당·야당 간 협치의 기대를 높인 13일 회동이 결과적으로 당·청 간, 여야 간, 청와대·야당 간 ‘3각 대립’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된 셈이다. 박 대통령이 그 격발단추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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