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참사 공문’과 ‘사고 공문’, 슬픔을 대하는 시선부터 달랐다

참사는 ‘애도’, 사고는 ‘지시’와 함께 주로 쓰여

용산구는 가장 많은 공문 생산하고도 8건만 ‘참사’

초기 공문은 혼용… 정부 권고 후 ‘참사’는 사라져

지난 2일 이태원 할로윈 참사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화와 추모 메시지가 빼곡하게 놓여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 2일 이태원 할로윈 참사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화와 추모 메시지가 빼곡하게 놓여 있다. 문재원 기자

정부 기관들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 관련 공문을 생산하면서 초기에는 ‘참사’와 ‘사고’ 표현을 상당 부분 혼용해 왔으며 각 표현별 쓰임새에도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태원 참사’라고 쓴 공문 제목에서는 애도·행사(자제·취소)·희생자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한 반면 ‘이태원 사고’라고 표현한 공문은 지시·기강·사망자·국무총리 등의 단어가 자주 함께 언급됐다. 이번 참사가 발생한 용산구는 서울 자치구 중 가장 많은 123개의 관련 공문을 생산했지만 ‘참사’라고 표현한 공문은 8건에 불과했다.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가 정보공개포털에서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6일까지 중앙행정기관과 광역자치단체가 생산한 이태원 참사 관련 공문 7111건의 수집해 제목을 분석한 결과, ‘사고’라고 쓴 공문(이하 사고 공문)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표현은 ‘지시’(1193회)였고 ‘참사’라고 표현한 공문(이하 참사 공문)에서 가장 빈번하게 쓰인 단어는 ‘애도’(148회)였다. 검색 키워드는 ‘이태원 참사’ ‘이태원 사고’였으며 이태원, 관련, 요청 등 공통적으로 등장한 단어는 제외한 결과다. 수집은 지난 7일 오전 실시했으며 이후 추가 공개된 공문들이 있어 세부 수치는 현재 상황과 다를 수 있다.

참사 초기 행정안전부는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기하라고 권고했지만 정부 공문서에서도 ‘참사’와 ‘사고’라는 표현의 차이가 주는 맥락과 의미가 뚜렷하게 달랐던 것이다. 정부가 표현 바꿔 쓰기를 굳이 고집한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참사는 ‘애도’와, 사고는 ‘지시’와 묶였다

정부의 ‘참사 공문’과 ‘사고 공문’, 슬픔을 대하는 시선부터 달랐다

사고 공문에서 자주 등장한 ‘지시’는 주로 ‘이태원 사고 관련 공직자 복무기강을 확립’하라는 내용이거나 ‘이태원 사고 관련 기록물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내용처럼 상부의 명령이나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단어였다. 기강, 확립, 국무총리, 철저 등의 단어가 사고 공문 제목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기강은 전체 사고 공문 제목 중 1079회(17.1%) 등장한 반면, 전체 참사 공문 제목에서는 72회(8.8%) 등장하는 데 그쳤다.

‘참사’ 표현 역시 공직사회 내부에서 이뤄지는 업무와 관련된 공문으로 생산됐지만, 그 쓰임새가 사고와는 사뭇 달랐다. 참사 공문에서 자주 언급된 ‘애도’는 ‘국가애도기간’과 ‘애도 현수막 구입’ ‘애도 근조리본 구매’와 붙어다녔다. 애도는 참사 공문의 18%(148회)에서 확인된 반면, 사고 공문에서는 6.4%(406회)만을 차지했다.

참사와 사고 공문의 차이는 함께 논란이 됐던 희생자·사망자 표현과도 이어졌다. 희생자는 참사 공문에서 79회(9.6%)로 사고 공문 64회(1%)보다 더 자주 등장한 반면, 사망자는 참사 공문(9건·1.1%)보다 사고 공문(748건·11.9%)에서 더 많이 언급됐다.

사고 공문에는 있지만 참사 공문에는 없었던 표현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의료비’는 사고 공문에서 90차례(1.4%) 등장했지만 참사 공문에서는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사고 공문의 의료비는 주로 ‘이태원 사고 장례비 및 의료비 지원사항’ 등의 표현으로 등장했다. 사상자(83건·1.3%), 대통령(72건·1.1%) 등도 참사 공문에서는 볼 수 없지만, 사고 공문에서는 등장하는 표현이었다. 참사 공문에는 있지만 사고 공문에는 없는 표현은 ‘마인드케어(28건·3.4%)’ 등이 있었다.

‘참사’ 공문 수는 경기도, 비중은 경북이 높아

정부의 ‘참사 공문’과 ‘사고 공문’, 슬픔을 대하는 시선부터 달랐다

전체 건수 중에서는 사고 공문이 압도적이었다. 7111건 중 사고 공문은 6289건, 참사 공문은 822건이었다. 행정안전부는 ‘권고사항일 뿐 다른 표현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했지만 권고에 그치지는 않았던 셈이다.

정부 공문의 ‘참사’ 표현은 행정안전부가 전국 17개 시ㆍ도에 ‘참사→사고’, ‘희생자→사망자’, ‘피해자→부상자’라고 표기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지난달 30일 이후 빠른 속도로 지워졌다. 30일 전체 문건(408건) 중 22.3%(91건)를 차지했던 참사 공문은 다음날 13.9%로 비중이 급락했다. 이후 내리 하락하던 참사 공문 비중은 행안부가 ‘참사’ ‘희생자’ ‘피해자’를 사용해도 된다는 입장을 발표한 지난 2일 이후 반등했다.

중앙행정기관과 광역·지방자치단체 간에도 참사와 사고 공문 비중은 차이가 있었다. 중앙행정기관의 공문에서는 참사 표현이 담긴 공문이 5%에 그쳤지만 광역자치단체의 공문에서는 12%가 참사 공문이었다.

정부의 ‘참사 공문’과 ‘사고 공문’, 슬픔을 대하는 시선부터 달랐다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많은 참사 공문을 생산한 곳은 경기도(251건)였다. 경기도는 전체 이태원 참사 관련 공문도 1342건으로 가장 많이 생산했다. 두 번째로 많은 서울특별시(783건)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

참사 문건의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경상북도(24.7%)였다. 경북 울릉군과 예천군, 김천시 등에서는 사고라고 쓴 공문보다 참사라 쓴 공문이 더 많았다. 전북 장수군, 충북 음성군도 사고보다 참사라 쓴 공문을 더 많이 생산한 지자체에 속했다. 대구 서구에서 생산한 ‘이태원 대참사 관련 업무협의 간담회 개최’ 공문에서는 ‘대참사’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서울에서 참사 공문 비중이 가장 높은 자치구는 강북구(36.7%)였고 도봉구(31.4%), 은평구(21.9%) 가 뒤를 이었다. 용산구는 참사 공문의 비중이 6.5%로 낮은 편에 속했다. 강남구·강동구·노원구 등 11곳 지자체는 ‘참사’라고 표현한 공문이 아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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