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반발에 뒷북 소통 ‘혼선’…미세조정 땐 갈등만 증폭

유정인 기자

윤 대통령, 개혁동력 삼으려던 청년들 이탈 조짐에 ‘일단 멈춤’

손질보다 홍보·설득에 방점…‘주 52시간 유지’ 가능성 낮아

대통령실 “근로자 선택권 넓히려는 것”…야당선 “즉각 폐기”

<b>일자리창출 우수기업 CEO들과</b>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일자리창출 우수기업 최고경영자(CEO) 초청 오찬에서 사회를 맡은 개그맨 허경환씨(허닭 대표이사)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일자리창출 우수기업 CEO들과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일자리창출 우수기업 최고경영자(CEO) 초청 오찬에서 사회를 맡은 개그맨 허경환씨(허닭 대표이사)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근로시간 유연화 법안’ 보완을 지시한 데는 노동조건 개악 안이라는 부정적 여론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한 게 영향을 미쳤다. 청년층의 비판 여론이 번지며 지지층 이탈 조짐까지 나타나자 속도 조절 버튼을 누른 것으로 풀이된다.

최종 정부안이 미세조정 수준에 그칠 경우 갈등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핵심 노동 조건과 관련된 사항을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추진하다 뒤늦게 보완에 나서고, 보완 범위를 두고도 혼선을 야기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김은혜 홍보수석을 통해 전한 지시사항에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하라”고 했다. ‘MZ세대’를 콕 집어 언급한 데는 그간 ‘노동개혁’의 명분으로 미래세대를 내세우고 청년세대 지원을 개혁 동력으로 삼으려 한 구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계에서는 정부안이 주 최대 노동시간을 현행 52시간에서 69시간으로 늘려 장시간 노동을 부추긴다고 비판해왔다.

‘장기간 휴가’ 선택권이 생긴다는 정부 논리를 두고도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 기조에 긍정적이던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일명 MZ 노조)까지 반대하고 나선 게 쐐기를 박은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근로자 선택권을 넓혀주는 제도인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주 최대 69시간’ 일할 수도 있다는 데만 논의가 집중되면서 비판 여론이 있다보니 다시 들여다보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고용노동부의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 예고기간이 끝나는 내달 17일까지 의견 수렴에 집중할 예정이다. 여론조사와 간담회 등을 통해 정부안 홍보와 일부 조정안 마련을 병행할 계획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연간 최대 근로시간으로 따지면 실제로는 단축되는데 현행 제도에 오해가 많다”며 “충분히 설득하고 소통하면서 입법 예고기간 사이에 보완점을 찾겠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조만간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를 만나 설득과 의견 청취에 나서기로 했다.

결국 정부안에서 어느 선까지 ‘보완’될지가 관건이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주당 연장근로시간을 제한한 현행 제도를 비판해온 만큼 ‘주 52시간 유지’로 전면 철회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큰 프레임은 변화가 없다”고 강조한 점도 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 총리는 윤 대통령이 통화에서 “(개편안이) MZ세대에게 도움이 된다고 보고 철저히 이행되도록 할 확고한 정부의 의지가 있다”며 “정부 의지가 명료하게 국민들에게 이해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개편안 뼈대를 유지하면서 일부 규정 보완을 검토하되 방점은 홍보와 설득에 두는 분위기다.

근로일 간 11시간으로 둔 의무휴식 규정과 휴가 보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일부 변경이 이뤄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주 최대 69시간 노동’이라는 수치가 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의견 수렴 결과와 반발 확산 수위를 보며 정부안 손질 폭을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가 입법 예고까지 한 사안이 다시 ‘보완 검토’에 들어가면서 충분한 의견 수렴 없는 발표로 정책 혼선이 초래됐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졌다. 지난해 8월 교육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도 공론화 없는 발표로 논란을 빚다 백지화된 바 있다.

보완 폭이 적을 경우 근로기준법 개정을 두고 국회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노동자의 삶을 통째로 갈아 넣고, 노동자를 과로사로 내모는 ‘주 69시간제’는 즉각 폐기가 정답”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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