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그들은 누구인가

①한 지붕, 두 햄릿

지지 정당 없는 무당층과

주관적 이념성향 중도 혼용

선거 기권율, 무당층이 높아

정당에 부정적 태도 보여

무당층, 20대 남성 가장 많고

중도는 40대 여성 비중 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투표일인 지난해 11월 11일 서울 강서구 마곡실내배드민턴장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선거사무원들이 개표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사진 크게보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투표일인 지난해 11월 11일 서울 강서구 마곡실내배드민턴장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선거사무원들이 개표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중도는 무당층인가. 무당층이 중도인가. 주관적으로 평가한 이념 성향인 ‘중도’와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은 서로 다른 개념이지만,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표심의 유동성이 높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서원용씨(58·남)는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사회”를 원하는 자신을 보수로 규정한다. 경기 화성에서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그가 생각하는 보수는 “스텝 바이 스텝, 안정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현재 지지하는 정당은 없다. 지난 대선 때 투표도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간 진보 성향 정당에 투표한 적은 없지만, 마음에 드는 정책 노선을 제시하는 정당이라면 어느 당이든 뽑아줄 생각이 있다.

박성배씨(29·남)도 스스로 보수 성향이라고 말한다. 박씨가 이념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정부의 크기다. 그는 정부보조금이 무분별하게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보편복지가 아닌 선별복지를 선호한다. 여성가족부 폐지도 지지한다. 하지만 그 역시 지지 정당은 없다. 박씨는 “정치인들이 말을 자꾸 바꾸는 데 환멸을 느낀다”면서 “앞으로도 양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당보다 인물과 정책을 보고 투표하겠다는 것이다.

주부 백모씨(47·여)가 보기엔 국민의힘이 진보, 민주당이 보수다. 국민의힘은 개혁하고 발전하려는 느낌이 있는 반면, 민주당은 과거 운동권적 사고방식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스로 중도라 평가하는 백씨는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을 찍었지만, 다가오는 총선에선 지금 지지하는 국민의힘을 밀어줄 생각이다.

전북 군산에 사는 황모씨(62·남)는 선거 때마다 민주당을 찍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지역 특성상 주변에 민주당 지지자가 대부분이라는 이유가 크다. 민주당을 지지한다지만 친밀감은 그다지 많이 느끼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중도로 규정하면서 “여기도 싫고 저기도 싫어서”라는 이유를 댔다.

경향신문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성인 남녀 15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웹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중도라고 답한 응답자 가운데 44%는 지지하는 정당(호감 포함)을 묻는 질문에 ‘없음’ ‘모름’이라고 답했다. 중도의 44%가 무당층인 셈이다. 진보와 보수의 무당층(각각 15%) 비율보다 월등히 높다. 그렇다면 무당층 가운데 중도는 얼마나 될까. 59%였다. 민주당·정의당 지지자 가운데 중도 비율은 각각 28%였고, 국민의힘 지지자 가운데 중도 비율은 20%였다. 중도에 무당층이 많고, 무당층에서 중도 비율이 높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중도가 아닌 무당층, 무당층이 아닌 중도의 규모도 상당하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1533명을 중도인지, 중도가 아닌지(진보·보수)와 지지 정당이 있는지, 없는지(무당층)에 따라 4개 집단으로 나눠봤다. 그 결과 중도이자 무당층인 경우는 전체의 15%였고, 백씨와 황씨처럼 중도이면서 지지 정당이 있는 경우가 19%였다. 서씨와 박씨처럼 중도가 아닌 진보나 보수 성향인데 무당층인 경우는 전체의 10%였다. 중도나 무당층 가운데 최소 하나에 속해 있는 응답자 가운데, 중도와 무당층 모두의 속성을 가진 사람은 34%에 불과했다.

이처럼 중도와 무당층은 구성원 상당수를 공유하지만, 동질적 집단은 아니다. 진보·보수 성향 유권자는 각각 진보·보수 정당을 지지하고, 중도는 양당 지지를 오가거나 지지 정당이 없을 거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공간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셈이다. 박선경 고려대 글로벌한국융합학부 교수는 “한국은 이념 성향에 따른 투표가 이뤄진 역사가 길지 않다”면서 “이념 성향과 지지 정당이 일치하지 않는 사례는 해외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흔하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한국의 경우 2010년대 이후 이념에 따른 투표 경향이 강화된 것으로 본다.

중도는 ‘성향 없음’을, 무당층은 ‘정당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특징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념 성향보다 유권자의 정당 일체감이 투표 참여와 선거 관심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최근 선거 기권 비율이 중도보다 무당층에서 높게 나타났다는 점에서 이런 접근법은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도와 무당층은 인구학적 측면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이 상존한다. 중도와 무당층 모두 남성보다 여성에서 많았다. 하위계층, 월평균 가구소득 200만~300만원, 가구 순자산 5000만원 미만 집단에서 중도와 무당층 비율이 가장 높았다. 반면 세대와 성별을 함께 감안하면 중도는 40대 여성에서 비중이 가장 컸고, 무당층은 18~29세 남성에서 가장 많았다. 중도는 대학교 재학 이상보다 고등학교 졸업 이하에서 비중이 컸지만, 무당층은 학력에 따른 큰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어떻게 조사했나?=이번 여론조사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12일~15일, 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533명을 대상으로 웹(온라인)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본은 한국리서치 설문에 응하기로 미리 동의한 마스터샘플(지난해 11월 기준 86만여명)에서 지역·성·연령별 비례를 할당해 추출하고 가중치를 부여해 보정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이며, 응답률은 4.4%다. 결과값은 소수점 첫째 자리에서 반올림해 정수로 표기했으므로 합이 100%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특별취재팀=김재중 스포트라이트부 부장, 배문규(데이터저널리즘팀)·심진용(스포츠부)·정대연(정치부)·권정혁(경제부)·문재원(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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