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도 ‘윤심’으로 대동단결?···김병준 대행 체제에 쏠린 눈

박송이 기자

김병준 회장직무대행 선출…정경유착 고리 복원 우려

지난 2월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김병준 전경련 미래발전위원장 겸 회장직무대행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 전경련 제공

지난 2월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김병준 전경련 미래발전위원장 겸 회장직무대행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 전경련 제공

[주간경향] 지난 2월 23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정기총회에서 김병준 미래발전위원장 겸 회장직무대행이 선출됐다. 만장일치 형식의 선출로 사실상 추대에 가깝다. 김 위원장은 “국민에게 다시 사랑받는 전경련을 만들어 가겠다”라며 “전경련의 환골탈태를 이끌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임기는 6개월이다. 일종의 전경련 비상대책위원장 역할이다. 향후 6개월간 전경련의 혁신방안을 마련하고 신임 회장에게 자리를 넘기고 물러날 예정이다.

회장 공석으로 외부인사가 직무대행을 맡은 사례는 1961년 전경련 설립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김병준 위원장은 학자 출신 정치인이다. 국민대 행정대학원 원장으로 재임하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정책실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정책특보 등을 지냈다. 2016년 11월 국정농단 사태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무총리로 지명했지만, 대통령 탄핵 여론이 거세지면서 철회한 바 있다. 2018~2019년에는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 캠프의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고, 선거 이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특별위원장을 지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며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과 상당히 잘 통하는 친밀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과 무관?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가 전경련 회장대행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경실련은 2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전경련이 윤석열 정부와의 통로로 활용해 다시금 재벌·대기업의 정경유착 고리를 복원하고 이어가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김병준 위원장은 대통령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은 “학자로서 자유시장 경제에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기반을 좀더 넓히고 강화하고 싶다는 소명의식이 있다”라며 “내가 뭘 하려고 했으면 선출직이고 임명직이고 공직을 일체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겠나. 안 그래도 대통령께서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해도 내가 집필 중인 책이 있어 공직을 안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지금 전경련 생각할 시간이 있겠나. 대통령과는 전혀 별개의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웅열 전경련 회장후보추천위원장을 비롯해 여러분이 요청하셔서 자문만 하려고 했던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됐다”라고 말했다.

전경련 또한 현재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외부 인사를 통한 개혁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한다. 전경련은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당시 K스포츠와 미르재단 후원금 모금으로 논란을 빚었다. ‘국내 재계의 맏형’으로 불리던 전경련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후 삼성·LG·현대차·SK 등 4대 그룹이 줄줄이 전경련을 탈퇴했다. 600곳이 넘었던 회원사가 400여 곳으로 줄어들었다. 위상은 급속도로 추락했다. 당시 전경련은 단체명을 ‘한국기업연합회’로 변경하겠다고 밝히는 등 쇄신안을 내놨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20대 대선 이후 윤석열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잠깐 입지를 회복하는 듯했다. 전경련은 대선 직후 윤석열 당선인과 경제6단체장(전경련·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과의 도시락 오찬 간담회를 주선하면서 ‘전경련의 부활’을 예고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대통령과 경제단체장의 비공개 만찬에서 배제되고,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 순방 경제사절단에서도 빠지면서 이번 정부에서도 전경련의 입지 확보가 쉽지 않으리란 분석이 나왔다.

차기 회장 추대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1월 임기만료를 앞두고 사퇴 의사를 밝힌 허창수 전 회장은 2011년 회장에 추대된 이후 6차례 연속 회장을 맡았다. 이웅열 회장추천위원회장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주요 기업 총수들에게 회장직을 제안했지만, 대부분 고사했다. 차기 회장 물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전경련 안팎에서는 비기업인까지 포함해 후보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전경련 혁신을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으로 전경련을 평가하고 개혁할 외부 인사가 필요하다는 말도 나왔다.

지난 2월 19일 전경련은 김병준 위원장의 내정 사실을 알리면서 전경련의 위기상황을 강조했다. 전경련은 “비상 상황으로 대대적인 혁신과 변화가 선행돼야 할 시점”이라면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전경열을 진단하고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낼 구원투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웅열 위원장은 김병준 위원장을 회장 직무대행으로 추천한 이유에 대해 “전경련은 탈퇴한 기업과 국민으로부터 여전히 외면받고 있는 위기상황이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객관적인 시각과 뛰어난 역량으로 개혁을 이끌 적임자로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추천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경제 6단체장들과 오찬 회동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경제 6단체장들과 오찬 회동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경유착 아닌 이심전심?

정치권에서는 다른 해석이 나온다. 김병준 위원장의 행보가 대통령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1월 25일 윤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 이후 첫 국무회의에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 신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겠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3일 대통령실이 공개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 명함에는 “한국 시장은 열려 있고 제 집무실도 열려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12개월째 계속되는 무역수지 적자에 윤 대통령이 수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김병준 위원장의 행보도 이 같은 정부 기조와 함께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여권 관계자는 “1980년대 전경련이 정부의 경제정책을 뒷받침해주는 측면에서 효용이 컸다. 수출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만으로는 부족하다. 1980년대 경제체제처럼 기업 인맥을 총동원해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김병준 위원장의 전경련행에는 대통령의 뜻이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야권은 ‘관치’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본다. 최근 정부가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내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관치 금융’ 논란이 거세지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전경련이 김병준 위원장에게 요청했다고 하지만 다른 어떤 힘에 의해 김병준 위원장이 내정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라며 “경제인도 아니고 정치인이 전경련을 운영한다는 게 말이 되나.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방향성으로 보면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국회 기재위)실 관계자는 “정권에서 각종 협회나 단체에 사람을 보내는 일은 많다.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닌 전경련에 대통령과 가까운 정치권 인사가 회장 권한대행으로 가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이고 이례적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말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삼성전자의 법인세 실효세율이 대만 TSMC보다 2배 가까이 높다면서 삼성전자의 실효세율을 21.5%라고 발표한 적이 있다. 그 근거가 뭔지 모르겠더라. 기재부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기재부도 그런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2019년에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였다”라며 “생각보다 전경련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김병준 위원장 내정소식을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한 관치 드라이브를 거는 상황에서 상당히 안 좋은 신호로 본다”라고 말했다.

김병준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우려가 나오자 “권력을 중심으로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으면 유착이지만, 정책과 관련해 서로 지원하는 것은 유착이 아니라 협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가치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윤석열 정부가 자유시장경제를 존중하고 전경련도 중시한다. 굳이 인간관계를 내세우지 않아도 가치적인 측면에서 이심전심으로 서로가 협력하는 그런 관계가 되리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전경련은 최우선 과제로 4대 그룹의 복귀를 꼽는다. 김병준 위원장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4대 그룹의 복귀를 우선 과제로 언급한 바 있다. 2월 23일 전경련 기자간담회에서 김병준 위원장은 4대 그룹 재가입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묻자 “앞으로 진행될 일을 당장 이야기하기는 적절치 않다. 전경련의 위상과 전경련의 역할 및 활동 방향을 제대로 정립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국민으로부터 지지받는 전경련을 만들면 4대 그룹이 아니라 어떤 기업이든 전경련과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이 가장 기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임기 6개월이라는 시간을 못 박은 상황에서 단시간에 신뢰를 회복할 만한 쇄신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전경련은 쇄신 방안의 하나로 산하 연구소인 한경연을 글로벌 싱크탱크로 키우는 것을 골자로 하는 뉴웨이 선언을 발표했다.

전경련을 싱크탱크 중심의 조직으로 개혁하는 방안은 몇 년 전부터 전경련 혁신 방향으로 꾸준히 거론돼왔다. 선언만 있을 뿐, 여전히 구체적인 로드맵은 보이지 않는다. 김병준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4대 그룹이 탈퇴하면서 한경연이 상당히 축소돼 있는 상태다. 이를 무한대로 키워서 큰 연구소로 만드는 것은 현재로서는 힘든 일이다”라며 “바깥에 있는 학술적, 정책적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서 나름대로의 정책이나 정부, 시민사회나 기업에 도움이 되는 제안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면 어떨까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전경련 건물 / 강윤중 기자

서울 여의도 전경련 건물 / 강윤중 기자

4대 그룹 복귀 불투명

재계는 김병준 위원장 선출 이후 행보를 일단 지켜본다는 분위기다. 전경련이 아직까지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은 만큼 재가입에 대해 논의할 만한 시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2017년 삼성전자를 비롯한 기업들은 전경련에 탈퇴서를 제출하고 이를 언론에 알리는 등 적극적인 탈퇴 의사를 보였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들은 재가입을 하기 위해서는 전경련의 변화라는 확실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민적인 공감대 속에서 탈퇴가 이뤄졌던 만큼 재가입 또한 기업이 가입절차를 밟고 회비를 납부하는 등 적극적인 의사의 표현이므로 여론의 지지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대부분의 기업이 대한상의나 경총에 가입돼 있어 따로 전경련 가입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한상의나 경총,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은 조직의 설립목적이나 성격이 달라 고유의 역할은 모두 다르다. 전경련이 위축된 몇 년 사이 영향력이 커진 대한상의가 민·관 창구 역할 및 기업외교의 역할을 도맡고 있어 전경련의 공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3~4년 동안 대한상의가 역할을 잘해왔는데, 전경련의 위상 회복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무엇일지 사실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전경련이 위상을 회복한다고 크게 바뀐다기보다 단체가 하나 더 늘어나는 플러스알파 정도의 효과가 있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참여연대는 2월 20일 “전경련이 윤석열 캠프 출신 정치인을 회장 권한대행으로 인선하려는 시도가 정경유착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미 존재하는 조짐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집권 이후 전경련 등 재계가 요구해왔던 친재벌 정책을 노골적으로 펴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경련은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많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미르재단을 만드는 과정에 대통령실이 전경련 재벌총수들을 압박해 돈을 내게 했다. 당시 안종범 경제수석 밑에 지금의 경제수석인 최상목 비서관이 있었다”라며 “불미스러운 기억이 국민에게 남아 있는 상황에서 색안경을 끼고 볼 여지가 많다”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전경련 자체가 정치권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개혁을 하겠다고 표방한 상황에서 누가 봐도 정치인이 명백한 김병준 위원장을 권한대행으로 추대한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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