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살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희생되었을까? 이 안락함이 나에게 주어지는 대가로 무엇이 지불되었을까?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일제와 한국전쟁 때 학습한 방식으로 반체제 인사들을 고문한 독재 정권. 나는 그중 어느 것도 겪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역경에서 회복할 시간이 없었던 사람들, 성찰할 시간도 없고 성찰을 허락받지도 못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캐시 박 홍의 책 <마이너 필링스>를 읽다가 만난 ‘성찰을 허락받지 못한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표현이 한동안 마음에 머물렀다.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정신건강 전문가로서 느껴온 우리 사회의 병리와 고통의 얼개를 또렷이 짚어내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한국의 120여년은 그야말로 상실과 역경의 역사이다. 가족과 이웃이 죽고, 다치고, 헤어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얼마나 크게 다쳐왔을까. 그 많은 상실과 아픔을 다 감당할 수 없던 이들은 시체를 암매장하듯 두려움도, 분노도, 슬픔도 다 묻을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실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고 시간을 들여 애도하지 않으면 한 사람은, 그리고 공동체는 그다음의 시간들을 온전하게 살아내기 힘들다.
1954년 제주 조천읍 북촌에서 있었던 ‘아이고 사건’은 은폐한다고 하여 진실과 고통을 완전히 덮을 수 없음을, 그리고 슬픔을 억압하는 것이 더 큰 비극이 됨을 보여준다. 4·3사건 당시인 1949년 1월17일 북촌국민학교에서 마을의 남녀노소 400여명이 군인들에게 총살당했다. 이후로도 애도조차 하지 못하고 지낸 마을 사람들은 5년 후인 1954년 1월23일 북촌국민학교 교정에서 이 마을 출신 한국전쟁 전사자의 고별식을 치르던 중 “마을 사람들이 여기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지 5년이 되는 때이니 당시 희생된 분들에게 술 한 잔 올리자”라며 애도를 하다 설움이 복받쳐 ‘아이고 아이고’ 하며 대성통곡을 하게 된 사건이다. 가족과 이웃을 잃은 마을 사람들은 5년 만에 처음 함께 모여 울어본 것이다. 이 울음소리가 길까지 퍼져나가 경찰에 보고되자 관련자들은 경찰 조사를 받고 ‘다시는 이런 집단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풀려난다.
모여서 슬퍼하지 않는다고, 모여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그 일이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씩씩하게 사회에 복귀해 아무렇지 않은 척 생활에 전념할 수는 없다. 겉으로 그렇게 보인다고 해도 내면의 어딘가가 심하게 곪아가게 마련이다.
죽음학 연구자인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를 제시하며 이 감정들을 충분히 겪어내야 상실을 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상실이 다가오는 것을 직감한 인간은 처음에는 상실 자체를 부정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현대 사회는 고통을 부정하고, 이미 고통을 겪고 있는 구성원들에게조차 이를 빨리 처리하고 시스템으로 복귀하기를 종용한다는 면에서 이 부정 단계에 고착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트라우마를 겪어온 한국 사회 또한 이 단계에서 얼어붙어 있는 듯하다.
이후엔 일어난 역경과 상실에 대해 분노하며 많은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고 수많은 ‘만약에’를 그리며 아쉬워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러다가 더는 어떻게 해도 상실을 피할 수 없음을 느낄 때 인간은 드디어 슬픔을 느끼며 우울해진다. 이것은 건강한 애도의 단계이기도 하다. 마음껏 울어야 하는 시기이며, 공동체와 주변에서 마음껏 슬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시기다. 이 시기를 충분히 거쳐야 우리는 상실 또한 삶의 일부로 수용할 수 있다.
역경을 받아들이고 성찰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첫걸음은 애도할 자유를 허락하는 것, 그리고 충분히 울 수 있도록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아직도 아물지 못한 많은 상처와 상실에 대해 ‘아이고 아이고’ 하고 함께 울 수 있는 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