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정의가 치유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4월에는 정의가 넘쳐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치유되지 않을 날들이 너무 많다. 4월에는 기억이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잠에 이르지 못할 날들이 너무 많다. 4월에는 꽃이 피는 이상으로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아파야 할 날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4월에는 고백과 사과와 위로와 연대로 날들이 계속되어야 한다. 4월에는 마음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50년간 마음의 트라우마 영역에서 일해왔던 정신과 의사 주디스 허먼은 과거에 <트라우마>라는 책에서 트라우마 환자들의 치료는 모두 3단계 과정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했었다. 그 치료의 3단계는 ‘안전 되찾기, 지지망 다시 만들기, 그리고 새로운 현실의 삶과 재연결하기’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허먼은 3단계 치료 이후에도 애도가 좀처럼 끝나지 않고 상처가 덧나는 환자 그룹을 지속적으로 만났다. 허먼은 그의 새 책 <진실과 회복>에서 4단계를 제시했다. 환자들이 피해에 대한 사회적 정의가 흔들릴 때마다 아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4단계는 ‘정의를 되찾기’이다.

정의를 되찾지 못하면 사람들이 충분히 치유되지 않는다. 정의의 회복이야말로 영혼을 쉴 수 있게 해준다. 마음의 트라우마는 왜 정의가 중요한 치유 요인일까?

그것은 원인이 사회적 위계에 있거나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 즉 트라우마의 발생에 정의롭지 않은 부분들이 관여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일으킨 사회적 사건에 거대한 권력들의 부정의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끝없이 개인화하고 고유화하고 최소화한다. 피해자들에게 있어 가해 행위는 구조적 정의의 문제이며, 이 문제를 풀어갈 힘은 미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회복 과정에서 정의와 관련된 아주 중요한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한다. 진심 어린 사과란 인정하기, 사죄하기, 책임지기로 이루어졌다. 많은 피해자단체들이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것을 보는 일이 여전히 우리에게는 희망이다.

우리는 사회적 위계나 시스템은 원래 안전하게 설계되었을 것으로 믿는데, 이 기본 전제가 깨지면 사람들은 큰 트라우마를 받게 된다. 피해자보다 센 권력, 혹은 거대한 국가권력이 가해자이면 사람들은 개인적 자유 권한의 행사도 힘들어진다. 이 거대한 권력과 마주해서 진실을 회복하기로 결심한다는 일은 한 개인과 집단의 엄중한 사명이 된다. 홀로코스트와 집단 트라우마를 다루어온 로버트 제이 리프턴은 트라우마의 사회적 정의를 되찾기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은 ‘생존자로서의 사명’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사회적 트라우마가 클수록 피해자, 생존자들은 많아지고, 사회적 정의에 대한 요구는 높아진다. 416생존자는 416가족이라는 직접적 생존자들이 있고, 그날 세월호 안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지 못한 채로 그 방송을 끝까지 함께 보던 어른 목격자들, 즉 엄청난 수의 국민이자 부모였던 목격자들, 생존자들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수 국민 모두가 케네디 모멘트라고 부르는, 10년 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 10주기가 다가왔다. 416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사과에 대한 구호를 여전히 외치고 있다. 또한 사회적 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안전한 사회와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도 주장한다. 세월호 가족뿐 아니라 다른 재난 피해자들과 뭉쳐 재난피해자권리센터를 만들기도 하였다. 세월호 가족의 사명은 우리 사회의 치유와 희망이 되고 있기도 하다.

트라우마의 회복은 정의의 회복으로 치유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만일 정의가 치유하지 않으면 우리 삶은 부서진 채로 살아가야 한다. 사회적 정의를 함께 만드는 것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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