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전문가’ 훈수대로 킬러 문항 배제가 대책?

강태중 중앙대 명예교수

대입 전문가는 어떤 사람인가? ‘대입 전략에 밝은 사람’이라는 정도가 무난한 답변일 듯하다. 이른바 ‘일타 강사’나 대형학원의 대입 연구자는 너끈히 그 부류에 속할 것이다. 대학의 입학사정관과 고3 교사도 포함될 듯하고, 어쩌면 자녀를 ‘하늘(SKY)’ 같은 대학에 합격시킨 학부모도 포함될지 모르겠다. 요컨대 대입 전문가는 제도의 틈새를 잘 알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 여겨진다.

강태중 중앙대 명예교수

강태중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어려운 문항을 배제하라는 것과 같은 지시를 대통령이 해도 되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이 과연 대입 전문가인지 아닌지 옥신각신하는 걸 보면, 전문가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한 듯하다. 그렇지만 대입제도를 손보는 일을 대입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대입제도에 대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참견하려면 대입 요령을 알아야 한다는 뜻인데, 일리 있는 생각이다. 대입제도를 바꾸는 데 그런 ‘전문가’가 필요할 것이다. 제도가 어떻게 돌아가고, 그 아래에서 대입 지원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며, 합격 가능성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이런저런 대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나름대로 잘 예견할 것이다. 제도를 바꾸려면 그런 예견을 고려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입 부정을 수사했던 경험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부정을 막으려면 그것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의 조언도 필요할 테니 말이다.

대입제도를 손질할 때 대입 전문가 얘기만 들으면 될까? 대입 경쟁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지름길을 아는 사람, 제도 악용이 어떤 틈에서 일어날 수 있고 그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아는 사람들로 충분할까? 아닐 테다. 제도를 좋게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좋은’ 게 어떤 것인지 헤아려야 한다. 제도의 ‘좋음’을 논하는 일이 우선이어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제도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는 불문에 부치면서 어떻게 그것을 좋게 고칠 수 있겠는가.

이른바 대입 전문가들은 너무 좁게 눈앞만 보며 계산한다. ‘백년대계’를 얘기할 때마저 그렇다. 교육부 장관은 자신도 전문가이지만 대통령도 전문가라고 국회에서 말했다고 한다. 대입제도에 관심을 두고 다뤄보았거나 그 내막을 좀 아니 전문가라 했던 모양이다. 특히 ‘현장’에서 일했다면 학원강사든, 관료든, 검사든, 교사든, 모두 전문가로 보아 무방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런 전문가들의 의견만 들어 고치면 대입제도는 충분히 좋아질까? 의문스럽다. 현장을 경험했다고 현장 일의 가치를 보는 안목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대입제도의 영향은 그야말로 막대하다. 당락 결정의 규칙만인 게 아니다. 대입이 인생을 좌우한다지 않는가. 그것은 학교 교육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개인의 삶 전반의 질을 결정할 수 있다. 대입제도가 돌아가는 데 따라 학교 교육이 휘청거리고, 인생의 기회가 바뀐다. 이런 엄청난 제도를 전략이나 현장을 안다는 사람들만의 훈수 아래에서 만들어선 안 될 일이다. 그렇게 대입제도를 다루는 건, 그야말로 제도의 ‘목적’도 ‘의미’도 팽개치는 행태이다. 대입제도가 무엇을 위해 있고, 학교가 무엇을 위해 있으며, 삶은 무엇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지 등에 아예 관심 두지 않는 그런 행태이다.

스스로 대입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공정 수능’이니 ‘공교육 정상화’니 하는 말을 들먹이며 자신의 경험치 훈수를 포장하고 있다. 고난도 문항을 ‘핀셋 제거’하면 공정 수능이 되고, 공교육 교과 과정 안에서 수능을 출제하면 교육이 정상화된다고들 역설한다. 그들이 말하는 공정은 무슨 뜻이고 교육 정상화는 무슨 뜻인가? 이른바 최상층 수험생의 머릿골을 썩이는 ‘킬러 문항’만 제거하면 공정한 수능이 되는가? 교사가 ‘킬러’니 ‘준킬러’니 가려가며 수능 대비시키느라, 교과서 진도 따라가기에도 벅찬 학생들은 알아서 하도록 버려두게 되더라도 공정한가? 학생들의 인격 함양은 어떻게 되건, 학교가 수능 대비에 ‘올인’해서 학생들이 학원에 갈 필요가 없게 만들기만 하면 교육은 정상화되는 건가?

대입제도를 공정하게 만들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필요한 건 킬러 문항을 골라내는 일이 아니다. 수능과 사교육비 관계를 분석하는 일도 아니다. 진정 나라와 미래를 걱정한다면, 학교가 사회적인 연대와 번영에 기여하고, 학생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럴 수 있는 학교 교육의 모습이 어떤 것이어야 할지 먼저 고사(苦思)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대입제도가 그런 모습을 얼마나 어그러뜨리는지 살피는 게 급선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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