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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체가 ‘노키즈존’…놀이터가 7만개인데 “놀 곳이 없어요”
“이것 봐, 내가 만들었다!”지난달 23일 경기 성남시의 한 도서관에서 만난 9세 예은이는 한껏 들떠 있었다. 나무 막대로 직접 만든 장난감을 자랑하며 실내를 누비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예은이의 작품은 도서관 내에 자리한 어린이 작업실 ‘모야’에서 탄생했다. 단추, 털실, 병뚜껑, 글루건, 드라이버 등 100여종의 재료와 공구를 갖춘 곳이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라’고 지시하는 어른도 없다. 143㎡의 널따란 라운지에서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보드게임을 하거나, 비밀 이야기를 소근댔다. 채율(9)이처럼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이곳은 지난해 8월 개관한 사립 공공도서관 ‘라이브러리 티티섬’이다.12~19세 어린이·청소년 중심의 도서관을 지향하며 설계 때부터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전체 공간의 절반가량이 12~19세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12세 미만도 전체의 15%나 된다. 티티섬의 정체성은 도서관이면서 동시에 놀이터다.... -
투명장벽의 도시
한국의 대도시는 편리하고 안전합니다. 고층 빌딩과 잘 닦인 도로로 채워진 경관의 쾌적함, 거미줄 같은 대중교통망은 세계적 수준입니다. 하지만 거주자 모두에게 편리하고 안전한 공간일까요. 압축성장과 함께 도시는 고도로 효율화됐지만, 배타성과 효율성이 지배하는 공간에 약자가 머물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2022년 한국의 도시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곳곳에 존재합니다. 장애인의 일상은 집과 ‘시설’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전국에 놀이터가 7만개에 달하지만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공간은 드뭅니다. 건설 노동자와 철도 기관사 등 많은 노동자는 일터에서 화장실을 자유롭게 쓸 수 없습니다. 초고속 고령화로 역사상 가장 많은 노인이 거주하지만 이들은 격리와 배제의 대상입니다.2021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전체의 16.5%, 17세 이하 인구는 14.5%, 등록장애인 인구는 전체의 5.1%에 이릅니다. 하지만 한국 도시는 ‘비장애 성인 남성’들만이 온전히 향유할 ... -
보이지 않는 벽에 갇힌 사람들
한국의 대도시는 편리하고 안전하다. 고층 빌딩과 잘 닦인 도로로 채워진 경관의 쾌적함, 거미줄 같은 대중교통망은 세계적 수준이다. 인구 10명 중 9명(2021년 기준, 91.8%)이 도시에 거주한다. 도시에 살지 않더라도 도시와의 연계 없이 생활하는 이는 드물다. 도시는 일터이자 주택·교통·보건·여가에 이르는 삶의 터전이다. 하지만 거주자 모두에게 편리하고 안전한 공간인가.한국의 도시는 근대화 과정부터 소수자·약자를 배제하는 성벽을 쌓아왔다.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8·10 성남민권운동)은 서울 판자촌 주민들을 상·하수도 시설조차 없는 황무지나 다름없던 곳으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빚어졌다. 한국의 압축성장과 함께 도시는 고도로 효율화됐다. 하지만 배타성과 효율성이 지배하는 공간에 약자가 머물 곳은 보이지 않는다.그 결과 2022년 한국의 도시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장애인·어린이·노인은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일상적으로 마주친다. 장... -
‘기렉시트(기레기+탈출)’ 탈출구는 공익·신뢰
젊은 기자들이 언론사를 떠나고 있다. 떠난 동료를 두고 ‘기렉시트’(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기레기+탈출)에 성공했다며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시대, 단순히 과거 누렸던 명성을 잃은 기자들의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긴 어렵다. 기자들의 ‘탈언론’ 행렬은 의제 설정, 감시·비판 등 언론의 역할이 위기에 처했다는 ‘빨간불’이다. 이는 뉴스의 질 저하 → 뉴스 신뢰도 하락 → 민주주의 약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젊은 기자들은 왜 떠나는 것일까. 이유를 찾기 위해 경향신문은 서울 주요 신문·방송·통신사의 3~13년차 취재기자 17명을 대상으로 일대일 심층 전화인터뷰를 했다. 조사 참여자는 신문사 9명·방송사 6명·통신사 2명이었고, 20대 1명·30대 15명, 40대 1명이었다. 탈언론 행렬은 높은 업무강도와 낮은 워라밸 때문만이 아니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미디어 변화 적응 못한 언론계“대기업 광고 끊으면 망하는 구조... -
“보람은 ‘수업 재미있다’ 말 들을 때…바람은 12년간 못 해본 담임”
복도 위 노란 점자블록을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어간다. 이곳은 학교, 시각장애인은 선생님이다. 이 광경에 위화감이 드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 교사도,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학교도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장애인에게 학교의 벽은 높다. 교육부는 장애인 고용의무를 지키지 못할 때 납부하는 벌금을 공공부문에서 가장 많이 낸다. 지난해 장애인 교사를 뽑지 않아 낸 고용부담금이 385억원. 전체의 79%다. ‘교대·사범대에 지원하는 장애인이 없어서’ 교원 50여만명 중 장애 교원이 1%에 불과한 것일까. 장애인은 교사에 부적합하다는, 감히 누구를 가르치냐는 ‘장애인 차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김헌용 신명중 교사(36)는 지난 12년간 학교 현장에서 이런 차별 구조에 맞서왔다. 그에게는 ‘시각장애인 영어 교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서울에서 1급 시각장애인 최초로 임용고시 일반 교과에 합격했다. ‘인간 승리 주인공’으... -
“IRA는 FTA 틀 벗어나 한국 기업에 명백히 불리…한·미, 긴밀 소통 중요”
첫 여성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캐슬린 스티븐스 코리아 소사이어티 이사장 및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한국산 전기차 차별 논란이 제기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해 “미국에 과감하게 투자한 한국 기업들에 분명히 불리하게 작용한다”며 “미국 정부와 의회는 이 문제가 한국에서 얼마나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관계에서 현재는 “자유무역협정(FTA) 원칙에 기반한 경제 관계가 재배열되는 조정기”라며 긴밀한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제 핵 공격을 명시한 핵무력 법령을 채택한 데 대해선 “지역 전체를 매우 위험하게 만든다”며 “추가 핵실험 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북한을 대화로 불러내기 위해서는 “비핵화 목표를 점진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한국통’ 베테랑 외교관 출신인 스티븐스 소장은 2006년 북한의 1차 핵... -
이래서, 나는 윤 대통령 지지를 접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24%(9월30일 한국갤럽)로 최저치를 찍었다. 취임 초인 지난 5월에도 50%대 초반으로 그리 높지 않았는데 조금씩 내리막을 타더니 반 년도 안 돼 반토막이 났다. 경향신문은 이달 초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찍었다가 지금은 실망해 지지를 철회한 사람들을 접촉해 이유를 들어봤다. 윤 대통령의 대표적인 지지세력이었던 20대 남성과 전통적 보수세가 강한 대구에 사는 60대 남성을 비롯해 30대 주부, 40대 직장인, 서울 강남에 사는 50대 여성, 자영업자 등 성별·지역·연령·직업을 안배해 총 8명을 인터뷰했다. 이들 중 다수는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내 친윤석열계가 이준석 전 대표를 당에서 몰아내는 과정, 그 신호탄이 된 윤 대통령의 ‘체리따봉’ 사건을 원인으로 꼽았다. 줄곧 민주당을 지지하다 이번 대선 때 돌아섰던 30대도, 윤 대통령이 정치에 새 바람을 몰고 올 것을 기대한 40대 직장인도, 국민의힘 20대 당원도 ‘이준... -
고소·고발·수사 ‘대상’이 된 언론…보도의 자유 침해, 혹은 자업자득
바야흐로 언론의 수난시대다. 정치권과 정부 관료들이 언론 보도를 문제 삼아 기자들을 고소·고발하는 건 흔한 일이 되었다. 비근한 사례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 기간에 불거진 비속어 파문이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영상에 ‘(미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단 MBC를 지난달 29일 검찰에 고발했다.국민의힘은 같은 달 19일에는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윤리위원인 유상범 의원과 나눈 문자메시지를 보도한 기자에 대해 ‘오래전 대화를 마치 오늘 대화한 내용처럼 보도했다’며 법적 조치하겠다고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4월 국회 인사청문회 때 언론의 검증 보도를 놓고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언론사 기자들을 고소했다.언론을 향한 정치권·정부 관료들의 고소·고발과 뒤이은 수사·재판은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민주주의의 기둥인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
무대 뒤 아동 인권 지키는 보모…제작자 ‘선의’ 아닌 법 울타리가 필요해
아동·청소년 배우의 든든한 조력자 샤프롱을 아시나요샤프롱(chaperon)은 프랑스어로 과거 젊은 여성이 사교장에 나갈 때 보살펴 주는 사람을 의미. 촬영·공연장에서 아역배우를 보호하는 전담 직원. 현재는 공연계에서 주로 활용.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폭염 속에 연기해야 하는 아역배우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돈을 더 들였다는 일화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배우 이선균씨가 집 안에서 대화하고 아이가 집 밖에서 노는 장면을 찍어야 했는데 2018년 유례없는 폭염이 찾아왔다. 폭염에 야외 촬영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어린 배우를 보호하려 더위가 가신 뒤 따로 촬영해 합성했다. 컴퓨터 이미지 작업을 하느라 비용이 더 들었지만 아역배우 보호를 위해 감수했다고 한다.K팝을 비롯해 K드라마, 영화가 해외 무대에서 잇따라 상을 받고 각종 기록을 쌓아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박수 갈채가 넘쳐나지만 한국의 대중문화예술 촬영장과 공... -
대도시는 지하철이라도 있지만…‘장애인 이동권 지역 격차’
지난 4월 방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서울로 장거리 통근을 하는 경기도민의 애환을 그려내 공감을 받았다. 드라마 속 삼남매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산 넘고 물 건너 서울로 출근했다. 출근 버스를 타느라 전력질주를 하고 회식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야 하는 모습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았다.하지만 그런 출퇴근의 애환조차 누리지 못하는 것이 장애인들의 현실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의 핵심 요구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이다. 지하철, 저상버스, 특별교통수단 등 장애인들 교통수단의 확충 요구도 포함돼 있다. 지방 소도시에서는 장애인 교통사정이 더욱 열악해 비용이 비싼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이동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열린 ‘장애인 이동권 지역 간 차별 철폐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선 장애인 이동권의 도시와 농촌간 격차에 주목했다. “대도시권 역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과제가 산적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