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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도시는 편리하고 안전하다. 고층 빌딩과 잘 닦인 도로로 채워진 경관의 쾌적함, 거미줄 같은 대중교통망은 세계적 수준이다. 인구 10명 중 9명(2021년 기준, 91.8%)이 도시에 거주한다. 도시에 살지 않더라도 도시와의 연계 없이 생활하는 이는 드물다. 도시는 일터이자 주택·교통·보건·여가에 이르는 삶의 터전이다. 하지만 거주자 모두에게 편리하고 안전한 공간인가.
한국의 도시는 근대화 과정부터 소수자·약자를 배제하는 성벽을 쌓아왔다.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8·10 성남민권운동)은 서울 판자촌 주민들을 상·하수도 시설조차 없는 황무지나 다름없던 곳으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빚어졌다. 한국의 압축성장과 함께 도시는 고도로 효율화됐다. 하지만 배타성과 효율성이 지배하는 공간에 약자가 머물 곳은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2022년 한국의 도시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장애인·어린이·노인은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일상적으로 마주친다. 장애인의 일상은 집과 ‘시설’을 벗어나기 힘들다. 뜨거웠던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도 불구하고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내놓은 계획에 따르면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저상버스 도입은 10년 뒤에나 완료될 전망이다. 한국의 리얼세계에 ‘우영우’는 없다.
전국에 놀이터가 7만개에 달하지만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공간은 드물다. 카페·식당뿐 아니라 도시 전체가 ‘노키즈존’이 되어가고 있다. 건설 노동자와 철도 기관사 등 많은 노동자는 일터에서 화장실을 자유롭게 쓸 수 없다. 초고속 고령화로 역사상 가장 많은 노인이 거주하지만 이들은 격리와 배제의 대상이다. 요양시설이 아니라 살던 도시와 동네에서 노년을 보내고 싶은 바람을 도시는 외면한다.
2021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전체의 16.5%, 17세 이하 인구는 14.5%, 등록장애인 인구는 전체의 5.1%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 도시는 ‘비장애 성인’들만이 온전히 향유할 수 있다. 결코 소수라 할 수 없는 인구가 도시 한쪽에 수납(收納)되어 있지만, 이를 당연시하는 ‘인식의 장벽’도 여전하다.
도시는 누구나 자유로이 드나들고, 누구에게나 자리를 내어주는 환대의 공간이어야 한다. 유엔해비타트는 2016년 ‘모두를 위한 도시’를 향후 20년간 도시정책 의제로 채택했다. 노인과 어린이·장애인 등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도시 공간과 기초 서비스에 참여하고 향유할 권리를 보장하는 포용도시를 지향한다. 반면 한국 도시의 지향점은 가늠하기 어렵다. 경향신문 기획취재팀은 공간 불평등의 실태를 들여다보고 ‘모두를 위한 도시’, 공간 민주주의를 향한 모색들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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