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어쩌다 ‘사건’이 되었나
바야흐로 언론의 수난시대다. 정치권과 정부 관료들이 언론 보도를 문제 삼아 기자들을 고소·고발하는 건 흔한 일이 되었다. 비근한 사례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 기간에 불거진 비속어 파문이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영상에 ‘(미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단 MBC를 지난달 29일 검찰에 고발했다.
국민의힘은 같은 달 19일에는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윤리위원인 유상범 의원과 나눈 문자메시지를 보도한 기자에 대해 ‘오래전 대화를 마치 오늘 대화한 내용처럼 보도했다’며 법적 조치하겠다고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4월 국회 인사청문회 때 언론의 검증 보도를 놓고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언론사 기자들을 고소했다.
언론을 향한 정치권·정부 관료들의 고소·고발과 뒤이은 수사·재판은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민주주의의 기둥인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가 하면 수용자의 신뢰를 저버린 언론의 자업자득이라는 시각도 있다. 분명한 것은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 자체가 일종의 ‘사건’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정권 바뀌어도 언론과의 갈등은 계속
언론에 대한 법적 대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 있었던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PD수첩>은 2008년 4월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몰랐거나 알면서도 은폐·축소한 채 수입 협상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농림수산식품부가 수사를 의뢰했고, 검찰은 이듬해 제작진을 체포하고 압수수색했다. MBC 본사 건물의 압수수색도 시도했지만 노조원들이 가로막아 무산됐다. 검찰은 농림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했으나 법원은 1·2·3심에서 내리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이나 업무 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감시와 비판은 이를 주요 임무로 하는 언론보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검찰은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을 보도한 세계일보를 수사했다.
2008년 광우병 보도 ‘PD수첩’
검언유착 의혹·비속어 파문 등
보도에 불만 가진 정치권·정부
기자 상대 고소·고발 빈번해져
문재인 정부 들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 의혹’이 불거진 뒤 언론 보도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고조됐다. 급기야 언론사가 당사자로 사건 전면에 등장했다. MBC는 2020년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과의 친분을 이용해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위를 털어놓으라고 협박성 취재를 했다는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을 보도했다.
검찰은 이 전 기자의 자택과 채널A 등을 압수수색한 끝에 강요미수 혐의로 기소했다. 이 전 기자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담은 언론중재법을 만들자고 했다.
국민의힘은 언론중재법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법’이라며 반대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를 강조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검찰은 ‘검언유착’ 보도와 관련해 MBC와 KBS 등을 수사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KBS에 오보를 제보한 취재원으로 의심받는 신성식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의 관사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한 장관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KBS 기자들을 고소한 사건이다.
■취재원 색출·위축 효과 노린 법적 대응
언론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권력자의 고소·고발과 그에 뒤이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는 언론을 위축시킬 의도로 악용될 수 있어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유력 정치인이나 관료, 기관은 언론 보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언론을 압박해 추가 보도를 막을 수 있다. 취재원을 색출하기 위한 용도로도 수사가 활용된다.
문제는 권력자의 고소·고발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이어지고
취재원 색출 용도로 이용되면서
언론과 기자를 위축시킨다는 점
법원은 보도에 일부 허위 내용이 있더라도 공익성이 있는지, 진실로 믿을 만한 사정이 있었는지를 감안해 위법성 여부를 가린다.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이어지는 수사·재판은 그 자체로 언론과 기자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하다. 김성순 변호사는 “최근 명예훼손을 이유로 이뤄진 압수수색은 허위냐, 아니냐를 밝히는 것보다는 다른 공모자나 누설자를 밝히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압수수색이 남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나중에 무죄가 나오더라도 기자에 대한 위축 효과는 나타난다”며 “일반 시민에 대한 보도와 관련해서는 규제나 소송이 더 활발해질 필요가 있지만 국가기관이나 권력자, 재벌이 언론을 상대로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하는 것은 전략적 봉쇄와 찍어누르기”라고 했다.
언론이 수사대상이 되는 경우는 대체로 명예훼손 혐의와 관련된 것이다. 현행 명예훼손 법 체계가 언론이 손쉽게 형사사법의 영역으로 끌려가게끔 되어 있다. 한국의 명예훼손죄는 반드시 피해자가 고소해야 하는 친고죄가 아니라 제3자가 고발할 수 있는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이다. 허위사실 적시뿐 아니라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경우도 범죄로 보고 처벌한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명예훼손을 당한 당사자가 아닌 제3자도 고발할 수 있는 법 체계 속에서 (특정 정치세력의) 지지단체나 정당이 고발해 언론을 사법적 영역으로 끌고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명예훼손 행위를 처벌하는 것보다는 명예훼손 고소·고발 사건의 진위를 가리는 데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수사를 하는 검찰·경찰이 사실상 심판자가 돼 있다”며 “디지털 기기에 대한 압수수색은 기본권 침해 요소가 크다. 중범죄가 아닌 명예훼손과 같은 범죄에서 압수수색 등 과도한 수사는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표현에 대한 형사처벌은 전 세계적으로 폐지하는 추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윤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과 관련해 낸 성명에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폐지하되 고위공직자나 기업과 같은 사회적 강자들에 의한 형사고소는 접수 단계에서 각하시키는 절차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민주사회에서 토론을 통해 형성돼야 할 의사표현이 수사와 기소로 위축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취재원보호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취재원을 밝히기 위한 압수수색은 금지하고, 부득이하게 언론을 압수수색하더라도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법무부는 언론을 수사할 때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1970년 마련해 시행 중이다. 가이드라인에는 언론 자유를 통한 공공의 이익과 법 집행의 필요성을 비교 형량하고, 광범위한 자료 제출 요구를 제한하며, 취재 활동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조재현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논문 참조).
■“플레이어가 된 언론, 신뢰 회복해야”
언론이 빈번하게 고소·고발과 수사 대상이 된 것이 언론 스스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성과 객관성이 생명인 언론이 정치권의 진영논리를 답습해 불신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정치권 진영논리 답습한 언론은
공정·객관성 잃으며 불신 자초
“정치적 사안에서 ‘선수’가 되면
수용자들은 배경을 의심하게 돼”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언론이 정치적인 사안에서 플레이어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 언론이 일방의 편을 들거나 직접 ‘선수’가 되어 사안에 가담하는 경우가 늘다보니 수용자도 보도의 정치적 배경을 의심하게 되었고, 지지하는 정치세력과 언론사 입장이 다르면 법을 통해 처벌하자고 나서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심 교수는 “ ‘언론이 공익적인 일을 하고, 그것은 사회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는 인식, 즉 언론이 무엇인가를 비판하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인 승인이 없는 상태”라며 “언론 보도를 (우리 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쉽게 고소·고발하고 압수수색까지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민사회도 언론을 정파적 수단, 도구로만 활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내 편 아니면 모조리 나쁜 놈이 돼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언론이 정파성을 띨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한국 언론은 도가 지나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언론이 아주 좁은 스펙트럼만을 갖고 가르치려 들다가 상황이 바뀌면 입장도 바꾸니 독자들은 언론이 특정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그러니 설령 언론이 옳은 비판을 하더라도 의도를 의심받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비판당한 정치인이 ‘비판이 아닌 정치공격’이라고 주장하면 지지자들에게 그 선동이 먹힌다”며 “의도를 의심받는 보도에 지지자들이 꿈쩍할 리 없다. 그게 언론의 신뢰성을 갉아먹고, 정치인들의 선동이 잘 먹히는 이유”라고 했다.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언론이 정확한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정파적으로 편향된 보도를 해 온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언론 태도로 인해 시민들이 정파화됐고, 진영 논리에 기대 자신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도 ‘가짜뉴스다, 언론이 편향됐다’고 주장하면서 빠져나가는 방법이 생겼다”며 “그러면서 언론에 대한 불신도 심화된 것”이라고 했다. 이런 악순환과 ‘인터넷 언론 1만개 시대’의 무한 경쟁, 온라인 환경의 속보 경쟁 속에 좋은 언론의 좋은 기사는 묻히고 ‘가짜뉴스’ ‘기레기’ 논란만 확대된다는 것이다. 정파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상업주의를 추구하는 유튜브 채널이 인기를 끌자 제도권 언론이 편승한다는 비판도 있다.
언론이 ‘팩트체크’를 강화하고 스스로 자정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한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을 보면, 뉴욕타임스는 고의적이거나 부주의에 따른 거짓 보도는 독자와 맺은 약속을 배신하는 행위로 보고 구체적인 윤리 기준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편향된 언론’이란 오명 끊으려면
사실 기반 팩트체크 강화는 물론
윤리적 규제안 스스로 만들어야
“법을 통해 단죄만 하려고 하면
‘언론다운’ 보도는 더 힘들어져”
예를 들어 기자가 취재원과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실 수는 있지만 공식적인 업무상 관계와 개인적인 친분 관계의 차이를 항상 명심하고 취재할 때는 반드시 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취재원으로부터 선물이나 혜택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 불편부당성에 대한 대중의 믿음을 훼손하는 경우가 예측된다면 개인적 발언 등 대외 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도 있다. 심석태 교수는 “모든 것을 법에 맡기지 않도록 언론이 먼저 자율 규제 시스템을 만들어 언론의 사회적 책임성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심 교수는 “더 좋은 언론이 되는 것은 법이 정할 게 아니라 언론이 자율적으로 컨트롤해야 되는 부분”이라며 “언론인과 언론 전문가들이 모여 언론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면 시민들도 움직일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박영흠 선임연구위원은 “언론이 언론답지 못하니까 사람들이 법을 통해 단죄하자고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법을 통해 단죄하려고 하면 할수록 언론은 언론다운 보도(탐사·기획 보도)를 하기 힘들어진다”며 “대화와 토론의 영역에서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