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무쇠팔이 아닌 ‘바위 같은 영혼’으로 던졌다

이용균 기자

1984년 가을, 열흘간 610구 ‘불멸의 투구’…그 기록영화 ‘1984 최동원’

1984년 한국시리즈 4승을 혼자 달성한 롯데 투수 최동원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1984 최동원>이 오는 11일에 개봉된다. 영화사 진, 트리플 픽처스 제공

1984년 한국시리즈 4승을 혼자 달성한 롯데 투수 최동원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1984 최동원>이 오는 11일에 개봉된다. 영화사 진, 트리플 픽처스 제공

10주기인 올해 완성, ‘최동원 데이’인 11월11일 개봉

‘거대한 벽’ 삼성과 맞선 투혼
롯데 ‘전설적 우승’ 영웅 스토리
김시진 등 상대팀 선수들의 고백
다시 보는 ‘역사적 승부’의 현장

1984년 한국시리즈는 한국 야구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승부였다. 빌런과 히어로, 거대한 악당과 초라한 영웅의 대결. 인류 탄생 이후 모든 이야기의 기본 바탕이었던, 모든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바로 그 구도가 37년 전 가을야구에 마련됐다.

전기 리그 우승팀 삼성은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롯데와의 2연전에서 2가지 선택을 했다. 이만수의 타격 3관왕을 위해 타격 2위이던 롯데 홍문종을 9연속 고의4구로 걸렀고, 껄끄러운 상대 OB 베어스를 피하려 ‘져주기 경기’를 했다. 후기 리그에서 롯데를 우승시켜, 한국시리즈에서 보다 쉽게 우승하겠다는 계산이었다. 당시 경향신문은 ‘야구냐 야바위냐 연이틀 팬 우롱한 져주기 졸전’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1984 최동원>은 열혈 롯데팬으로 알려진 영화배우 조진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추억은 기다림을 견디는 힘이다. 그 가을의 추억처럼 말이다.’

1984년 가을의 추억은 여전히 많은 팬들을 뜨겁게 만든다. 삼성은 져주기 경기와 함께 ‘악당’이 됐고, 전력차가 확실한 롯데는 응원받는 언더독이 됐다. 그리고 롯데에는 최동원이 있었다.

1984 최동원  | 영화사 진, 트리플 픽처스 제공

1984 최동원 | 영화사 진, 트리플 픽처스 제공

최동원은 9월30일 1차전에서 138구 완봉승을 거뒀고, 이틀 쉬고 열린 3차전(10월3일)에선 149구 완투승을 거뒀다. 또 이틀 쉬고 나선 5차전(6일)에서 8이닝 완투패(125구)한 뒤 벼랑끝 6차전(7일)에 다시 나와 5회부터 72구 무실점 투구로 승리 투수가 됐다.

9일 열린 7차전에서 최동원은 투구폼을 취했다 푸는 동작을 반복하는 등 체력이 바닥났음을 마운드에서 보여주면서도 9이닝을 혼자 책임졌다. 10일간 5번 등판해 모두 610구를 던진 투혼.

영화는 1984년 한국시리즈를 함께한 동료와 선후배들의 증언과 어렵게 모은 영상 자료를 바탕으로 그때의 추억을 재구성한다.

영화에서 최동원의 활약상을 증언한 김시진, 강병철, 한문연(왼쪽부터). 영화사 진·트리플픽처스 제공

영화에서 최동원의 활약상을 증언한 김시진, 강병철, 한문연(왼쪽부터). 영화사 진·트리플픽처스 제공

1차전부터 7차전까지 이어지는 경기 장면 사이에 강병철 당시 롯데 감독과 김용희, 김용철, 한문연 등 동료들의 설명이 그때의 감정을 다시 떠오르게 만든다. 상대팀이었던 이만수와 김시진도 과거 기억을 고백한다. 다시 봐도 뭉클한 최동원의 이를 악문 투구와 함께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패배한 빌런’이 된 김시진의 고백이 영화를 더욱 의미있게 만든다.

김시진은 “저 스스로가 동원이보다 낫다고 한 번이라도 생각했으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쫓아가는 입장이었다”고 말한다. 김시진이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비밀이 이 영화를 통해 37년 만에 처음 공개된다. 추억과 기억을 모아 되살리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매력이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제작한 조은성 감독은 10년 전부터 이 영화를 기획했고 4년 전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고 최동원의 어머니 김정자씨로부터 창고 안에 있던 비디오 테이프를 받아 디지털화했고, 가능한 한 모든 곳을 뒤져 최동원이 담긴 영상 자료를 어렵게 구했다.

한국시리즈 7차전을 지켜본 롯데 도위창 코치의 딸 마리코의 증언은 혼신을 다해 610구를 던진 직후 완전히 탈진한 최동원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임호균의 아들 돌잔치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는 장면은 최동원의 팬들을 특별한 감흥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3일 VIP 시사회에 참가한 박찬호는 “최동원 선배님의 모습이 야구라는 종목의 가치와 레거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자 야구 선수 김라경은 영화를 본 뒤 “최동원 선수님에 대해 무쇠팔이라고만 알고 있었다”며 “지금 보니 무쇠가 아니라 거대한 바위산 같다.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영화는 고 최동원의 10주기인 올해 다행히 완성됐다. 그의 등번호 11번에서 딴 ‘최동원데이’인 11월1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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