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들어, 너희가 최고였어

이용균 기자

여 쇼트트랙 3000m 계주 ‘1위’ 심판 판정에 물거품

반칙 지목 김민정 “억울”… 팬들 “그대들이 진짜 금”

한국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의 맏언니 김민정(25·용인시청)은 3000m 계주 결승을 앞둔 현지시간 24일 오전 9시50분, 컴퓨터 앞에 앉아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개인전은 나 하나 못 타서 내 책임이지만 계주는 그렇지 않다. 나 하나로 인해 4명이 피해를 본다. 하지만 그만큼 4명이서 함께 파이팅한다면 정말 해볼 만하다”고 적은 뒤 “우리는 4명이 모두 강하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정말 죽도록, 정말 매일 울면서, 고비를 넘겨가면서 또다시 연습한다”고 했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25일 밴쿠버 퍼시픽 콜로세움에서 열린 2010 동계올림픽 3000m 계주 결승에서 실격 판정을 받고 허탈한 표정을 짓는 순간, 금메달을 안게 된 중국 대표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밴쿠버 | 연합뉴스

한국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25일 밴쿠버 퍼시픽 콜로세움에서 열린 2010 동계올림픽 3000m 계주 결승에서 실격 판정을 받고 허탈한 표정을 짓는 순간, 금메달을 안게 된 중국 대표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밴쿠버 | 연합뉴스

그러나, 8시간이 흐른 뒤 대표팀의 ‘죽도록 고생한 땀’은 심판 판정으로 모두 물거품이 됐다. 4분10초75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1위로 골인했지만 주심은 부심과 옥신각신해가면서까지 한국의 실격을 선언했다. 태극기를 흔들던 여자 대표팀의 기쁨의 눈물은 금세 억울함의 눈물로 바뀌었다.

5바퀴를 남겨둔 상황에서 교대 받은 김민정이 첫 코너에서 안쪽을 파고들어 선린린(중국)을 앞서 나가는 순간 김민정의 팔이 선린린을 밀어 진로 방해(Impeding)를 했다는 판정이 나왔다. 여자 대표팀 최광복 코치는 공식 인터뷰에서 “경기 전 심판진의 성향을 파악해 ‘조금만 스쳐도 불리한 판정이 나올 수 있으니 주의하자’고 해둔 터였지만, 결국 이렇게 당했다”며 “우리는 분명히 계주에서 이겼다. 심판들만 우리를 인정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반칙으로 지적당한 김민정의 억울함은 더욱 컸다. 뒤늦게 기뻐하는 중국 대표팀을 멍하니 바라보던 김민정은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실격 사유가 하나도 없었다. 정말 억울하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김민정은 대표팀 맏언니였지만, 개인전을 모두 포기한 채 출전하지 않았다. 오직 한국이 올림픽 5연패를 노리는 3000m 계주에만 온 힘을 모았다. 중국과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던 레이스 막판, 사력을 다해 안쪽을 파고들었고 선린린에 앞설 수 있었다. 김민정의 투지로 중국의 추격을 따돌렸고, 결국 4팀 중 한국이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2002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때 김동성의 금메달을 날린 바로 그 심판 짐 휴이시(호주)의 판정은 김민정이 경기 전 스스로 적었던 것처럼 ‘나 하나로 4명이 피해를 본’ 결과를 낳아버렸다. 본의 아니게 실격의 책임을 뒤집어쓴 김민정은 숙소로 돌아와 다시 미니홈피에 적었다. “아침에 내가 쓴 글을 보고 나는 지금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정말 최고였다. 너희들은….”

김민정의 말대로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은 최고였다. 이은별(19·고려대 입학 예정)은 미니홈피에 “언니들, 승희도, 너무너무 잘해줘서, 너무너무 고마웠어요”라며 “언니들 저 그 순간 진짜진짜 잊지 못할 거 같아요. 그렇게 행복했던 적 처음이에요”라고 적었고, 조해리(24·고양시청)도 “그래 별아~ 우린 정말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당당히 1등이야. 너무 수고했어”라고 답했다.

심판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팬들은 김민정을 비롯,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에 “당신들이 진짜 금메달”이라며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내고 있다. 김민정의 미니홈피를 방문한 이아영씨는 “그 열정이 우리나라 국민에겐 전해졌어요”라며 “제 마음속에 금메달은 이미 따셨는걸요”라고 대표팀을 위로했다.

☞[화보]실격이라니… 도둑맞은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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