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유족도 반대했는데…17년만에 사형 집행한 미 연방정부

김윤나영 기자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 주 테러호트에서 시민들이 사형제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미 연방정부는 1996년 3명을 살해한 대니얼 루이스 리에 대한 사형판결을 14일 집행했다. 테러호트|AP연합뉴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 주 테러호트에서 시민들이 사형제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미 연방정부는 1996년 3명을 살해한 대니얼 루이스 리에 대한 사형판결을 14일 집행했다. 테러호트|AP연합뉴스

미국에서 사형제 폐지 논란이 재점화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4일(현지시간) 17년 만에 연방정부 차원의 사형을 집행하면서다. 심지어 피해자 유가족이 사형 집행을 원하지 않았는데도, 사형 집행을 강행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법과 질서’를 지키는 지도자 이미지를 세우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미 정부는 14일 인디애나주의 데레호트 연방교도소에 수감된 사형수 대니얼 루이스 리(47)에게 사형을 집행했다. 사형 집행은 독극물 주사 방식으로 이뤄졌다. 백인 우월주의자인 리는 백인 국가 건설 계획을 위해 1996년 아칸소주에서 총기와 현금을 훔치고 총기 거래상과 8살 딸 등 일가족 3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고 수십년째 복역 중이었다. 이번 사형 집행을 두고 법원에서 수차례 연기와 재개 결정이 내려졌다. 13일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이 리의 사형 집행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제동을 걸었지만, 대법원은 5대4로 하급심을 뒤집고 사형 집행을 허가했다.

미 연방정부가 사형을 집행한 것은 2003년 이후 17년 만이다. 미국은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사형제를 존치한 국가이지만, 텍사스·버지니아 등 일부 주에서만 시행할 뿐 대부분 주에서 사형제를 폐지하거나 사문화했다. 주 정부 차원의 사형 집행 건수도 6년 연속 30건 미만을 기록하며 줄어드는 추세였다.

특히 리 사건 피해자의 유족들이 종신형을 원하는데도 사형을 강행해 논란을 키웠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지난달 사형 집행 방침을 밝히면서 “끔찍한 범죄의 희생자와 유가족 덕분에 사법체계가 부과한 형을 집행할 수 있었다”고 했지만, 정작 유족들은 “유족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맞섰다. 법무부는 지난해 연방 사형수 62명 가운데 리를 포함한 5명에 대한 사형 집행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법무부는 이번주에만 새로운 사형수 두 명에 대한 추가 사형을 집행할 방침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략 때문에 사형 집행을 서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종차별 반대 시위, 코로나19 방역 실패에 대한 비판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이 사형 집행을 통해 자신을 ‘법과 질서’의 지도자 이미지로 각인하려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말 바꾸기’를 쟁점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사형제에 반대하지만, 상원의원이던 1994년 연방정부 차원의 사형제를 확대하는 법안 통과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이력이 있다는 것이다. NYT는 트럼프 캠프가 “백인 우월주의자인 살인범에 대해서도” 사형 지지를 번복한 바이든 전 부통령을 비난하며 이번 사형 집행이 가져올 정치적 파장을 포착했다고 지적했다.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살해 이후 미국 전역으로 번진 인종차별 시위와 맞물려 필요성이 부각된 ‘경찰·사법제도 개혁’ 여론에 대한 맞불 차원이라는 해석도 있다. AP통신은 “비판론자들은 정부가 긴급히 사형을 집행할 필요가 없는데도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불필요한 긴급성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면서 이번 사형 집행은 대선을 앞두고 형사사법 개혁에 관한 논의에서 새로운 전선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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