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피해 오니 ‘화마’…‘비극’에 갇힌 로힝야

김윤나영 기자

판자촌 불타 최소 15명 사망
철조망에 가로막힌 아이들
숯덩이 시신으로 발견돼

최근 원인 모를 화재 반복
방글라데시 정부 추방 정책
미얀마엔 쿠데타로 못 가

방글라데시 남동부 콕스바자르에 있는 미얀마 로힝야족 난민촌에서 22일 큰불이 나 최소 15명이 숨지고 5만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난민촌 주변에 쳐진 철조망 탓에 도망칠 수도 없었던 아이들의 시신이 까만 숯덩이로 발견되고 있다. 이번 화재로 판잣집 수천채가 한꺼번에 불타면서, 미얀마 군부의 학살에 피난 온 로힝야 난민들은 또다시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했다.

방글라데시 매체인 DB뉴스24는 22일 콕스바자르 우키야에 있는 발루칼리 로힝야 난민촌에서 화재가 발생해 9600채의 판잣집과 보건시설 등을 태운 후 10시간 만에 진압됐다고 보도했다. 애초 화재는 작은 규모였지만 요리용 가스 실린더가 폭발한 뒤 다닥다닥 붙은 나무 판잣집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난민들이 사는 집은 대나무와 비닐 등 불에 취약한 재료로 만든 가건물인 데다 변변한 소화시설도 없어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구호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의 자원봉사자 타예바 베검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여기저기서 뛰쳐나갔고, 아이들이 가족을 부르며 울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번 화재로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15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미처 도망치지 못해 새까맣게 탄 어린이 시신 두 구도 발견됐다. 국제난민기구 레퓨지 인터내셔널은 성명에서 “난민촌에 철조망이 설치돼 도망칠 수 없었던 탓에 많은 어린이가 실종됐다”고 밝혔다. 현재 실종자가 400여명에 달해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미얀마 군부의 대량학살을 피해 고향을 떠나온 로힝야 난민들은 이번 화재로 또다시 거처를 잃고 망연자실했다. 콕스바자르 난민촌은 100만명 넘는 로힝야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촌이다. 로힝야 난민 자이푸르 후세인(50)은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미얀마에서 군부가 모든 것을 파괴했는데, 이번에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났다”고 말했다.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방화를 의심하고 있다. 콕스바자르 난민촌 지원 사업을 벌이는 사단법인 아디는 이번 불이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다고 전했다. 국제앰네스티 활동가 사드 함마디도 트위터에 “최근 원인 모를 화재가 난민촌에서 계속 반복되는데, 우연치고는 발생 빈도가 너무 높다”고 적었다.

로힝야 난민촌에서는 지난 19일에도 두 차례 불이 나 판잣집 여러 채가 파괴됐다. 지난 1월에도 두 건의 대형 화재가 발생해 수천명이 집을 잃고 유니세프가 세운 학교 4곳이 문을 닫았다.

잇따른 화재와 방글라데시 정부의 난민 추방 정책까지 겹치면서 로힝야족은 오갈 데 없는 처지에 놓였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인권단체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부터 로힝야 난민 1만3000여명을 벵골만에 있는 무인도 바샨차르로 강제이주시켰다. 인권단체들은 난민 11명이 화장실 1개를 나눠 쓰는 등 시설이 열악한 데다, 홍수 피해 위험까지 있다고 반발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디의 김기남 변호사는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 난민이 콕스바자르 난민촌이 너무 ‘안락’해 바샨차르섬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는 로힝야족에게 미얀마로 돌아갈 것도 독촉하고 있다.

그러나 로힝야족은 군부 쿠데타 이후 더욱 미얀마로 돌아가기 어려워졌다. 군부가 소수민족 거주지역을 점령하고 실탄을 쏘고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 매체 이라와디는 21일 군이 소수민족인 샨족이 많이 사는 북부 샨주에서 실탄을 쏘고 주민들을 고문하면서 주민 1500명이 집을 떠나 도망쳤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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