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파 선거’ 등돌린 홍콩 유권자…‘투표율 얼마나 낮을까’ 관심

이윤정·박하얀 기자

‘애국자만 통치’ 개편 후 첫 입법회 선거 결과 20일 발표 주목

범민주 인사들 출마 보이콧…시민들 “백지투표” 반발 체포도

투표장엔 “복장에 민감한 슬로건 가려라” 초록색 재킷 제공

‘친중파 선거’ 등돌린 홍콩 유권자…‘투표율 얼마나 낮을까’ 관심
19일 치러진 홍콩 입법회 선거에서 출마 후보의 지지자들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위 사진). 이번 선거는 중국이 사실상 친중 인사들만 출마할 수 있도록 선거제를 개편한 후 처음 치러지는 것으로, 야권과 시민운동 진영은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홍콩 사회민주연맹 회원들이 투표소 밖에서 선거제 개악 등을 비판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아래).    홍콩 | AFP연합뉴스

19일 치러진 홍콩 입법회 선거에서 출마 후보의 지지자들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위 사진). 이번 선거는 중국이 사실상 친중 인사들만 출마할 수 있도록 선거제를 개편한 후 처음 치러지는 것으로, 야권과 시민운동 진영은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홍콩 사회민주연맹 회원들이 투표소 밖에서 선거제 개악 등을 비판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아래). 홍콩 | AFP연합뉴스

‘애국자가 다스리겠다’는 목표를 내건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가 19일 치러졌다. 친중 일색인 후보들로 민심이 싸늘해지면서 선거 전부터 시민들이 선거 보이콧과 백지투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20일 발표될 선거 결과에서 투표율이 얼마나 낮을 것이냐가 선거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홍콩 정부는 백지투표를 선동한 혐의로 10여명을 체포하는 등 투표율을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썼다.

■ 친중 인사로 채워진 선거

홍콩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10시30분까지 630여개 투표소에서 의원 90명을 선출하는 입법회 선거가 실시됐다. 홍콩 입법회 선거는 당초 지난해 9월 치러질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 등을 이유로 1년 넘게 미뤄졌다. 그사이 중국은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을 만들겠다며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 특별행정구 선거제도 완비에 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홍콩 민주화 진영이 90%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자 이에 놀란 중국 정부가 선거제도를 대폭 개편한 것이다.

선거제가 개편되면서 후보들은 친중 일색으로 채워졌다. ‘애국자’를 걸러내기 위해 후보자의 사전 자격심사가 신설되자, 제1야당인 민주당을 비롯한 범민주파 진영은 선거제도를 문제삼으며 후보를 내지 않았다. 민주 진영 주요 인사들은 대부분 ‘정부 전복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감옥에 수감돼 있거나 망명했다. 직접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지역구 의석수도 크게 줄었다. 지난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과반인 19석을 차지한 지역구 의석수는 35석에서 20석으로 대폭 축소됐다. 전체 90석 가운데 40석을 선출할 권한이 있는 선거인단 1448명은 대부분 친중 인사들이다. 나머지 30석은 간접선거로 뽑는 직능대표 의석인데 이는 제도 변경 전부터 원래 친중파들의 입성 통로였다.

결국 이번 선거의 관전 포인트는 ‘당선자’가 아닌 ‘투표율’이 됐다. 이날 오후 6시30분 현재 중간 투표율은 25%로,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앞서 홍콩여론연구소도 이번 선거에서 투표하겠다는 응답이 50%에 그쳤다며 1990년대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저 수치라고 밝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자체 여론조사에서 투표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응답자가 44%에 그쳤다고 전했다. 일부 매체들은 이번 선거 투표율이 20~40%에 머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2019년 범민주 진영이 압승한 구의원 선거 투표율은 71.2%였다.

뉴욕타임스는 친중 인사 선출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시민들이 보이콧과 백지투표로 민심을 표출해 선거가 비공식적 국민투표처럼 치러질 것으로 내다봤다.

■ 백지투표 언급만 해도 체포

이를 우려한 홍콩 당국은 보이콧을 언급만 해도 체포와 협박을 일삼았다. 홍콩 당국은 선거를 앞두고 시민들에게 백지투표를 선동한 혐의 등으로 10명 이상을 체포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홍콩에서는 선거를 보이콧하거나 무효 투표를 하도록 선동하는 경우 법에 따라 최대 3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법원은 호주에 머물고 있는 테드 후이 전 야당 의원과 영국으로 망명한 민주운동가 네이선 로 등에 대해서도 영장을 발부했다.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유권자들에게 선거 보이콧을 당부하거나, 백지투표를 촉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심지어 홍콩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소에 온 유권자의 복장에 ‘민감한’ 슬로건이 적혀 있을 경우 이를 초록색 재킷 형태의 덮개로 가리기로 했다고 SCMP가 지난 17일 보도했다. 유권자가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경찰이 개입하게 될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하지만 ‘민감한’ 표현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당국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바르나바스 펑 와 홍콩 선관위원장은 “투표소 감독관이 (문구가)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불필요한 다툼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덮개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일부 문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사회에서 부차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각 투표소에는 최소 20개의 초록색 덮개가 구비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내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는 영역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앞서 지난 10월 스탠더드차타드 마라톤 대회에서는 참가자들의 옷에 새겨진 ‘홍콩’ 문구의 글꼴이 홍콩 시위 참여자들이 사용한 구호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테이프로 가리도록 했다.

홍콩 당국은 선거날인 19일 테러 발생 가능성 등에 대비해 경찰 1만명을 배치하는 한편, 대중교통 요금을 받지 않는 등 투표율 올리기에도 열을 올렸다. 홍콩 중국은행 등 일부 국영은행은 직원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메일을 보냈다.

홍콩 시민들은 사실상 이번 선거에 어떤 기대도 갖고 있지 않지만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선거 결과에 자신만만해하고 있다. 그는 최근 중국 기관지 환구시보에 “정부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때 투표율이 떨어질 수 있다”며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4년 우산혁명에서 학생 지도자들과 정부 회담에 협상가로 나섰던 람 장관이 ‘친중파’로 돌아선 것에 대해 재스퍼 창 전 홍콩 입법회 의장은 “큰 아이러니”라며 “이제 람 장관의 역할은 자신을 포함해 홍콩 시민이 믿었던 (민주화에 관한) 것들을 말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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