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로 돌아선 ‘영국판 러스트벨트’…‘브렉시트 출구’는 열었지만

정환보 기자
12일 실시된 영국 총선 결과. ‘파란색’이 보수당, ‘옅은 빨간색’이 노동당, ‘노란색’이 스코틀랜드국민당이 승리한 선거구 |BBC방송 홈페이지 캡처

12일 실시된 영국 총선 결과. ‘파란색’이 보수당, ‘옅은 빨간색’이 노동당, ‘노란색’이 스코틀랜드국민당이 승리한 선거구 |BBC방송 홈페이지 캡처

“보수당이 노동당의 ‘붉은 벽’을 시퍼렇게 물들이며 무너뜨려 버렸다.”(영국 가디언)

영국 보수당이 12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에서 단독 과반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면서 영국의 정치 지형도가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짧게는 1987년 이후 30여년 만에, 길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노동당 텃밭’ 지역구에서 지지정당이 뒤바뀌는 ‘정치적 재편성(realignment)’이 일어난 것이다.

보수당은 이번 총선으로 전체 의석 650석 가운데 365석을 차지하며 과반 기준인 326석을 훌쩍 넘겼다. 마거릿 대처 총리가 보수당을 이끌던 1987년(376석) 총선 이후 최고 기록이다. 반면 ‘전통의 라이벌’ 노동당은 203석에 그치며 1935년(154석)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양당의 격차는 2년 전 총선 당시 56석에서 162석으로 약 3배 가까이 벌어졌다.

결정적인 승부처는 ‘붉은 벽(red wall)’으로 불리는 북잉글랜드와 미들랜즈, 웨일스 북부 지역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76곳 지역구 가운데 보수당이 50석을 획득한 이 지역은 광산·철강·염전 노동자들의 비중이 높은 곳들이다. ‘빨간색’으로 상징되는 노동당의 절대 아성으로 여겨지던 곳이었다. 특히 1980년대 ‘철의 여인’ 대처 총리의 신보수주의와 탄광 폐쇄 등에 대한 반발정서가 강해 보수당으로서는 감히 넘보기 힘든 지역이었다. 하지만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에서 ‘탈퇴’ 여론이 앞섰고, 2017년 총선에서도 보수당 당선자가 배출되며 변화의 조짐이 드러난 바 있다.

이들 지역에서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반이민·반유럽통합 정서가 집중적으로 표출되면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노동당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노동당은 1997년부터 10년 간 총리를 지낸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지역구였던 잉글랜드 북동부 세지필드와 비숍오클랜드 등 1935년 이후 한 차례도 패배하지 않은 지역까지 빼앗겼다.

이에 보답하듯 14일 잉글랜드 북부를 방문한 보수당 대표 보리스 존슨 총리는 세지필드에서 지지자들과 만나 “여러분들이 놀라운 일을 해냈다”라며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브렉시트를 완수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보수당의 압승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로 구성된 ‘연합왕국’ 영국의 분열은 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브렉시트 반대’를 외쳐온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2년 전보다 13석 늘어난 48석으로 명실상부한 제3당으로 부상하면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요구가 재분출할 것으로 보인다. 니컬라 스터전 SNP 대표는 개표 직후 “스코틀랜드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면서 “보리스 존슨 정부를 원치 않으며 EU를 떠나기도 원치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존슨 총리는 13일 스터전 대표와의 통화에서 “영국의 국가적 통일성에 대한 의지에는 흔들림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하지만 스터전 대표는 2014년에 이은 2차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운 터여서 충돌이 불가피하다.

‘내년 1월 브렉시트 단행’을 내건 보수당의 압승을 놓고 유럽은 ‘기대 반·우려 반’이다. ‘질서있는 퇴로’가 열리며 대혼란을 피했다는 차원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편, 브렉시트 이후를 놓고 벌일 산적한 협상을 대비한 견제구도 날렸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1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과 강력한 전략적 관계를 원한다”면서도 “(EU와 영국의)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향후 협상의) 중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앞으로의 협상은 매우 복잡하고 빨리 끝내야 하는 것이 큰 난관”이라며 “영국은 우리 문 앞에 있는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제 명확히 해야 할 때가 왔다”며 “우리는 영국이 파트너로 남기를 희망하지, 불공정한 경쟁자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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