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든 모스크바 시민들, 우크라 시인 동상 찾은 까닭은

선명수 기자

반전 운동 강하게 탄압해온 러시아서

시민들의 ‘조용한 반전 시위’ 확산

러 드니프로 공습 희생자 추모

우크라 반제국주의 시인 동상에 헌화 행렬

지난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민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드니프로 침공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모스크바의 한 거리에 세워진 우크라이나 시인 레샤 우크라인카의 동상 앞에 헌화하고 있다. 모스크바│로이터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지난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민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드니프로 침공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모스크바의 한 거리에 세워진 우크라이나 시인 레샤 우크라인카의 동상 앞에 헌화하고 있다. 모스크바│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자국 내 반대 목소리를 강하게 탄압해온 러시아에서 시민들의 ‘조용한 반전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한 거리에 세워진 우크라이나 시인 레샤 우크라인카의 동상 앞에 러시아군의 드니프로 공습으로 숨진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추모하는 러시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레샤 우크라인카(1871~1913)는 반제국주의 운동을 펼쳤던 우크라이나 출신 페미니스트 시인이자 극작가다. 러시아 차르의 전제정치에 반대하며 우크라이나의 마르크스주의 단체에서 활동했고, 이 때문에 평생 러시아 경찰의 감시 속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우크라이나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NYT는 경찰의 감시 속에서도 꽃과 인형 등을 들고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려는 시민들이 우크라인카의 동상을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4일 러시아의 미사일 공습으로 46명이 사망하고 80여명이 부상을 입은 우크라이나 남동부 도시 드니프로의 붕괴된 아파트 건물 사진도 동상 앞에 놓였다.

레샤 우크라인카의 동상 앞에 놓인 꽃들. 모스크바│로이터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레샤 우크라인카의 동상 앞에 놓인 꽃들. 모스크바│로이터연합뉴스

‘임시 추모관’이 된 동상 앞을 꽃을 들고 찾은 타티아나 크루피나(28)는 “현재 러시아 상황에서 이것은 조용한 전투”라고 NYT에 말했다.

이런 방식의 ‘조용한 시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며 러시아 내 다른 도시로도 확산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0만 예비군 동원령을 내린 후 러시아 전역에서 일어난 시위 이후 처음으로 벌어진 공개 반전 시위다.

러시아 경찰은 동상 앞에 꽃을 놓는 행위조차 체포로 대응하고 있다. NYT는 지난 한주 동안에만 우크라인카 동상 앞에서 최소 7명이 구금됐으며, 이중 4명은 헌화 직후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는 예카테리나 바레닉(26)은 지난 20일 ‘우크라이나 : 우리의 적이 아니라 형제’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동상 앞에 서 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바레닉은 “인내심이 바닥났다. 이제 내 의견을 보여주고 싶다”며 “날이 갈수록 탄압이 심해지고 엄격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거리에 세워진 우크라이나 시인 레샤 우크라인카의 동상 앞에서 예카테리나 바레닉이 ‘우크라이나 : 우리의 적이 아니라 형제’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그는 30분간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됐다. 모스크바│로이터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지난 20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거리에 세워진 우크라이나 시인 레샤 우크라인카의 동상 앞에서 예카테리나 바레닉이 ‘우크라이나 : 우리의 적이 아니라 형제’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그는 30분간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됐다. 모스크바│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경찰은 시민들이 동상을 촬영하는 것을 막고 휴대전화에서 사진을 삭제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동상 앞에 놓인 꽃도 정기적으로 제거한다. 이에 모스크바 시민들은 ‘불법 집회’처럼 비춰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시간 동상을 찾거나 경찰의 감시를 피해 조용히 헌화하고 돌아간다고 NYT는 전했다.

러시아의 인권감시단체인 OVD인포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 시민 2만여명이 구금됐다. 또 많은 이들이 전쟁을 비판하는 SNS 게시물을 작성하거나 우크라이나 공격을 중단하라는 서명운동에 참여했다가 직장을 잃었다. 모스크바 시의원을 지낸 일리야 야신은 러시아의 부차 민간인 학살에 대해 비판했다가 징역 8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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