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1년

주말마다 서울서 반전 집회…“내 나라를 위해 전쟁에 임하는 마음”

김송이 기자

크름반도 출신 노로만

지난 2월19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반전 집회에서 노로만이 전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노로만 제공

지난 2월19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반전 집회에서 노로만이 전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노로만 제공

러, 크름반도 장악한 이후
전쟁은 1년 아닌 9년째
미국의 꼭두각시 아니라
자유로운 우크라 원한다

“로만, 뭐가 무서워. 우크라이나에선 지금도 사람이 죽고 있다.”

지난 20일 저녁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노로만(한국명·36)은 크름반도에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주저하다가도 이처럼 스스로를 다독이며 답변을 이어갔다. 2011년 정부 초청 유학생으로 한국에 온 로만은 러시아가 2014년 강제병합한 크름반도 출신이다. 크름에 있는 부모가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해코지를 당할까 걱정도 되지만 “나도 나라를 위해 할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전쟁에 임하는 마음”이라며 인터뷰에 응했다.

로만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들은 직후 주말부터 반전 집회를 열었다. 지난 1년간 행진, 모금, 공연 등 다양한 방법으로 평화를 외쳤다. 재한우크라이나인 커뮤니티를 통해 모인 300여명이 함께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이 점차 줄기도 했지만 로만은 “인내심을 갖고 싸웠다”고 했다. 공습으로 집을 잃은 피란민들을 위해 한국에 사연을 알렸고, 해피빈 모금운동으로 1000만원 가까이 모아 전달했다. 지난 주말에는 집회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고 “우크라이나가 꼭 승리하길 기원해달라”고 외쳤다.

2014년에도 러시아대사관 앞을 찾았었다. 고향 크름이 ‘러시아에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로만은 우크라이나인, 특히 크름 출신들에게 전쟁은 “1년이 아닌 9년 동안 이어졌다”고 말한다.

지난 9년은 “4편의 드라마”와 같았다고 했다. 2014년 친러 정책을 펼친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몰아냈던 유로마이단 혁명,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반군세력에 무기를 지원해 대리전 양상을 보인 돈바스 전쟁까지. 갈등은 계속 고조됐고, 급기야 2022년 클라이맥스인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로만은 “한국 사람들은 2014년 일이 마무리되고 2022년에 새로운 일이 생긴 것이라 보지만,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모두 연결된 일”이라며 “이제 러시아와 끝을 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기나긴 전쟁으로 고향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 상태다. 부모는 크름반도에 남아 러시아 시민으로, 피란길에 오른 친척들은 헝가리·네덜란드·폴란드에서 각각 살아간다. 남자 친척들은 군대에 갔고, 그중 조리사로 동원된 삼촌은 연락이 끊겼다. 고등학교 동창 중에는 러시아 군대에 동원된 이도 있다. 로만은 “어릴 때 친구였던 사람들이 전선에서 싸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왜 나야?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고국에 이런 일이 생길 줄 꿈에도 모르던 때가 있었다. 2006년 크름의 레스토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로만은 “그땐 한 테이블에 우크라이나인, 바로 옆에는 러시아인이 앉았다. 우리가 이렇게 쉽게, 빨리 싸우리란 상상도 못했었다”고 했다.

2017년 마지막으로 다녀온 크름반도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여행객은 물론 러시아인조차 가기 힘든 곳이 됐다. 크름은 다시 과거처럼 해방될 수 있을까. 희망을 품고 있다는 로만은 “(이 상황은) 푸틴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웃 나라를 낮게 보는 러시아 제국주의의 문제”라며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그저 옆 나라 폴란드, 헝가리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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