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승자는 이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란 배후설’ 제기

김서영 기자

“하마스의 공격 배후에 이란” 추측에

이란 “이스라엘의 합리화”라며 부인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이란 시민들이 7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축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이란 시민들이 7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축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배후에 이란이 있다는 추측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란이 하마스를 비롯한 반이스라엘 무장세력을 오랫동안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이번 공격에 앞서 하마스·헤즈볼라와 논의하며 준비했다는 정황이 배후설의 주요 근거다. 이란은 이 같은 의혹을 “이스라엘이 자국의 정보 실패를 합리화하려는 것”이라며 부인했지만, 이란이 이번 전쟁의 최대 수헤자가 될 것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WSJ “이란, 하마스·헤즈볼라와 여러 차례 접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현지시간)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고위급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란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작전을 지난 2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최종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들은 이란혁명수비대(IRGC) 장교들이 지난 8월부터 하마스와 협력해 육·해·공 3개 방면에서 이스라엘을 급습하는 작전을 짜왔다고 WSJ에 말했다. 작전 세부 사항은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치며 개선됐고, 회의에는 이란혁명수비대 장교를 비롯해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이란이 지원하는 4개 무장단체 대표가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이란 시민들이 7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응원하는 집회를 열었다. EPA연합뉴스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이란 시민들이 7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응원하는 집회를 열었다. EPA연합뉴스

이란은 배후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주유엔 이란 대표부는 8일 성명을 내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대응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이는 순전히 팔레스타인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자국의 정보 실패를 “이란의 정보력과 작전기획 탓이라며 합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란이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했을 가능성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란은 1980년대 초부터 하마스와 헤즈볼라, 이슬라믹지하드(PIJ)를 비롯한 기타 반이스라엘 무장조직에 무기와 자금, 훈련 등을 제공해왔으며 이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들 조직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가장 큰 차이는 이들이 이스라엘이란 국가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들은 이스라엘을 ‘영원한 적’으로 삼는 이란과 한 편에 선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우리의 이맘이자 주인”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규모·체계성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이 이틀째로 접어든 가운데 8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미사일이 폭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이 이틀째로 접어든 가운데 8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미사일이 폭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무엇보다 하마스의 이번 공격은 이란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규모와 체계성을 띠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런던대 리나 카티브 중동연구소장은 “이런 규모의 공격은 수개월 동안의 계획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이란과의 조율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헤즈볼라와 마찬가지로 하마스는 이란의 명시적인 사전 동의 없이 단독으로 전쟁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WSJ는 지난 4월에도 베이루트에 있는 이란대사관에서 하마스와 헤즈볼라 지도자가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정예군)의 에스마일 카니 장군을 접선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 수십발이 발사됐는데, 그때도 이 만남을 통해 이란의 최종 승인을 받았을 것이란 취지였다.

이번 공격이 오랫동안 준비돼 온 것이라는 정황은 쌓여 있다. 지난 여름 이스라엘군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드론에 감지되지 않는 터널을 최초로 발견하는 등 이란 무기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오는 새 밀수 경로를 적발했다.

과거 이란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행동 개시가 임박했음을 암시하고 충돌의 형태 또한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목 역시 주목받는다. 지난해 8월 이란혁명수비대 호세인 살라미 대장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약점은 지상전이며, 팔레스타인인들은 지금 지상전을 벌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미사일을 이용한 전투는 억제력에 탁월할 지 몰라도 영토를 해방시키지는 않는다”면서 “지상전을 통해 단계적으로 팔레스타인을 해방해야 한다.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용감한 국민들은 하나의 군대를 구성해 지상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란은 하마스의 이번 작전을 지지하고 축하하는 메시지를 내놨다.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하마스·이슬라믹 지하드 지도자와 각각 통화한 후 “이란은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방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과 그 지지자들은 이 지역 안보를 위험에 빠뜨린 책임을 져야한다”고 비난했다.

최대 수혜자는 이란?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이 실제 이번 전쟁에 깊숙히 개입했다면, 하마스의 공격을 최종 승인한 이란이 하필 지금을 최적 타이밍으로 짚은 데에는 국내외 여러 여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 외교매체 포린폴리시(FP)는 고령인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88)의 사망 이후 초래될 공백, 사법개편안을 둘러싼 이스라엘의 혼란, 미국이 이스라엘에서의 분쟁을 지원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그리고 이란이 핵보유국 지위에 가까워짐에 따라 생긴 자신감 등을 꼽았다. 이를 바탕으로 “이란은 이스라엘이 1948년 이후 본 적이 없는 다전선 전쟁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고 FP는 분석했다.

현 시점에서 이번 전쟁 최대 수혜자는 이란으로 꼽힌다. 미 공군의 중동 전문가 애런 필킹턴은 ‘컨버세이션’에 ‘누가 져도 이란이 승리한다’는 글을 기고해 향후 전개될 시나리오를 ▲이스라엘이 강경한 보복에 나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다른 아랍 국가와 척을 지게 됨 ▲이스라엘의 진격이 동예루살렘이나 서안지구에서 또다른 팔레스타인 봉기를 촉발함 ▲이스라엘이 억압 전술을 버리고 수위를 낮춤 등 3가지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모든 시나리오가 이란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다음에 또다른 폭력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란 지도자들은 다시 자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앞으로 상황이 이란에 마냥 유리하게 전개될지는 미지수다. 중동 전문 저널리스트 킴 가타스는 ‘애틀랜틱’에 기고한 글에서 “하마스는 복수를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승리는 비용이 많이 들고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면서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제한된 공격과 사보타주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또한 전쟁이 여러 전선으로 확대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봤다. 그는 “현재로서는 헤즈볼라가 더이상 개입할 것 같지 않다. 이스라엘이 2006년 전쟁에서보다 더 파괴적인 보복에 나설 것이기 때문에 잃을 것이 너무 많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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