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없이 이제 못살걸’… 구글·아마존 ‘쪼개기’나선 미 의회

이효상 기자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이조스가 지난해 7월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 산하 반독점소위의 청문회에 화상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이조스가 지난해 7월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 산하 반독점소위의 청문회에 화상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디지털 시장을 꽉 쥐고 있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 ‘빅4’를 통제하기 위해 미국 하원이 5개의 규제 법안을 내놨다. 빅테크 업체가 경쟁업체를 사냥하는 것을 어렵게하고, 자사가 운영하는 플랫폼에서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현실화된다면 물리적인 기업 분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11일(현지시간) “만약 법안이 통과된다면, 지난 수십년 동안 가장 야심찬 독점방지법 개정안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5개 법안은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 산하 반독점소위가 지난해 빅4의 시장 지배력 남용 행위를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의 후속대책으로 마련됐다. 법안은 양당 의원들이 고르게 참여한 초당적 법안으로 마련됐다. 당초 법안의 개혁적 성격으로 인해 공화당의 참여 여부는 불투명했지만, 페이스북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플랫폼 이용을 금지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반독점소위의 공화당 간사인 켄 벅 의원은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해답은 시장에 경쟁이 있는지, 4~5개의 페이스북과 3~4개의 구글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며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다양화하면 우리는 더 많은 경쟁과 더 많은 다양성, 관점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진 왼쪽부터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팀 쿡 애플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AP연합뉴스

사진 왼쪽부터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팀 쿡 애플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AP연합뉴스

가장 두드러지는 법안은 ‘플랫폼 독점 종식법’이다. 이 법은 회사가 운영하는 플랫폼에서 자사의 제품 판매를 중단하도록 했다. 예컨대 애플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판매하는 앱스토어를 운영하며 음원 서비스 업체 스포티파이 등 경쟁사의 서비스를 차별한 바 있다. 아마존 역시 온라인 장터 아마존닷컴에서 자사의 의류, 휴지 등 다양한 제품을 팔고 있다. 민주당 소속 반독점소위원장인 데이비스 시실린 의원은 이를 1933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를 분리한 ‘글래스-스티걸법’에 비유했다. 플랫폼 운영과 플랫폼을 통한 판매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화되면 아마존과 애플 등은 기업 분할 절차를 밟게될 가능성도 있다.

시장에 막 진입한 잠재적 경쟁자들을 사들이는 ‘킬러 합병’을 어렵게하는 법안도 함께 발의됐다. 페이스북은 유력 경쟁자인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일찍이 사들였다. 아마존은 경쟁업체인 다이어퍼스닷컴과 자포스를 인수해 오늘날 미국 온라인 판매시장의 50%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서 부편집장을 지낸 라나 포루하는 자신의 저서 <돈 비 이블, 사악해진 빅테크 그 이후>에서 빅테크 업체가 부상을 거듭하던 시기 스타트업의 수는 44% 감소했고, 일자리 역시 줄어들었다고 지한 바 있다.

빅테크 업체들이 플랫폼을 사용해 자사 제품에 특혜를 제공하는 것을 막는 법안도 마련됐다. 아마존은 아마존닷컴을 통해 얻은 다른 판매자의 데이터를 활용해 자사의 제품을 개선시켰다. 구글은 구글쇼핑의 검색 순위가 높지 않던 시기에, 검색 엔진을 조작해 구글쇼핑을 부각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밖에도 고객이 소셜미디어를 보다 쉽게 탈퇴하고, 자신이 쓴 글 등을 다른 소셜미디어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법안과 합병 신청 수수료를 인상하는 법안이 마련됐다. 전자는 사용자 정보를 하나의 상품으로 판매하는 빅테크기업의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후자는 합병 신청 수수료 인상을 통해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가 시장 독점을 감시·감독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도록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두 법안은 앞선 법안들과 달리 의회 통과가 순조로울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앞선 3가지 법안은 강력한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아 법안 심사 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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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기술업계는 미중갈등 등을 언급하며 법안이 미국 기업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마존·구글·페이스북 등 빅테크기업의 로비단체 넷초이스는 “중국 기업의 위협이 심화되는 가운데 나온 이 대책이 미국 기업을 무릎 꿇리고, 미국의 혁신 동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칼 스자보 넷초이스 부사장은 성명을 통해 “외국 경쟁자들에게 설 자리를 내주고, 미국의 데이터를 위험하고 신뢰할 수 없는 행위자들에게 공개하려는 법안은 통과돼선 안된다”고 했다. 미국 상공회의소 역시 성명을 통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반발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린 파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 인공지능(AI) 담당 부국장은 워싱턴포스트에 “AI 분야에서 수많은 훌륭한 아이디어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강력한 컴퓨팅 인프라와 데이터에 접근해야 한다”며 “연구자들이 (빅4가 독점한) 인프라와 데이터에 접근하지 못함으로써 혁신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안의 공동발의자 중 한 명인 시실린 의원은 “(빅테크 기업들은) 승자와 패자를 고르고, 중소기업을 파괴하며, 가격을 올리고, 사람들을 실직시킬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며 “기술 독점기업에 책임을 묻고 더 강한 온라인 경제를 만들기 위해 우리 법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가 디지털 공룡들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 입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의회는 지난 몇년간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겠다고 공언해왔지만, 초당적 합의에는 실패한 바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대책은 의회가 기술 업계가 가진 문제의 해법을 두고 고심하던 단계에서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법안을 논의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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