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방, 러시아 규탄 및 제재 단행…동유럽 군사 대비 태세도 강화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러시아가 우크리아니 동부 친러 분리세력이 선포한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한 것과 관련한 제재를 단행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러시아가 우크리아니 동부 친러 분리세력이 선포한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한 것과 관련한 제재를 단행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들은 21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선포한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러시아군에 진입을 명령하자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침해했다고 강하게 규탄하며 제재 카드를 빼들었다. 독일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2’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푸틴 대통령이 독립을 승인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지역에 대한 미국인의 신규 투자와 무역, 금융 거래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푸틴 대통령이 국영텔레비전을 통해 DPR과 LPR의 독립을 승인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고 발표한 지 몇 시간 뒤 나왔다. 러시아의 행위를 예상하고 미리 준비한 행정명령을 즉각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도 추가로 단행할 계획이다. 바이든 정부 고위 당국자는 “우리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 및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 침해일뿐 아니라 러시아가 국제적으로 한 약속을 위반한 데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한 추가 조치를 내일 단행할 것”이라면서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이같은 제재 조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추가 침공에 대비해 동맹과 준비하고 있는 혹독한 경제 조치와는 별개”라고 밝혔다. 러시아 군이 돈바스 지역에 진입하는 데 이어 추가 침공을 한다면 더욱 강한 경제 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경고다. 미국은 이 경우 러시아가 스마트폰과 항공기·자동차 주요 부품을 비롯한 각종 물자를 공급받지 못하도록 강력한 수출통제를 단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 시스템에서 퇴출시키는 제재도 검토 중이다.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완전히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유럽 등 서방도 일제히 러시아를 규탄하며 제재를 예고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러시아의 행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노르트 스트림-2 사업 인증 절차를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도 하원 토론을 거쳐 러시아 은행 5곳과 개인 3명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유럽연합(EU) 외교장관들은 이날 대러시아 제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러시아의 독립 승인을 다루기 위한 제재 대응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U는 돈바스 지역과 EU 간의 무역을 금지하고, 러시아가 유럽 내 금융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제재 패키지를 공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는 러시아가 국제적으로 한 약속의 일방적인 위반이자 우크라이나 주권에 대한 명백한 공격”이라면서 유럽 차원의 제재 단행을 촉구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공동성명에서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고 “EU는 이 불법 행위에 연루된 이들에 대한 제재를 단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엔 위원장은 전날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국제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고 EU 제품 수입이 봉쇄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트위터에 올린 성명에서 새로운 제재를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러시아 기업들이 미국 달러와 영국 파운드에 접근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U와 영국 등이 이날 예고한 제재 역시 일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친러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한 데 국한된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 퇴출 및 주요 물품 수출 통제 등 초강력 제재는 러시아가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추가로 침공했을 때 단행된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과 EU 등 서방 국가들이 경고한 ‘혹독한 제재’를 위한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러시아 군의 돈바스 지역 진입에 대해 가혹한 제재를 부과하지 않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미국과 서방은 군사적 경계 태세도 한층 높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에 지난 주 도착한 82공수여단 병력 5000여명이 폴란드군과 함께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몰려들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을 세우는 등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불거진 이후 폴란드와 루마니아 주둔 미군을 각각 9000명과 2000명으로 2배 가량 늘렸다. 미국은 최신예 F-35전투기와 F-15 전투기, B-52 전략폭격기 등 공군 자원도 동유럽 지역에 전진 배치했다. 미국은 나토대응군(NRF) 가동에 대비해 본토 병력 8500여명에게 출동 대비 명령도 내려둔 상태다.

앞서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도 전투기와 군함 등을 동유럽과 발트해에 파견한 상태다. 덴마크가 구축함을 발트해에 F-16 전투기를 리투아니아에 각각 파견했고, 스페인도 군함을 나토군에 합류시키고 전투기를 불가리아에 파견한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역시 F-35 전투기를 4월부터 불가리아에 파견한다고 밝혔다. 나토는 2014년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병합한 이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 동유럽 지역에 미군을 포함한 다국적군으로 구성된 4개의 전투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나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새로 침공할 경우 이에 대응하기 위한 NRF를 소집할 전망이다.

미국은 동유럽에 파견된 미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진입하거나 러시아군과 직접 대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나토 동맹국이 아니기 때문에 공동 방위 의무가 없는데다 미군과 러시아군이 직접 맞설 경우 세계대전을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토 역시 나토 회원국이 아닌 우크라이나에 진입해 러시아군과 대적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동유럽 나토 회원국에 대한 러시아군의 위협을 방어하는 선에서 역할을 제한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만 러시아군과 미군, 나토군이 직접 대치하지는 않더라도 동유럽 지역에 밀집해 대비태세를 강화하면 군사적 긴장과 충돌 가능성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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