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의존에서 독립하겠다는 EU, 에너지전환 정책도 시험대에

박은하 기자
8일 독일 슈베트/오데르에 있는 PCK 래피너리 정유소의 산업 시설에 불이 켜져 있다. 이 회사는 ‘우호’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원유를 공급받는다. /로이터연합뉴스.

8일 독일 슈베트/오데르에 있는 PCK 래피너리 정유소의 산업 시설에 불이 켜져 있다. 이 회사는 ‘우호’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원유를 공급받는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에너지 정책이 시험대에 섰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목표에 더해 8년 안에 러시아산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하겠다는 목표까지 추가되면서다. EU는 석탄·석유보다는 탄소를 덜 배출하는 천연가스를 징검다리 삼아 화석연료를 퇴출하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탄소중립보다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이 더 시급한 과제로 제시됨에 따라 기존의 탈석탄·석유 정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U 집행위원회는 8일(현지시간) 올해 말까지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가스 물량의 3분의 2를 줄이고, 2030년 이전까지 러시아의 화석연료에서 독립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러시아산 원유·천연가스·석탄 수입 금지 조치에 상응하는 EU 차원의 대응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목표가 실현되려면 유럽 국가들은 향후 몇 개월 내에 대체 가스 공급원을 찾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친환경 전력원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 비축물량 확보, 공급처 다변화, 에너지 절약, 신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라는 네 가지 과제가 빈틈없이 추진돼야 하는 것이다. 프란스 팀머만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우선 올 가을까지 가스 비축량을 현 30%에서 90%로 늘려야 한다. 미국, 호주, 카타르, 아제르바이잔 등이 러시아의 대체 거래처로 급부상했다. 팀머만스 부위원장은 “카타르 등 대체 수입국가의 가스와 액화천연가스(LNG)가 올해 유럽이 러시아에서 매년 얻는 가스의 3분의 1 이상을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도이체벨레가 전했다. EU 국가들은 노르웨이, 알제리, 아제르바이잔 등의 가스를 가스관을 통해 들여오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향후 몇 달간은 미국, 카타르, 호주 등지에서도 해상을 통한 LNG 수입을 확대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BBC가 보도했다. 또 한국, 중국, 인도와 같은 다른 LNG 구매국에서 남는 물량을 유럽으로 들여오려는 협상도 이미 시작됐다고 DPA는 전했다. 유럽 에너지 시장의 가장 큰 손인 독일은 최근 연간 연간 80억㎥(8bcm)의 생산능력을 지닌 LNG터미널 2곳을 증설하기로 했다. 유럽과 아시아 양쪽에 가스를 수출하게 될 카타르가 큰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르몽드가 전했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도 더욱 빨라져야 한다. EU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 용량을 2030년까지 지금의 3배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상업용 건물에 대한 옥상 태양광 패널 설치 등의 대대적 확대가 예상된다. 2030년까지 바이오메탄 에너지 사용을 늘리고 재생가능 수소 등의 수입도 확대하기로 했다. 건물 단열설비 확충 등 에너지를 절약할 방안도 거론된다. 원자력발전 확대 문제는 논란 거리다. 일부 국가에선 원자력 확대를 주장하지만 러시아 가스 수입 축소의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 등 유럽의 원전 시설이 노후한 데다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데만 8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결국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탈탄소 속도를 늦추고 화석연료로 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영국에서 이미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렉 핸즈 영국 기후·에너지부 장관은 최근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에너지 안보를 위해 북해 석유와 가스 시추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텔레그래프는 영국 고위 각료들이 2050년까지 탈탄소 목표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연방 하원의 마르크 헬프리히 에너지 정책 대변인은 “탈석탄 시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고 독일 일간 디벨트가 보도했다. 유럽 전역에서 단계적 퇴출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되던 석탄 역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콜롬비아 등에서 대체 공급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핀란드환경연구소 폴라 키비마 교수는 “우리는 에너지 정책 결정에 있어서 정치적 압력이 너무 큰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독일이 이번에 기반시설을 확충하면서 앞으로 LNG 위주의 에너지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고 BBC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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