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미 IT공룡 독점 금지 ‘디지털 시장법’ 합의

유럽연합(EU)이 24일(현지시간) 구글과 메타, 애플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억제하는 디지털 시장법(DMA)에 합의했다. 2018년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 시행 이후 EU가 미국 빅테크 기업의 시장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내놓은 조치들 중 가장 강력한 규제로 평가된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24일(현지시간) 유럽 의회 의원들이 세계 최대 빅테크 기업들에 초점을 맞춘 DMA의 주요 내용들에 대해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EU 집행위원회는 2020년 12월15일 디지털 시장법 초안을 발표했고, 지난해 11월23일에는 유럽의회에서 수정안이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바 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디지털 시장법은 이른바 ‘온라인 게이트키퍼’를 규제하는 내용이다. 게이트키퍼는 시가총액 750억유로(약 100조원), 연매출 75억유로(10조원), 월간 사용자 4500만명 이상인 IT 기업으로 정의된다. 아마존과 페이스북 모기업인 메타, 구글 모기업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온라인 마켓 알리바바와 유럽 전자상거래 기업 잘란도(Zalando) 등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이들 빅테크 기업은 온라인 중개 서비스, 소셜 네트워크(SNS), 검색 엔진, 운영체제, 온라인 광고 서비스, 클라우드 컴퓨팅, 웹브라우저, 가상 비서 등의 서비스를 통해 정보를 선별해 배포하는 게이트키핑 활동을 하고 있다.

디지털 시장법은 이들 빅테크 기업이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해 앱 스토어, 온라인 쇼핑, 온라인 광고 등 디지털 시장을 독과점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예컨대 소규모 메신저의 요청이 있을 경우 페이스북이나 왓츠앱 등 빅테크 메신저들은 소규모 메신저와 상호운용이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개방해야 한다. 법이 시행될 경우 애플은 앱스토어를 외부에 개방해야 한다. 현재 아이폰에서는 애플 앱스토어를 통하지 않고는 앱을 내려받을 수 없으나, 디지털 시장법은 이 같은 독점 행위를 금지한다. 개인 정보를 타게팅 광고와 결합하는 것은 이용자에게 명확하게 동의를 구해야 한다. 빅테크 기업이 자사 제품을 더 높은 순위에 올리는 것도 금지된다.

이번 합의로 EU는 거물 IT 기업들의 독점적 행태를 처벌하는 데 많게는 수년 걸리는 법정 싸움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막대한 벌금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지만 그동안 IT 대기업들은 장기 소송전으로 시간을 벌면서 기존 사업 방식을 유지해왔다. 법이 시행되면 IT 대기업들이 유망한 신생 기업들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제재를 피해나가는 것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법을 위반한 기업은 연간 글로벌 매출액의 최대 10%를 과징금으로 내야 하고, 위반행위가 반복될 경우 그 비율은 20%로 늘어난다. 상습적인 위반 기업은 인수합병(M&A)이 일시적으로 금지된다.

법 적용 대상인 빅테크 기업들은 디지털 시장법이 이용자에게 불편을 주고 기업에 타격을 준다며 반발했다. 애플은 “우리는 DMA가 이용자들에게 불필요한 사생활과 보안 취약성을 일으킬 것을 여전히 우려한다”며 “일부 조항은 자사가 거액을 투자하는 지적재산에 대한 비용을 청구하는 것을 금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글도 “소비자 선택과 상호 운용성에 대한 디지털 시장법의 대의는 지지하지만, 일부 규정은 혁신과 유럽인들의 선택권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EU는 소수 거대 기업이 옥죄는 디지털 생태계를 바꾸려면 디지털 시장법과 같은 새로운 도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법안 통과를 주도해온 안드레아스 슈바베 유럽의회 의원은 “이번 합의로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기술 규제 시대가 열리게 됐다”며 “디지털 시장법은 빅테크 기업의 증가하는 지배력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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