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볼티모어 다리는 왜 한꺼번에 무너졌나

최혜린 기자
26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에 충돌해 붕괴를 일으킨 달리 화물선의 조감도. 메릴랜드주 제공|로이터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에 충돌해 붕괴를 일으킨 달리 화물선의 조감도. 메릴랜드주 제공|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교량이 선박과 충돌해 붕괴되는 사고가 벌어진 가운데 붕괴 원인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박이 교각에 충돌했을 때 충격이 상당히 컸던 점, 다리에 완충 장치가 충분하지 않았던 점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또 수십년 전 건설된 낡은 교량 인프라에 비해 선박의 크기는 거대해지는 해운업계의 구조적 문제도 원인으로 지목했다.

2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건축 공학 전문가들은 교량 전체를 떠받치는 기둥 역할을 하는 ‘교각’에 선박이 충돌한 점이 붕괴를 일으켰다고 진단했다. 이날 볼티모어의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는 길이가 약 2.6㎞에 이르는 대형 교량인데도 컨테이너선 ‘달리’와 충돌한 이후 약 20초 만에 완전히 무너져 강물에 잠겼다.

국제 교량안전협회장인 댄 프랭고폴 리하이대학 교수는 “구조물은 기본적으로 기둥이 없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되면 다리의 하중을 재분배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WP에 말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가 선박과 충돌해 붕괴되는 모습. 엑스 갈무리

26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가 선박과 충돌해 붕괴되는 모습. 엑스 갈무리

AP통신에 따르면 사고 당시 선박은 8노트(약 시속 15㎞)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버지니아 공대의 로버토 리언 교수는 선박의 중량과 속도 등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큰 힘으로 교각을 강타했을 것이라면서 “교각이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충돌할 때의 힘을 흡수하면서 구부러지는 것뿐”이라며 “하지만 그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다리가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교각에 완충장치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의 위성 사진과 사고 영상을 분석한 결과 ‘펜더(방현재)’라고 불리는 완충장치가 부실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펜더는 교각 주위에 암석을 쌓거나 목재 판을 두르는 등 여러 형태가 있으며, 교각에서 일정 수준 이상 떨어진 곳에 충분한 크기로 만들어진다. 선박 등이 교각이나 교량과 직접 부딪히지 않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영국의 교량 설계자인 이안 퍼스는 선박 충돌 지점이 교각 주위의 보호 장치를 조금 빗겨간 것 같다면서 “3-4개의 보호 장치가 추가로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 뉴욕의 베라자노 내로스 다리 등 다른 대형 교량은 위성 사진으로 봤을 때도 암석과 콘크리트 등을 활용한 ‘보호벽’이 설치돼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사고가 발생한 볼티모어의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의 교각 위성사진. 구글 어스

사고가 발생한 볼티모어의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의 교각 위성사진. 구글 어스

(왼쪽부터) 미국 뉴욕의 베라자노 내로스 다리, 샌프란시스코의 오클랜드 베이 다리, 플로리다의 선샤인 스카이웨이 다리. 구글어스·브리태니커

(왼쪽부터) 미국 뉴욕의 베라자노 내로스 다리, 샌프란시스코의 오클랜드 베이 다리, 플로리다의 선샤인 스카이웨이 다리. 구글어스·브리태니커

미국 국립공학연구원의 나이르 박사는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의 취약한 구조가 “굉장히 충격적”이라면서 “이 정도 규모와 중요성을 지닌 다리는 어떤 선박에 잘못 부딪혀도 붕괴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메릴랜드 당국은 교각 설계나 펜더 설치 여부에 대한 질문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제니퍼 호멘디 미 국가교통안전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교량의 설계와 관련한 의문점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다리의 구조와 건설 과정 등에 대해서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거대해지는 선박에 비해 교량은 지나치게 낡은 구조적인 문제가 원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가 건설되던 1977년에는 비교적 선박의 크기가 작고 교통량도 적었기 때문에 달리호와 같은 대형 컨테이너선과 충돌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코넬대학교의 인프라 정책 전문가인 릭 게데스 박사는 “이번 재난은 미국의 주요 인프라가 갑작스러운 사고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면서 “노후화된 인프라를 재건축할 때는 회복탄력성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중국에서도 대형 컨테이너선이 교량과 충돌해 5명이 사망한 데 이어 불과 한 달 만에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면서 “점점 더 거대해지는 세계의 선박들을 전 세계의 교량이 감당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고 NYT는 분석했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벤저민 셰퍼 교수는 “(다리를 지나는) 선박들은 너무나도 거대하다. 어떤 다리도 달리처럼 큰 선박의 충돌을 견디지는 못했을 것”이라면서 선박에 전력이 끊겼을 때도 궤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달리호는 교량과 충돌 전 동력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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