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쏘다

소중한 사람과 골라보자, 영화

휴일도 많고 볼 영화도 많은 올 추석연휴. 이번주에만 11편의 새 영화가 극장가에 걸린다. 그렇다고 그 많은 영화를 다 챙겨볼 수는 없는 노릇. 편수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한 추석시즌 영화들은 분위기 따라 입맛 따라 잘 가려봐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연휴기간 원하는 영화를 보려면 예매는 필수. 추석 관람작을 선정하기에 앞서 간단한 예습으로 골라보는 재미를 맛보자.

◇명절, 소중한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싶다면

위부터 영화 ‘라디오 스타’, ‘타짜’, ‘구미호 가족’, ‘잘 살아보세’.

위부터 영화 ‘라디오 스타’, ‘타짜’, ‘구미호 가족’, ‘잘 살아보세’.

가족, 연인, 친구, 누구와 함께 봐도 좋을 영화 ‘라디오 스타’(감독 이준익)가 추천작이다.

세대를 아우르는 서민적 정서가 작품 곳곳에 녹아있는 영화. 안성기·박중훈 두 배우의 세월을 담아낸 눈빛이 첫번째 감상포인트다. 20년간 동고동락해온 가수 최곤(박중훈)과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눈짓 한번에 서로를 알아보는 관계를, 두 배우는 연기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본의 아니게 최곤을 떠나 그를 생각하며 김밥을 입에 밀어넣는 박민수의 초점 잃은 눈길,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채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최곤의 눈빛을 놓치지 말자. 특히 감정적으로 고조되는 장면이 아니라 평상시 최곤을 바라볼 때, 세월과 사연을 녹여내는 박민수의 눈빛은 말 그대로 국민배우의 그것임을 확인케 해준다.

이준익 감독이 ‘왕의 남자’에서 보여준 권위에 대한 부정, 여기서 나아가 민중의 힘으로부터 길어올릴 우리 사회의 건강한 동력에 대한 메시지 또한 영화는 품고 있다. 영화는 유쾌하게 민중의 문화적 혁명을 꿈꾼다. 중앙 방송사를 통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한물 간 스타 최곤의 ‘유배지’인 영월 중계소에서 벌어진다. 청취자 중심의 쌍방향 방송이 진솔하게 이뤄지고 인터넷이 만들어낼 긍정적인 가능성도 상상한다.

뉴미디어 시대, 라디오라는 옛 매체와 인터넷이라는 새 매체의 특성을 모아 신·구를 한품에 껴안는 한편 우리에게 주어진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깊이있는 사려를 헤아려보는 것은 이 영화의 진한 가치를 만끽하는 열쇠다.

◇한국인 셋만 모이면 패를 돌리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타짜’(감독 최동훈)를 추천한다. “대학 졸업해서 돈 벌던 시대는 갔다”라고 말하는 야심만만한 청년 고니(조승우)와 함께 도박판에 빠져든 사람들의 천태만상이 펼쳐진다.

화투장을 던져두며 “이게 니 정주영이고 이병철이다”라고 말하는 돈에 대한 욕망이 우선이지만, 어느덧 승부욕은 돈다발을 넘어선다. 도박 자체를 위해 도박을 하는 ‘타짜’들은 한번 발을 담그면 빠져나오지 못한다. 고니의 스승 평경장으로 등장하는 백윤식은 한국영화에서 ‘백윤식 전매특허’로 돼있는 ‘아버지 아닌 어른’ 역을 다시 맡았다. 김혜수, 유해진도 자기 몫을 다하고, 조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영화에 다 표현되지는 못하지만, 십여명 등장인물 캐릭터가 살아있다.

허영만 장편 원작만화를 139분에 압축했다. 허영만과 산악인 박영석이 노름꾼으로 카메오 출연하는 장면을 찾아볼 것.

◇발상이 독특한 코미디를 원한다면

개봉중인 코미디 ‘가문의 부활’은 애써 ‘가문의 영광’ 시리즈의 흥행효과를 이어보려 하지만 만듦새가 기대 이하라는 평을 얻고 있다. 황당한 감수성의 뮤지컬코미디를 즐기고 싶다면 ‘구미호 가족’(감독 이형곤)을 추천한다. ‘구미호 가족’은 고 신상옥 감독의 ‘아이 러브 마마’(1975) 이후 30여년 만에 제작된 한국산 뮤지컬 영화다.

인간이 되고픈 구미호 가족이라는 소재가 독특할 뿐 아니라, 의도된 듯 어설픈 퍼포먼스가 웃음을 자아낸다. 주현, 하정우, 박시연, 박준규 등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배우들의 앙상블이 흥미롭고, ‘인간보다 인간다운 구미호’를 통한 세태 풍자도 은근하다.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이나 배리 소넨필드의 ‘아담스 패밀리’를 좋아한다면 시선을 둘 만하다. 그러나 할리우드 전성기의 잘 짜여진 뮤지컬 영화를 기대하면 낭패. 프로덕션에 많은 공을 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구미호 가족’은 어디까지나 ‘B급 정서’를 바닥에 깐 영화다.

김정은·이범수 주연의 코미디 ‘잘 살아보세’는 70년대 가족계획 시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못말리는 상황들을 담았다. 이범수 등 마을 청년들의 충청도 사투리가 제맛이다.

‘밤일’을 막으러 다니는 가족계획 요원이라는 설정만 보면 성적 농담이 질펀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당시 꽉 막힌 시대적 상황이 빚어내는 모순이 웃음을 부른다. 다만 이 영화가 70년대를 묘사하는 데 있어 박정희와 봉건지주에게 화해의 열쇠를 쥐어준 점이 눈에 거슬린다.

◇어린이와 함께라면

놀러가자고 보채는 아이들, 오랜만에 만난 어린 조카에게 봉사해야 할 처지라면 3D애니메이션 ‘앤트 불리’(감독 존 A 데이비스)를 찾아보자. 개미 나라에 간 ‘왕따’ 소년 루카스의 모험담을 통해 ‘힘이 세다고 다른 이를 괴롭히면 안된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CGV 아이맥스관을 찾으면 입체안경을 통해 손을 뻗어 잡고 싶은 3D 세계를 체험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 점수 따는 데 제격이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신기함을 느낄 수 있다. 줄리아 로버츠, 니컬러스 케이지, 메릴 스트립 등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단 우디 앨런이 목소리 출연했던 ‘개미’ 같은 철학적 깊이는 기대하지 말자.

◇뭔가 다른 영화를 원한다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의 팬들에겐 ‘금발의 초원’(감독 이누도 잇신)이 기다리고 있다. 치매 노인과 소녀의 사랑이 부담스럽지 않은 만화적 감수성으로 펼쳐진다. ‘조제, 호랑이…’에서 사랑스러운 조제로 출연했던 이케와키 치즈루의 앳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스크린에서 문학의 향기를 맡고 싶다면 ‘댈러웨이 부인’(감독 마를린 고리스)을 권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1925년 발표한 장편 소설이 원작이다. 파티를 준비하는 50대 여인의 하루를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써내려간 소설을 충실하게 옮겼다. 원작을 읽은 뒤 극장으로 향하면 영화의 행간도 깊이있게 읽을 수 있다.

중국 반환을 앞둔 마카오의 뒷골목 풍경을 엿보고 싶다면 ‘이사벨라’(감독 팡호청)를 추천한다. 비리에 연루된 경찰이 유흥가에서 만난 여성과 하룻밤을 보내지만, 이 여성은 후에 자신이 딸이라고 주장한다. 포르투갈 음악 파두가 사운드트랙으로 깔리며, 몽환적인 색채와 혼란스러운 카메라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만나보기 힘들었던 아이슬란드산 영화 ‘노이 알비노이’(감독 다구르 카리), 한국 독립영화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은 ‘팔월의 일요일들’(감독 이진우)도 놓치기 아깝다.

<송형국·백승찬기자 hank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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