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정신차려야 하는 까닭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생각보다 빨리 박근혜 정부가 위기를 자초했다. 아직 대통령에 정식으로 취임도 안 했기에 박근혜 정부라 이름 부르기에 다소 어색하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박근혜 정부는 이미 활동하고 있다. 인수위를 두고 이런 평가를 하는 게 아니다. 다음 정부의 골간을 구성할 국무총리 등 주요 자리에 대한 인선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 박근혜 정부가 첫 스텝부터 꼬이고 분위기가 흐트러져 걱정이다.

왜 이럴까?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이른바 ‘박근혜 스타일’ 때문이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박근혜 당선인은 보안을 중시하고 소통을 멀리한다. 박 당선인에게 인사란 임명권자가 배타적 재량권을 갖고 누군가를 어떤 자리에 임명하는 권한 행사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인사는 누군가의 권한이기 이전에 국민을 대표하는 자가 국민 여론에 반응하고 책임지는 공적 행위다. 대통령이 그 주권자인 국민에게 책임지는 기제가 바로 인사와 정책인데, 그 인사를 대통령의 배타적 재량행위로 보는 인식은 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의 안정을 위해서는 민주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박근혜 스타일, 이것부터 바꿔야 한다.

[경향시평]‘박근혜 정부’가 정신차려야 하는 까닭

다른 하나는 새누리당의 무기력이다. 정당은 권력의 모태다. 특정 대통령의 임기는 유한하지만 정당은 무한하다. 정치적 책임은 정당의 몫이다. 이 때문에 정당은 자신이 공천해서 당선시킨 공직자를 계도하고, 감독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있어야 정당정치의 이름하에 책임정치가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무기력하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사실상 낙마했다. 여론으로 먹고사는 공당이라면 의당 현직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에게 민심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재발을 막았어야 한다.

이동흡 사태로 인해 잘못된 인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는 바로 그때, 아무런 검증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총리 후보자가 불쑥 발표됐다. 그 인사는 완전 실패로 끝났다. 새누리당이 이동흡 청문회 직후에 정색을 하고 재발을 막기 위한 예방활동에 들어갔더라면 사상 처음으로 새 정부의 첫 총리가 낙마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박 당선인 앞에 전전긍긍 복지부동했다.박근혜 정부의 때 이른 위기에 야권이 당파적 유불리 때문에 미소를 짓는다면 그건 오산이다. 박 정부의 위기가 자칫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복지 공약의 수정을 거부한 박 당선인이 힘에 밀려 강경보수의 요구에 굴복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중도노선으로 압승한 이명박 정부도 촛불항쟁 때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강경보수에게 의지한 바 있다. 실정 때문에 진보에다 중도세력까지 비판하고 나서는 위기 앞에 대통령으로선 보수세력에게 기대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가 없는 후원이 어디 있으랴. 그들의 보호와 지지를 받는 대신 박 당선인은 자신이 공약한 복지와 경제민주화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실패해도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반MB의 이미지를 가진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새누리당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새누리당에는 박근혜 당선인만한 대선후보는커녕 대중성 있는 리더도 없다. 반면에 야권에는 유력한 대권주자가 셋이나 있다. 이번 대선에서 1479만표를 받은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등이 그들이다. 인물구도에서 밀리기 때문에 여권이 정치적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행정·사정권력을 동원해 야권 후보의 흠집내기에 나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정치는 다시 먹고사는 문제를 두고 경쟁하는 민생정치가 아니라 삿대질과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낡은 정치에 매몰되게 될 것이다. 이런 정치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고단하고 답답한 보통사람들이다.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하면 서민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는 이명박 정부가 잘 보여주었다. 박근혜 정부가 빨리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를 잡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