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

박은경 기자

대통령 8명 수행 집사, 그의 눈에 비친 미국 현대사

1926년 미국 남부. 목화밭에서 일하던 어린 세실 게인즈(포레스트 휘태커)는 어머니가 백인 주인 아들에게 끌려가는 걸 목격한다. 어머니의 비명 소리가 들린 후 주인 아들은 바지춤을 추스르며 나온다. 항의하려던 세실의 아버지는 주인 아들의 총에 맞아 즉사한다. 세실은 “백인들 앞에서의 표정과 진짜 얼굴, 두 개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자란다.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The Butler)>는 미국 현대사를 살아낸 한 흑인 집사의 이야기다. 영화는 해리 트루먼부터 로널드 레이건까지 34년간 대통령 8명을 수행한 백악관 집사 유진 앨런(1919~2010)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리 대니얼스 감독은 백악관의 집사로 평생을 산 세실을 중심으로 백인의 총에 맞아 죽은 아버지, 흑인 인권 운동을 하다 고위 정치인이 되는 아들의 이야기를 엮고, 이들의 눈을 통해 미국의 현대사를 그린다.

아버지가 죽은 후 주인집에서 집사 교육을 받은 세실은 성인이 된 후 호텔에서 일하게 된다. “백인의 마음을 읽고 만족시키라”는 가르침을 바탕으로 좋은 평판을 얻는다. 성실한 태도를 눈여겨 본 공직자의 눈에 띄어 백악관 버틀러(집사)로 들어가게 된다.

[리뷰]영화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

영화는 세실의 극적인 삶을 흑인차별의 역사를 담는 데 효율적으로 이용한다. 맨손으로 가정을 일군 아버지 세실은 학비나 축내고 흑인 인권 운동을 하는 첫째 아들이 못마땅하고, 아들은 차별에 순응하고 백인들의 비위를 맞추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감독은 백인 전용 좌석에 앉았다가 모욕을 당하는 아들과 백인들에게 음식을 나르는 아버지를 교차로 보여준다. 평등과 정의를 강조하는 백악관과 남부에서 자행되는 흑인차별도 보여주면서 관객의 감정을 끓어 오르게 한다.

이 작품은 ‘보여주기’에 충실하다. 세실이 수행한 8명의 대통령은 유명 배우들의 연기로 되살아난다. 로빈 윌리엄스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따뜻한 성품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 나온다. 존 쿠삭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낙마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고뇌와 야심을 담는다. 인종차별 금지정책에 앞장선 케네디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이 조명되고, 남아공 인권 분리 정책을 옹호한 레이건 정부에 대한 실망이 드러난다.

2006년 <라스트 킹>으로 아카데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포레스트 휘태커의 연기는 훌륭하다. 흑인차별 발언에도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서빙을 하다가, 뒤돌아서서야 미세하게 변하는 눈빛을 세밀하게 표현한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연기에서도 재능을 보여준다. 2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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