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꿈틀 장어… 불끈불끈 일본의 힘?

도쿄 | 윤희일 특파원

예로부터 일본의 대표 보양식

“장어 빠진 식탁 상상도 못해”

멸종 위기감에 일본인들 불안

“장어를 못 먹으면 어떻게 사나….”

장어가 사라질 수도 있게 됐다는 소식에 일본인들의 탄식이 길어지고 있다.

일본인들은 장어를 잘도, 그리고 많이도 먹는다. 일본인들은 예로부터 장어를 신성한 물고기로 여기면서 장어 관련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어떤 지역에서는 장어를 신이 보낸 사신이라며 떠받들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논농사가 시작된 기원전 3세기 야요이(彌生)시대부터 장어를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에서 장어요리는 보양식으로 알려져 있어 여름철에 특히 인기가 높지만, 많은 일본인들은 사시사철 장어요리를 즐긴다.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장어덮밥. 전용 양념을 고르게 바르고 잘 구워낸 장어를 밥 위에 올려 놓으면 완성된다. 일본인들은  장어덮밥을 포함한 장어요리를 여름철 보양식으로 즐겨 먹지만, 사시사철 즐기는 경우도 많다.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장어덮밥. 전용 양념을 고르게 바르고 잘 구워낸 장어를 밥 위에 올려 놓으면 완성된다. 일본인들은 장어덮밥을 포함한 장어요리를 여름철 보양식으로 즐겨 먹지만, 사시사철 즐기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일본인들에게 최근 잇따라 전해진 소식은 말 그대로 충격이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지난 6월 일본 장어를 멸종위기종(레드 리스트) 가운데 멸종 위험이 두 번째로 높은 ‘가까운 장래에 야생에서 멸종할 위험성이 높은 종’으로 판정했다. 지난 17일에는 미주대륙 등에서 서식하는 미국 장어까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면서 이러다가는 전 세계의 장어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장어에 이어 미국 장어까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될 정도로 장어가 사라지고 있는 첫번째 이유는 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남획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천과 바다 등 서식지 환경이 악화되고 최근 해류가 변화하고 있는 것도 장어 감소의 한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장어 남획의 ‘1등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장어 소비대국’ 일본이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1년 동안 소비하는 장어(약 3만2600t)의 56%를 외국에서 수입해 충당하고 있다. 중국·대만·한국·홍콩·인도네시아·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 프랑스·스페인·덴마크·미국·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 생산되는 장어 상당 부분이 일본으로 들어오고 있다. 일본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장어의 70%를 수입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전 세계 식용 장어의 99%가 양식된 것이라는 점이다. 양식 장어는 100% 자연산 치어(稚魚·알에서 깬 어린 물고기)를 키워낸 것이다. 장어는 아직까지 알 단계에서부터 키워내는 ‘완전양식’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지구상에서 양식 장어가 소비된 수만큼 자연산 장어가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대량소비에 따른 남획은 결국 전 세계 장어 치어의 감소를 부른다. 일본 연안에서 잡힌 장어 치어는 50년 전 최고 200t에 이르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연간 3~6t으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일본·중국·대만이 국제적으로 장어 보호 관리체제 구축을 협의하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4개 나라는 지난 9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국제협의회에서 멸종 위기에 놓인 장어의 남획 방지에 적극 나서기로 하고 양식장에 공급하는 치어의 양을 20%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그러나 많은 국가의 양식산업과 식문화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수입 치어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장어 양식산업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가장 긴장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치어 공급량이 줄어들면 장어 출하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바로 가격 상승 등의 여파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장어요리를 일본을 대표하는 요리로 치켜세우기까지 하는 일본인들은 “이대로라면 일본의 장어 식문화 자체가 사라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지난 19일 낮 일본 도쿄 도심인 지요다(千代田)구 오테마치(大手町)의 한 장어요릿집 앞에서 만난 50대 직장인은 “장어가 빠진 일본의 식문화는 상상할 수도 없다”며 “혹시 장어를 먹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요즘 더 자주 여기를 들르게 된다”고 말했다.

장어 세 토막을 도시락 속의 밥 위에 올려놓은 ‘장어덮밥’을 점심 메뉴로 내놓고 1650엔(약 1만6500원)을 받고 있는 이 요릿집은 요즘 점심시간마다 손님으로 자리가 꽉 찬다. 2300엔(약 2만3000원)이나 3100엔(약 3만1000원) 하는 ‘특제장어덮밥’을 주문하는 손님도 많다. 장어 가격이 더 비싸지거나, 아예 장어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미리 먹어두자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는 현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장어라는 어종을 지켜내면서도 일본 고유의 식문화를 지켜낼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본에서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저가 장어가 일본 전국에서 대거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장어 자원이 급격하게 고갈되고 있다면서 이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요즘 장어덮밥 등 장어요리가 외식체인은 물론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까지 저가에 팔려나가고 있다. 일부는 개당 500엔(5000원)도 안되는 가격에 손님을 맞는다.

이시모토 준코(石元淳子) 우송대 외식조리학과 교수는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장어는 고급요리에 속해 서민들이 쉽게 먹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누구나 먹을 수 있게 대중요리가 됐다”며 “보다 고급화된 장어요리를 개발해 보급한다면 일본 고유의 식문화를 지켜내면서도 장어의 소비량을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완전양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장어 치어의 국제적인 유통량을 철저하게 제한하는 조치가 선행돼야만 장어 자원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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