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戰없는 세상을 위해

이동현 특집기획부장

인간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그 역사도 함께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 수메르의 신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인류역사의 구석구석 그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추악한 본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간혹 ‘필요악’이란 이름으로 용인되기도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인류역사에 붙은 ‘혹’ 같은 존재입니다. 떼내려 해도 그 후유증이 성가셔 그냥 내버려 두는 그런 혹 말입니다.

요즘엔 매매춘이라 합니다. 매춘이라는 용어가 여성에게만 그 책임을 뒤집어씌운다 하여 공평하게 매매춘이라 고쳤다지요. 그 용어가 어떠하든 도덕 또는 윤리성과 거리가 먼 것은 분명합니다. 파는 쪽이든 사는 쪽이든 본질적으로 인간성의 파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더 아픈 기억들도 있습니다. 신전 뒤에서 이루어진 ‘신성한’ 거래도, 우리끼리 이루어진 ‘자생적’ 거래도 아닌 외인(外因)에 의해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들이 짓밟혔습니다. 육만 엥이란다/ 후꾸오까에서 비행기 타고/ 전세 버스 부산 거쳐, 순천 거쳐/ 섬진강 물 맑은 유곡 나루… 은어 잡이 나온 일본 관광객들/ 삼박 사일 풀코스에 육만 엥이란다…. 정태춘은 자신의 노래 ‘내 살던 고향’을 부르며 70년대 그 시절을 통탄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이 땅에 미군이 주둔한 후로 그 주변 어디에나 기지촌이란 것이 들어섰습니다. 그 기지촌은 또 수많은 우리 누이들의 삶을 삼켰습니다. 어린 시절 옆집 살던 순이 누나가 어느 날 모습을 감추고 아주머니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습니다. 그때는 그 눈물의 의미를 차마 알지 못했지요. 인두 자국처럼 선명한 기억은 지금도 진행형인 현대사의 생채기입니다.

4년 전 이즈음 정부는 소위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하고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생존권이니, 풍선효과니 하며 그 실효성을 놓고 말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양은 달라졌지만 성매매는 여전히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다시 떠들썩합니다. 장안동이 화제의 중심에 있습니다. 관할 경찰서에 새 서장이 부임하면서 업소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성매매 대책은 산발적인 단속으로 하루아침에 끝날 일이 아닙니다. 정부는 장기적이고도 폭넓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가장 큰 피해자인 종사자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사회에 복귀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도 빠뜨려선 안 되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인간성’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자각 없인 어떠한 진전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고 본능을 통제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하겠지요. 결국 성매매 문제 해결의 출발점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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