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넘고 물건너 오지캠핑, 가평 경반분교

이윤정 기자

서울에서 1시간 거리에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은’ 오지가 있습니다. 맑은 계곡에 묻힌 경반분교 폐교 터는 캠핑객 사이에서 ‘오지캠핑장’으로 입소문이 났습니다.

“빠지직~” 승용차 밑바닥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돌밭에서 헛바퀴 질을 하던 차는 계곡을 두 개쯤 건너자 엔진소리마저 거칠어집니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 경반분교 캠핑장지기는 “승용차로 살살 운전하면 경반분교에 올 수 있다”며 수화기 너머로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산길은 점차 험난해지고 ‘경반분교’는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설상가상 휴대폰도 먹통입니다. ‘수신불가지역’이라는군요. 때마침 산에서 SUV 차량 한 대가 내려옵니다. 멈춰선 승용차를 본 SUV 차량 운전자는 “승용차로는 못 가요. 경반분교까지 앞으로 20분은 더 올라가야 해요”라고 말합니다.

차를 사랑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하세요

경반분교 가는 길. 계곡을 4~5개 지나야 경반분교에 다다를 수 있다. /이윤정 기자

경반분교 가는 길. 계곡을 4~5개 지나야 경반분교에 다다를 수 있다. /이윤정 기자

거친 숨을 몰아쉬던 승용차는 결국 산 중턱에 고이(?) 버렸습니다. 필요한 짐만 챙겨 걸어서 산을 오릅니다. 칼봉산자연휴양림에서 1.5km 정도만 가면 ‘경반분교’인데 마음 속 거리는 멀기만 합니다. 경반분교에 도착하기까지 산길은 종종 물길에 막혀 끊깁니다. 다행히 아직 계곡은 발목 정도의 깊이입니다. 장마가 끝나면 이 길은 차고가 비교적 높은 SUV차량도 조심조심 지나야합니다. 그래도 차를 버린 덕에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산을 오를수록 물소리는 커지고 들꽃은 화려해집니다.

등산로/ 원래 경반분교로 오는 길은 차가 다니는 길은 아닐 터다. 등산객이 유유히 걷기에 좋다. /이윤정 기자

등산로/ 원래 경반분교로 오는 길은 차가 다니는 길은 아닐 터다. 등산객이 유유히 걷기에 좋다. /이윤정 기자

‘경반분교’는 불현듯 나타났습니다. 학교 건물이 보이기 전에 알록달록 텐트가 먼저 눈길을 끕니다. 이렇게 ‘오지’인데도 텐트 10여동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물론 차량은 모두 SUV뿐입니다. 4륜구동 차량 운전자라도 ‘차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면 과감하게 포기할 것을 권합니다. 승용차 운전자라면 백패킹을 준비해 칼봉산자연휴양림에서 걸어 올라야 합니다.

맑은 반석, 경반리

1982년 폐교된 경반분교 / 이윤정 기자

1982년 폐교된 경반분교 / 이윤정 기자

경반리는 칼봉산 아래에 자리 잡았습니다. 맑을 경(?), 소반 반(盤) ‘맑은 반석’ 마을이죠. 주민들은 대부분 산아래 마을에 거합니다. 마을 위쪽에는 칼봉산 자연휴양림이 있습니다. 경반분교는 휴양림에서 비포장도로를 따라 차로 30분 가량을 올라야 나타나는데요.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에 경반분교가 있습니다.

이런 산촌에 어떻게 ‘학교’가 생겼을까요. 1970년대만 해도 경반리 산골에는 100여 가구가 살았습니다. 화전민이 밭을 일구던 마을이었죠. 한때 경반분교에는 80여명의 학생들이 등하교를 했습니다.

교사 숙소/ 교실 건물 뒤에는 교사 숙소로 쓰이던 집이 있다. 아궁이를 지금도 사용할 정도로 옛날 집이다. /이윤정 기자

교사 숙소/ 교실 건물 뒤에는 교사 숙소로 쓰이던 집이 있다. 아궁이를 지금도 사용할 정도로 옛날 집이다. /이윤정 기자

경반분교는 1982년 폐교했습니다. 캠핑장지기인 박해붕씨(73)는 1983년 폐교된 학교터를 샀습니다. 박씨는 “어머니가 나물 캐러 오던 산에서 ‘풍광이 좋은 곳’을 발견했다고 해서 보러 왔어요. 경반분교 터를 보자마자 ‘이곳이다’ 싶어 30년째 머물고 있죠”라고 말합니다. 마을에 살던 주민들은 “계곡 물소리가 너무 커서 잠이 잘 안 올 정도”라고 말했답니다. 현재는 3가구가 산골을 지킵니다.

전기도, 수도도 없어요

야영장/ 경반분교에 오는 과정은 험난하다. 칼봉산 자연휴양림에서 거리상으로는 약 1.5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계곡을 건너고 산을 올라야 한다. 하지만 야영장은 온통 산에 둘러싸여 날것 그대로의 하룻밤을 선사한다. /이윤정 기자

야영장/ 경반분교에 오는 과정은 험난하다. 칼봉산 자연휴양림에서 거리상으로는 약 1.5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계곡을 건너고 산을 올라야 한다. 하지만 야영장은 온통 산에 둘러싸여 날것 그대로의 하룻밤을 선사한다. /이윤정 기자

캠퍼들이 경반분교를 찾기 시작한 것은 4~5년 전부터입니다. 경반분교에서 하룻밤을 묵은 캠퍼가 블로그에 올린 글이 입소문을 타면서 알음알음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캠핑장지기는 찾아오는 사람을 막을 수 없어 마당을 내줬습니다. 차차 소문이 나다가 지상파 방송에서 예능프로그램을 이곳에서 촬영하면서 ‘경반분교’는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유명세를 탔지만 경반분교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폐교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전기시설과 수도시설이 없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다보니 휴대폰 기지국도 없습니다. 휴대폰이 터질 리가 없죠. 캠핑장지기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학교 건물에서 촛불을 켜거나 가스 랜턴을 켜고 생활합니다. 꼭 필요할 때만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사용합니다.

수도가 들어오지 않으니 야영장도 계곡물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계곡물을 개수대에 연결한 것일 뿐 수도꼭지가 없어 물을 잠글 수가 없습니다. 아니, 물을 잠글 필요가 없죠. 전기와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일반 캠핑장에 비해 불편함이 많은데도 매주말 경반분교에는 캠퍼들이 몰립니다. 산 넘고 물 건너 ‘오지’에 고립되는 즐거움은 ‘도전’하는 자만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캠핑Tip. 경반분교 캠핑



가평 경반분교는 수도권에서 오지를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곳이죠. 일단 4륜 SUV가 아니면 차로 경반분교까지 갈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계곡을 4~5차례 건너야 하기 때문에 승용차는 밑바닥이 침수될 수 있습니다. 차량을 아끼는 사람들도 도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차라리 백패킹을 준비해 걸어올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칼봉산자연휴양림에서 약 1.5km 산길을 오르면 됩니다. 캠핑장은 전기와 수도시설이 없습니다. 계곡물을 그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습니다. 주변에 매점이 없기 때문에 캠핑에 필요한 물품은 미리 칼봉산 아래에서 모두 준비를 해야 합니다. 경반분교에서 칼봉산 아래까지 차로 30분 가량 걸립니다. 길도 험해 오가기 힘듭니다. 단 경반분교의 풍광은 수려합니다. 야영장 바로 옆으로 맑은 계곡물이 흘러 ‘오지 캠핑’의 참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가는길/
가평 칼봉산자연휴양림에서 왼편으로 난 비포장도로를 따라 약 1.5㎞를 운전해서 올라가면 된다. 경반분교까지 계곡을 4~5차례 건너야 한다. 간혹 승용차로도 오는 캠퍼가 있다고는 하나 승용차로는 절대 올라갈 수 없다. 아무리 운전실력이 좋아도 차 밑바닥이 모두 긁히고 고장날 수 있다. 4륜 구동 차량 운전자여도 차를 아낀다면 포기해야 한다. 칼봉산 자연휴양림에서 산길을 따라 올라오는 방법과 연인산 MTB 코스를 따라 오는 방법이 있다. 산길을 따라 오면 계곡을 4~5차례 건너야 한다. MTB코스는 임도라서 비교적 길이 편하지만 경반분교까지 좁고 험한 길이 이어져 중간지점에 차를 세우고 300m가량 걸어서 경반분교까지 와야 한다. 내비게이션에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경반리 산 138-1 번지’를 입력하면 된다.

기타정보/
칼봉산 자연휴양림을 지나면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는다. 휴양림을 지난 1.5㎞ 정도 산길을 올라야 하는데 천천히 차를 운전해서 올라오면 30분 가량 걸린다. 경반분교 앞마당이 넓은 편이라 텐트는 20여 동 가량 칠 수 있다. 예약은 따로 받지 않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아날로그 캠핑장비를 준비해야 한다. 수도시설도 없어 계곡물을 그대로 사용한다. 주변에 매점이 없으므로 가평 시내에서 필요한 물품을 모두 사와야 한다. 캠핑료는 1박에 성인 1인당 1만원씩. 경반분교 바로 옆 계곡이 좋아 여름에는 물놀이를 할 수 있다. 칼봉산 등산로도 가볼 만하다. 031-581-8010


경반분교/ 한때 경반분교에는 80여명의 학생이 있었다. 1982년 폐교 당시 학생은 3명이 남아있었다. 지금은 산과 계곡 뿐이지만 70, 80년대에는 화전민 100여 가구가 이곳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이윤정 기자

경반분교/ 한때 경반분교에는 80여명의 학생이 있었다. 1982년 폐교 당시 학생은 3명이 남아있었다. 지금은 산과 계곡 뿐이지만 70, 80년대에는 화전민 100여 가구가 이곳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이윤정 기자

운동장이었을까? / 경반분교 야영장은 학교 앞 너른 공터를 활용한다. 40여 년 전에는 이곳에서 아이들이 뛰놀았을까. 지금은 잔디와 잡풀이 푸릇푸릇 돋았다. /이윤정 기자

운동장이었을까? / 경반분교 야영장은 학교 앞 너른 공터를 활용한다. 40여 년 전에는 이곳에서 아이들이 뛰놀았을까. 지금은 잔디와 잡풀이 푸릇푸릇 돋았다. /이윤정 기자

개수대/ 경반분교에는 전기와 수도시설이 없다. 개수대로 흐르는 계곡물을 지나가게 할 뿐이다. /이윤정 기자

개수대/ 경반분교에는 전기와 수도시설이 없다. 개수대로 흐르는 계곡물을 지나가게 할 뿐이다. /이윤정 기자

계곡/ 경반분교 바로 앞 계곡. 경반분교 캠핑장지기인 박해붕씨(73)는 “이곳이 강호동씨가 뛰어든 곳이에요”라고 소개한다. /이윤정 기자

계곡/ 경반분교 바로 앞 계곡. 경반분교 캠핑장지기인 박해붕씨(73)는 “이곳이 강호동씨가 뛰어든 곳이에요”라고 소개한다. /이윤정 기자

공터에 자유롭게/ 야영장은 크게 보면 계단식으로 구성됐다. 학교에서 한계단 내려오면 너른 공터가 있다. 여기에 화장실과 개수대가 있다. 이곳이 가득 차면 그 아래 공터까지 텐트를 친다. /이윤정 기자

공터에 자유롭게/ 야영장은 크게 보면 계단식으로 구성됐다. 학교에서 한계단 내려오면 너른 공터가 있다. 여기에 화장실과 개수대가 있다. 이곳이 가득 차면 그 아래 공터까지 텐트를 친다. /이윤정 기자

학교 뒤/ 학교 뒤로 계곡이 흐른다. 한밤중에는 물소리가 너무 커 잠이 잘 오지 않을 정도다. 아슬아슬 다리가 놓여져 있다. /이윤정 기자

학교 뒤/ 학교 뒤로 계곡이 흐른다. 한밤중에는 물소리가 너무 커 잠이 잘 오지 않을 정도다. 아슬아슬 다리가 놓여져 있다. /이윤정 기자

학교종/ 수업 시간을 알리던 종. 지금은 사용할 일이 없어 녹이 슬었다. /이윤정 기자

학교종/ 수업 시간을 알리던 종. 지금은 사용할 일이 없어 녹이 슬었다. /이윤정 기자

풍금/ 경반분교 교실에 남아있는 풍금. 폐교된 지 40여년이 지났지만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윤정 기자

풍금/ 경반분교 교실에 남아있는 풍금. 폐교된 지 40여년이 지났지만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윤정 기자

수락폭포까지/ 경반분교에서 수락폭포까지 걸어서 40분 정도 걸린다. 보통 사람들은 쉬엄쉬엄 걸어서 칼봉산 정상까지 오른다. /이윤정 기자

수락폭포까지/ 경반분교에서 수락폭포까지 걸어서 40분 정도 걸린다. 보통 사람들은 쉬엄쉬엄 걸어서 칼봉산 정상까지 오른다. /이윤정 기자

화전민이 살던 한옥/ 현재 경반분교 인근에는 주민 2가구가 더 산다. 과거 화전민이 살던 한옥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윤정 기자

화전민이 살던 한옥/ 현재 경반분교 인근에는 주민 2가구가 더 산다. 과거 화전민이 살던 한옥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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