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술안보와 에너지안보

임춘택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장

미·중 무역전쟁이 1년을 넘기면서 2017년에 5.4% 증가했던 세계 무역규모가 올해는 3.6%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영향으로 우리 수출은 작년 6월 대비 13.5% 감소했다. 여기에 최근 불거진 한·일 무역분쟁도 해결이 안되면 양국 간 무역 감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한·일 양국이 54년간 지켜온 정경분리 전통과 국제무역의 신뢰가 훼손된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단초가 된 것은 미국의 누적된 무역적자인 반면, 한·일 무역분쟁은 무역흑자국이 촉발했다는 점에서 자학적이다. 이번에 화웨이, 삼성이 공격목표가 된 데서 알 수 있듯이 무역전쟁의 승패요인은 기술이다.

[기고]기술안보와 에너지안보

국제정치학에서 세력 전이가 일어날 때 당사국 간에 종종 전쟁이 발생한다. 다만 과거 군사전쟁이 지금은 무역전쟁과 기술전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작년에 중국의 수출규모는 세계 1위로서 2위인 미국의 1.5배, GDP는 미국의 66%에 육박했다. 작년에 한국의 수출규모는 세계 6위로서 4위인 일본의 82%, 1인당 명목 GDP는 일본의 91%에 달했다. 기술력의 척도인 국제특허 비중은 미국 22.2%, 중국 21.1%, 일본 19.6%, 독일 7.8%, 한국 6.7%다. 우리가 5대 특허강국에 들어가면서 경쟁과 견제가 더 치열해졌다.

정부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개발에 매년 1조원을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일 간 무역분쟁이 세력 전이과정에서 오는 것이라면 보다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반도체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고 일본에만 국한되는 문제도 아니다. 소재·부품·장비 분야 전반에 걸쳐 도입선을 다변화하고, 기술축적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특성을 고려해 장기투자해야 한다. 화학·기계 소재·부품에 강한 독일 등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대안이다. 물리·재료·화학 등 관련 기초과학 투자도 확대해야 한다. 고급 인력 양성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내년도 연구·개발예산을 10% 증액해야 한다. 정부예산 중 유일한 혁신투자인데, 평균 예산증가율보다 낮아서는 곤란하다. 연구·개발 효율도 10% 개선하자.

국방이나 외교만이 국가안보가 아니다. 기술, 에너지·식량도 중요한 국가안보가 됐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소재·부품 일부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산을 대체하려면 일정기간 생산차질이나 단가상승, 성능저하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일본도 무역흑자 감소와 수출중단을 피할 수 없다. 피차 간에 외교적 해법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이번 일이 소재·부품 자립의 확실한 동기가 되고 한·일 간 비가역적 변화를 촉발한 것은 분명하다.

에너지가 자원중심에서 기술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기술은 에너지안보의 핵심요소가 됐다.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 때문에 석유·석탄 등 화석에너지 대신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교통수단이 부상하면서, 이제 재생에너지 기술이나 친환경 자동차 기술을 가진 국가가 국제정치를 주도하게 됐다. 예컨대 포르투갈은 재생에너지로 57% 발전하면서 러시아의 석유·가스로부터 정치 독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르비아·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서두르는 이유도 에너지안보 때문이다.

자원이 부족해 대외의존율이 94%에 달하는 우리나라도 기술을 통해 에너지 자립국가가 될 희망이 생겼다. 원자력기술 자립도 그런 차원에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석탄화력기술도 자립은 했으나 세계시장 축소와 환경규제로 수출이 어려워진 것처럼, 원전은 경제성 악화로 재생에너지 시장의 10% 정도로 축소됐다. 반면, 국제 태양광 발전단가는 최근 kWh(킬로와트시)당 20원 수준까지 내려가 가장 값싼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을 생각한다면 재생에너지 기술확보에 앞장서야 한다. 특히 태양광·풍력·가스터빈 발전과 배터리기술 선점이 중요하다. 현재 연간 2100조원인 세계 에너지시장은 20년 후 5000조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의 10%를 점유하면 500조원 수출산업이 된다. 또한 수요보다 4배 이상 넓은 국내 가용부지를 활용하면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자립도 가능하다. 에너지기술이 국가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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