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에서 ‘성매매’까지, “남성들의 ‘놀이 문화’에 대해 질문해야 할 때”

김보미 기자 · 최유진 PD
서울 중구 북창동의 밤 거리 모습. 최유진PD

서울 중구 북창동의 밤 거리 모습. 최유진PD

“집단적인 남성의 놀이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n번방에서 성매매까지 문제의식이 연결되기까지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성매매 과정에서 겪는 피해를 상담하고 여성들의 의료·법률 등을 지원하는 유나 활동가와 혜진 활동가는 현장에서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다. 단단하고, 공고하게 쌓아 올려진 성매매 산업의 규모와 구조를 마주할 때다. 분노가 일기도 한다. 성매매 현장에서 이뤄지는 폭력들이 ‘폭력’이라는 범죄로 드러나지 못하고 지워질 때다.

혜진 활동가는 “성매매한 사실을 알리겠다는 협박”으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가시화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사채업자들의 불법 채권추심, 구매자의 스토킹과 폭력, 절도, 불법촬영 등은 명백한 불법이고 폭력이잖아요. 하지만 (가해자들은) ‘(신고하면) 네가 성매매 한 것을 알리겠다’고 하고, 여성들은 두렵잖아요. 그래서 사건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요.”

성 판매자인 성매매 여성은 불법 성매매에 대한 처벌 외에 사회적 처벌도 가해지기 때문이다. 성매매 경험이 알려진 후 주변의 시선과 반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폭력을 겪어도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신고로 자신의 성매매 사실이 알려지면)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볼지, 매장당하지 않을지, 모든 관계가 끊기지는 않을지, 나의 삶이 여기서 멈추는 건 아닐지 이런 두려움이 크죠. 폭력의 피해자로 경찰서에 가도 피해자나 참고인이 되는 게 아니라 경찰이 성매매의 피의자로 대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고립이 반복되고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 자체를 막아버리는 분위기가 있어요.”

“수사기관이 성매매 현장에서 일어나는 폭력으로 처벌하지 않는 일은 너무 비일비재하거든요. 성매매 과정의 폭력을 어떻게 보는지 드러나는 것이죠.”(유나)

성을 구매·판매·알선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성매매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됐을 때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법 규정이 여성을 처벌하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다.

“‘왜 산 사람만 잘못이야? 성을 판 사람도 잘못이지?’라는 사회적 인식 체계가 (공고하게) 잡혀 있어요. 법적 처벌은 전부 적용되지만, 구매자는 사회적인 편견과 처벌에서 벗어납니다. 판매자들은 벗어나지 못하고요.”(혜진)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유나 활동가와 혜진 활동가에게 2020년 성매매 산업에 대해 질문했다. ‘여성의 시간을 돈으로 사서 지불한 만큼 어떠한 성적 요구도 할 수 있다.’ 두 활동가는 이 같은 시각이 당연하게 통용되는 유흥산업을 남성들의 놀이 문화로 인정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성매매 산업을 키웠다고 했다. 최유진 PD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유나 활동가와 혜진 활동가에게 2020년 성매매 산업에 대해 질문했다. ‘여성의 시간을 돈으로 사서 지불한 만큼 어떠한 성적 요구도 할 수 있다.’ 두 활동가는 이 같은 시각이 당연하게 통용되는 유흥산업을 남성들의 놀이 문화로 인정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성매매 산업을 키웠다고 했다. 최유진 PD

‘n번방 사건’을 통해 드러난 디지털 시대의 성을 둘러싼 폭력은 과거 일 대 일 개인 간 폭력과는 다른 양상이다.

유나 활동가는 “‘n번방’과 같은 플랫폼을 통한 폭력이 합법적 영역으로 들어오려는 시도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미 성매매에서 경험한 ‘성착취 산업’의 시장성을 학습한 탓이다.

“‘n번방’은 일정 부분 산업화된 형태였다고 봅니다. 수익을 창출하는 ‘착취적인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고, (앞으로) 굉장히 발달할 것이라고 봐요. 운영자들은 이미 경험했거든요. 성매매 산업을 보면서 여성이 동의했다면, 여성이 대가를 받았다면 그 돈의 액수가 얼마든, 받은 것이 ‘돈’이 아니라 ‘떡볶이’여도 여성의 탓을 하면 운영자 책임이 없어진다는 것을 경험한 거죠. 그래서 이 산업을 놓지 못하는 거예요.”

성매매가 ‘돈이 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은 왜 ‘n번방’이라는 범죄가 나타났는지와 맞닿아있다. 또 이 질문은 왜 성매매 산업에 여성들이 유입되는지, 똑같이 빈곤을 겪어도 남성들은 왜 성을 팔지 않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남성들이 더 윤리적이어서 성을 판매하지 않는 것이 아니죠. 남성은 ‘성을 사는 것’이 자신의 역할로 계속 이야기돼 왔기 때문에 그 역할로 박제된 것입니다. 남성들이 성매매하러 가는 것이 성욕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아니거든요. ‘남자가 되기 위해’ 가는 거예요. 내가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으며, 돈을 낸 만큼 여성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사기 위해 성 구매를 하는 것이죠.”

이 같은 남성들의 행동은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남성성’과 배치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한국 사회의 ‘반성매매’, ‘탈성매매’는 가능한 이야기일까. 두 활동가는 이 같은 남성들의 ‘문화’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성매매를 산업으로 접근해 분석하는 작업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매매를 산업으로 조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은 여성들의 경제적 문제이고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입이죠. 이를 위한 분석과 공론화를 위한 고민과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에요.”(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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