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고소 철회했지만…다시 심판대 오른 ‘모욕죄’

이혜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마치고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마치고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을 비난하는 내용의 전단지를 돌린 시민을 모욕죄로 고소했다가 철회해 논란이 일었다. 형법 311조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모욕죄를 규정하고 있다.

감정을 드러낸 표현을 처벌하는 모욕죄는 위헌론과 폐지론에 휩싸여 왔다. 말 한 마디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형사처벌될 수 있으므로 시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위축된다는 점에서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고소 철회를 발표하면서도 “앞으로 명백한 허위 사실을 유포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개별 사안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해 결정하겠다”며 향후 고소할 여지를 남겼다.

모욕죄,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헌법재판소가 모욕죄에 대한 합헌 결정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법원에서는 위헌 여부를 심사해달라는 결정이 또 나왔다. 모욕죄는 다시 헌재 심판대에 올라 있다.

■사소한 말다툼까지 모욕죄로…너도나도 “고소”

대법원은 어떤 표현이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때 모욕에 해당한다고 본다. 하지만 사례들을 보면 과연 모욕적 표현을 광범위하게 규제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모욕죄는 다양한 비판을 받아야 하는 권력자가 시민을 고소하거나, 논란을 빚은 당사자가 자신을 비난하는 시민을 고소하는 데 흔히 이용돼 왔다. 2019년 나경원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나베(나경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표현을 한 댓글 작성자 170여명을 모욕 혐의로 고소한 적이 있다. 방송인 고 박지선씨 사망 뒤 박씨를 모욕했다는 비판을 받은 유명 BJ 철구, 사생활 동영상으로 가수 고 구하라씨를 협박한 혐의를 받은 최종범씨도 누리꾼들을 고소했다.

토론 과정에서의 공방이나 사소한 말다툼, 공인에 대한 비난성 발언까지 모두 모욕죄의 대상이 된다. 마땅한 처벌법이 없는 상황에서 성희롱 발언도 모욕죄로 처벌되고 있다. 법원 판결들을 보면 사회적 약자·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은 물론이고, 혐오에 대항해 만들어진 미러링 단어까지도 모욕적 표현이라는 이유로 재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모욕죄 사건 수는 급증했다. 검찰연감을 보면, 2000년 검찰에 접수된 모욕죄 사건은 1858건이었으나 2019년엔 4만8249건이다. 20년 만에 사건 수가 약 26배 늘어났다. 수치는 2006년까지는 2000건대를 유지하다가 2011년 처음으로 1만건을 넘었다. 그 후로는 가속도가 붙었다. 최근 10년 사이에는 1년에 최소 5000건 이상씩 늘었다. 이중 기소된 사건 수는 2000년 532건에서 2019년 8550건으로 약 16배 증가했다.

2019년 기준 기소된 사건의 약 96%는 약식 사건이다. 모욕죄는 ‘1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이지만 대부분이 벌금 이하로 끝난다. 구속은 3건에 불과했다. 접수된 사건 중 불기소 비율은 약 65%다.

이승민 인천 남동경찰서 경정(변호사)은 <형법상 모욕죄에서 ‘모욕’의 개념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실제 일선 수사 현장에서 모욕 고소장을 보면 술자리, 주차문제 등 주민들간 분쟁, 온라인 게임 중 채팅, 길거리에서의 말다툼 등 사소한 분쟁 과정에서 시작된 욕설과 댓글 내용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 경정은 “작은 무례와 멸시로 시작된 욕설에 대해 형벌로 처벌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다”며 “우리나라가 모욕죄를 징역형의 처벌까지 다스리는 보기 드문 나라임에도 모욕죄 건수는 폭증하고 있다”고 했다.

악성 댓글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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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의사표현 위축시키는 모욕죄

모욕죄 위헌론과 폐지론의 주된 근거는 ‘표현의 자유 위축’이다. 유엔(UN)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1년 6월 일반논평 제34호에서 “의견을 가졌다는 것을 범죄화하는 것은 자유권규약 제19조 제1항(표현의 자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0년 한국을 방문한 프랑크 라 뤼 UN 특별보고관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근거로 개인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빈도가 증가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야기할 위험이 커진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반면 헌법재판소는 2013년에 이어 지난해 12월 모욕죄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런데 헌재의 합헌 결정이 나온 지 한 달여 만인 지난 1월 법원에선 모욕죄가 위헌이니 헌재가 심리해달라는 결정이 나왔다. 류영재 대구지방법원 판사의 위헌제청이다. 시민이 직접 헌재에 내는 헌법소원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법원의 위헌제청은 처음으로 알려졌다.

위헌제청이 나온 사건은 가상화폐를 구매한 투자자 A씨가 텔레그램의 투자자 공개대화방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연구하는 회사 직원들을 상대로 “도랐나 진짜 사기꾼 XX들이” 등 9회에 걸쳐 글을 올렸다가 모욕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A씨의 변호인이 모욕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고, 류 판사가 이를 받아들였다. 류 판사는 “‘사상과 의견의 1차적 발현’이라는 표현의 특성상 자기검열을 강하게 부르는 형사처벌은 그 자체로 표현의 위축효과를 부르는 중대한 제한이 된다”고 지적했다.

류 판사는 모욕죄가 명확성의 원칙과 비례의 원칙 등에 어긋난다고 봤다.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은 명확하게 규정돼 있어야 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최소한의 제한에 그쳐야 한다는 헌법상의 기본원리다. 모욕죄는 사실 적시가 없는 추상적·경멸적 표현을 처벌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같은 표현이 과연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지 논란이 생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김가연 변호사가 논문 <모욕죄의 보호법익 및 법원의 현행 적용방식에 대한 헌법적 평가>에서 든 예시를 보면 이렇다. 길을 지나가던 B씨가 전혀 모르는 사람인 C씨에게 욕설을 한 상황이다. 현행법대로라면 B씨는 모욕죄로 처벌을 받겠지만, 이를 지켜본 제3의 시민은 엉뚱하게 욕설을 한 B씨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가만히 있다가 봉변을 당한 C씨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모욕죄 처벌은 욕설이 어떤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욕설을 들은 사람의 모욕감 때문이라는 게 박 교수 등의 주장이다. 이 모욕감은 주관적이고 불명확해 처벌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같은 표현이라고 모두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고 표현이 나온 맥락과 배경을 따지는데, 일반 시민이 어떤 표현이 모욕죄에 해당하는지 알기 어려울 뿐더러 수사기관과 1·2·3심 법원의 판단도 엇갈리는 상황이다. 류 판사는 “모욕죄는 그 구성요건요소가 되는 표현의 범위가 불분명하고 보호법익이 사실상 명예감정으로 취급돼 운용되며 처벌 여부가 재판부의 판단에 좌우되는 측면이 커 명확성 원칙 및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했다.

또 류 판사는 “현재 재판실무에 비춰보면, 타인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 피해를 호소하거나 타인을 규탄하기 위해 발화한 표현이나 부당한 상황을 비꼬거나 풍자하기 위해 발화한 표현들, 상호 다툼이나 논쟁이 격화되면서 나오는 표현들까지 모두 모욕죄로 처벌될 위험이 높다”고 했다. 류 판사는 “표현의 위축효과를 고려해 볼 때 이러한 표현들을 모두 형사처벌할 경우 비판이나 반대의견을 사회에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조심스러워져 결국 민주사회에서 의견이나 사상, 정책을 검증할 기회가 사라질 수 있고 이는 민주적 사회질서를 형성하는 표현의 자유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위험이 발생한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했다. 모욕적 표현으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 형사처벌이 아니라 민사소송으로 책임을 묻는 방법이 있다.

2015년 12월5일 예술가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가면을 쓰고 ‘집회·결사·표현의 자유를 위한 예술행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서성일 기자

2015년 12월5일 예술가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가면을 쓰고 ‘집회·결사·표현의 자유를 위한 예술행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서성일 기자

검사가 모욕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사건들 중 일부는 헌재가 다시 처분을 취소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헌재는 공적인 인물의 부당한 행위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부득이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은 모욕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다. D씨는 페이스북에 ‘E씨는 술 취한 여성의 사진을 도촬하고 짤로 만들어 단톡방에 유포해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짓을 장난거리로 삼는 쓰레기였다’고 썼다가 모욕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E씨는 대학의 학생회장이었고, 교내 조사 결과 성폭력이 인정됐다. D씨는 기소유예 처분이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헌재에 취소를 청구했다.

헌재는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면서 “공적인 인물에 대한 비판을 하는 과정에서 비위나 비행을 강조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부분적으로 모욕적 표현을 하는 경우까지 형사처벌을 한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를 심히 위축시킬 수 있다”고 했다. D씨가 글을 올린 동기가 대학 내에서 공적 인물인 E씨의 부당한 언행을 폭로해 처벌과 사과를 유도하고 대학 내 성희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인 점, 글의 상당 부분이 사실에 근거하고 모욕적 표현을 E씨가 자초한 측면이 있는 점, 3000자가 넘는 전체 글 중 모욕적 표현은 ‘쓰레기’ 1번에 불과한 점 등이 고려됐다.

여러 논쟁에도 불구하고 헌재는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모욕죄로)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예측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모욕죄 자체는 합헌이라는 입장이다. 헌재는 특히 지난해 결정에서 ‘온라인 환경’을 언급했다. 온라인상에서 악성 댓글 등으로 모욕적 표현이 쉽게 전파될 수 있고, 파급효과가 커 모욕죄를 통해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유남석·김기영·이미선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타인에 대한 비판, 풍자·해학을 담은 문학적 표현, 인터넷상 널리 쓰이는 다소 거친 신조어 등도 모욕죄로 처벌될 수 있다”며 “모욕죄의 형사처벌은 다양한 의견 간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해 사회공동체의 문제를 제기하고 건전하게 해소할 가능성을 제한한다”고 했다.

모욕죄 폐지 법안을 발의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와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모욕죄 폐지 법안을 발의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와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모욕죄 폐지 법안 발의됐지만 통과는 난망

21대 국회엔 모욕죄를 폐지하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제출돼 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고, 김남국·황운하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에 동참했다. 19대 국회 땐 박영선 의원이, 20대 국회 땐 금태섭 전 의원이 대표해 모욕죄 폐지 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금 의원 등은 법안 제안이유에서 “모욕죄가 고소를 통해 사법시스템을 이용할 자력이 있는 기득권층이 자신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이나 견해를 가진 사람의 의사표명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수사력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며 “더욱이 모욕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처벌대상이 되는 표현을 사전에 예측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야권 대선주자인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달 “대통령 및 고위공직자는 국민의 무한한 비판대상이 되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며 모욕죄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문 대통령의 모욕죄 고소 철회가 공인이 모욕죄를 남용하는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손 변호사는 “경멸적인 감정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이) 국민을 형사처벌의 위협으로 몰아넣는 것은 비판적인 여론을 거부하겠다, 위축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였다”며 “강력한 권력을 가진 공인은 반박할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하고, 그런 자리에 있는 만큼 의혹 제기나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손 변호사는 이어 “모욕죄가 존재하는 한 누구나 처벌될 수 있다”며 “국가형벌권은 해악이 명백하고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때 개입돼야 하는데 어떤 표현의 올바름을 판단하는 것을 떠나 (모욕적 표현을) 형사처벌하는 게 과연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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