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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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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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박민규 선임기자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박민규 선임기자

대선후보 나선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41)가 지난 8월 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 결정 후 와신상담한 그는 지난해 6월 민중당에서 진보당으로 당명을 개정하면서 첫 당대표로 취임했다.

지난 8월 10일 서울 종로구 사직로에 있는 진보당 당대표실에서 김 대표를 인터뷰했다. 그는 시종 밝은 표정과 목소리로 자신의 구상과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과거 그와 통합진보당에 휘몰아친 경선부정 시비와 종북(從北)몰이, 당 해산 후의 이야기를 하던 어느 지점에선 눈물을 쏟고 말았다. 김 대표는 “김재연과 옛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건재함을 보여드리겠다”며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확고히 세울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보진영의 단일화 요구가 있더라도 민주당과의 단일화는 없다. 끝까지 완주하겠다”고 밝혔다.

“죽은 줄 알았던 김재연과 옛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더 건강하게 살아 돌아와 이렇게 건재합니다.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정리하고 확립하는 일을 제 발언이나 활동을 통해 보여드릴 겁니다.”

-어떤 각오로 대선에 출마한 건가요.

“지금 대선에 임하는 김재연은, 우선 하나는 죽은 줄 알았던 김재연과 옛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더 건강하게 살아 돌아와 이렇게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또 하나는 ‘진보정치의 위기’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정리하고 확립하는 일을 저의 발언이나 활동을 통해 보여드릴 겁니다. 그것을 노동에 무게중심을 둔 ‘일하는 사람들의 정치혁명’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고요.”

-대선공약으로 임금 삭감 없는 주4일제 도입과 토지공개념 전면 실시, 1단계 연방통일공화국 진입 등을 내세웠어요. 급진적이라는 시선이 있어요.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이미 주4일제를 실시하는 곳들이 있어요. 사회적 논의 속에 주4일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고, 아이슬란드를 비롯해 유럽에서 성공한 사례도 있어요. 또 토지공개념은 노태우 정부가 비록 위헌 판결을 받았지만 추진했던 정책이에요. 추미애, 이낙연, 이재명씨 등 민주당 대선후보들도 주장한 것이고요. 그럼에도 진보당이 이야기하니까 ‘실행할 힘도 없으면서 과격한 주장을 한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진보당의 당대표실 창밖으로 보이는 청와대를 대선에 나선 김재연 상임대표가 지난 8월 10일 한 손으로 들어올려 보이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진보당의 당대표실 창밖으로 보이는 청와대를 대선에 나선 김재연 상임대표가 지난 8월 10일 한 손으로 들어올려 보이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그러고 보니 무상급식·무상교육을 최초로 주장한 것도 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민노당)이었네요.

“2002년 16대 대선 당시 권영길 민노당 후보가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정책이었어요. 또 기초노령연금과 아동수당, 상가임대차보호법, 선거연령 18세로 하향도 당시 같이 제시한 공약이었죠. 처음엔 다들 쇼킹하게 받아들였지만 시간차를 두고 모두 실현됐잖아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지난해 노동절에 전격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후 단계적으로 도입 중인 전국민고용보험도 지난해 4·15 총선 당시 우리 당의 공약이었어요.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가 민중당 지지연설에서 제시했죠.”

-언급된 정책들을 모두 민주당이 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속상하겠습니다.

“진보정당의 진취적 정책도 이제는 여당에서 다 흡수할 수 있는 시대가 됐음을 느끼고 있죠(웃음).”

-이정희 전 대표는 어떻게 지내나요.

“국민입법센터를 설립해 공익적인 정책을 만들고 입법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계세요. 최근에는 진보당과 함께 돌봄정책기본법·돌봄노동자기본법을 만드는 작업을 했고요. 얼마전에는 국가보안법 관련한 책을 민변과 함께 내셨어요.”

-진보당은 NL(민족해방) 계열로 흔히 인식되는데, 대선 슬로건도 그렇고, 노동자를 강조하고 있어요. 당의 정체성이 바뀐 건가요.

“진보당 당원의 65%가 노동자이고 그 대다수가 비정규직이에요. 당연히 노동중심성을 강화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핵심가치여야 하죠. 당(통진당)이 어려웠을 때도, 심지어 당이 해산된 후에도 우리 당의 핵심당원들은 다른 당으로 옮겨가지 않았어요. 요양병원노동자, 택배노동자 등이 되어 노동현장으로 들어갔죠. 밑바닥에서부터 진보정치가 뿌리내리도록 노력해온 거예요.”

-하지만 진보당은 너무 존재감이 없어요. 지난 총선에서도 정당 지지율이 1%대에 그치면서 원내 진입도 실패했어요. 어떻게 극복할 계획인가요.

“객관적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순 없죠. 한 번이라도 도약할 수 있는 가장 큰 계기가 선거예요. 조국 사태 등 일련의 과정에서 정의당이 보여준 모습을 통해 진보정당의 변별력이 없어진 게 아니냐는 말씀을 많은 분이 하세요. 우리는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확고히 세울 자신이 있습니다.”

-진보당의 당원수는 얼마나 되나요.

“8만명이에요. 이중 월 1만원의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이 4만명이 넘어요. 9월 5일 권리당원들이 투표로 나를 선출해줘야 내가 공식적으로 당의 후보가 되는 거예요. 당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지금 전국을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정의당의 권리당원이 2만3317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더 많군요.

“네.”

그는 “대선도, 내년 지방선거도 원외정당이라는 조건에서 치르는 게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당원들이 보여주는 역동성과 진보정치에 대한 기대감은 민노당 때와는 판의 울림 자체가 다르다”고 다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당원의 3분의 2가 생애 처음 가입한 정당이 진보당이라고 해요. 나이 50~60세 분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정치공간에서 실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하며 받아들이고 계시죠. 진보당은 당의 분회라는 기초조직이 1000개가 넘어요. 이 조직들은 한달에 한 번 이상 당 모임을 해야 하죠. 창당한 지 3년밖에 안 된 당임에도, 당원들은 그렇게 진보정치를 공부하고 계세요.”

-대선자금은 어떻게 마련할 계획인가요(15% 이상 득표하는 후보자나 정당에는 대선자금의 전액을, 10% 이상 득표하면 절반을 보전해주지만 현재로선 진보당이 이를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얼마 전 당의 공식 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에서 당원들이 20억원을 모금하기로 했어요. 최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쉽지 않은 금액임에도 열의를 보이고 계세요. 진보당은 지난 4월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 되고 노조도 못 만드는 5인 미만 사업장이나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노동자기금’을 만들었어요. 당원들은 그 기금에도 매달 1만원 이상씩 자발적으로 내고 있어요.”

-지난해 6월 민중당에서 진보당으로 당명은 왜 바꾼 건가요.

“아무리 좋은 뜻을 지녔어도 대중에게 잘 전달되지 않으면 대중정당으로서 자기 기능에 충실하지 않은 것이라 판단해서예요. 당명 개정에 당내 반발도 상당했지만 대중정당으로 반드시 국민 앞에 서야 한다는 의지가 강해 관철됐어요.”

-북한 지령을 받고 F-35A 스텔스기 도입 반대 활동 등 간첩 혐의를 받는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조직원 4명이 최근 국정원과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어요. 수사기관의 영장에는 민중당의 내부동향과 포섭대상자 등에 대해 북한에 보고했다는 내용 등이 있던데, 이들과 진보당이 관계가 있습니까.

“금시초문이라 충북도당을 통해 알아봤어요. 이전에 당에서 징계도 받았고, 탈당도 했고, 지금은 당하고는 아무런 연관이 없더라고요.”

김 대표는 1980년 대구 출생이다. 서울 대일외고와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서울캠퍼스)를 졸업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한총련 대의원으로 활동하던 중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생활을 했다. 2008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했고 2012년 비례대표 3번으로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33세였다. 2011년 반값 등록금 투쟁을 주도해 사회적 파장과 함께 결실을 본 게 당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12년 5월 30일 김재연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반값등록금 법안, 19대 국회 1호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한 시민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2012년 5월 30일 김재연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반값등록금 법안, 19대 국회 1호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한 시민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당선되자마자 비례대표 부정경선과 종북논란으로 홍역을 치렀어요.

“국회 등원 첫날 반값 등록금을 19대 국회의 첫 1호 법안으로 실행하라는 기자회견에 참석했어요. 그런데 군복을 입은 한 시민이 ‘종북좌파 국회 입성 안 돼’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 계셨죠. 다음날 신문 1면을 비롯해 언론의 조명을 받은 것은 기자회견 내용이 아니라 제가 입었던 보라색 미니스커트와 군복 입은 남성의 피켓이었어요.”

-당시 부정경선 의혹으로 인해 당 지도부로부터 거센 사퇴 요구를 받았어요. 검찰수사와 재판 결과, 부정선거를 저질러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부정경선 의혹을 처음 제기한 국민참여계의 오옥만씨 등이었죠. 관련해 국민참여계를 대표하는 유시민 전 통진당 공동대표(현 노무현재단 이사장)나 관련 인사들의 사과가 있었습니까.

“유시민 전 대표는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았어요. 언론 인터뷰에서 당의 위기나 분열을 증폭시키는 발언만 했죠. 처음 시작은 ‘부정경선이 있었다’였다가 나중엔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오간 데 없고 당권파가 당 안에서도 패권적이다, 종북이다, 이런 프레임을 확대하는 말씀을 하셨어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온 진보민중진영의 관례까지 비틀어 애국가를 안 부르더라는 말씀까지 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넘으려 열심히 노력해도 쉽지 않은데, 외부에 우리(국민참여계와 당권파로 불린 민주노동당계)의 불화를 알린 건 굉장히 가슴 아프고 부끄러운 일이에요. 유 전 대표께 그때 상황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냐고 묻고 싶어요.”

헌법재판소는 2014년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으로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이석기·이상규·김재연 등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도 자동으로 상실됐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관련해 민주당은 물론 (통진당에서 나가 따로 살림을 차린) 정의당마저 이석기 체포동의안에 동의했어요. 특히 아팠을 것 같아요.

“믿기지 않았죠. 심지어 정의당은 당론으로까지 결정했어요. 심상정 당시 원내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민은 헌법 밖의 진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까지 했고요. 우리가 위헌세력인가? 뭐지? 했는데 법무부가 헌재에 위헌정당 심판 청구를 한 거예요. 그 일련의 과정이 놀라움의 연속이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었죠. 최근 이석기 전 의원 석방 요청 탄원서를 모아 청와대에 보냈는데 심 의원을 비롯해 정의당 지도부가 처음으로 탄원서를 써주셨어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계를 떠난다는 생각은 단 한순간도 해본 적 없어요. 지켜야 했지만 지키지 못한 당한 어떻게든 다시 추슬러 성공시켜야 하는 책임감을 안고 있었으니까요.”

-고난의 연속이었는데 정계를 떠날 생각은 안 해봤나요.

“한순간도 해본 적 없어요. 지켜야 했지만 지키지 못한 당을 어떻게든 다시 추슬러 성공시켜야 하는 책임감을 안고 있었으니까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기초공사부터 탄탄히 다져 다시는 흔들리거나 주저앉는 일을 반복하지 말도록 하자고 결심했어요.”

대법원은 2015년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해 내란음모는 무죄,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은 유죄로 확정했다. 이 사건 초기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지하혁명조직 RO’도 실체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럼에도 이 전 의원은 90분 강연으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이석기 전 의원이 2013년 8월 긴급체포됐으니, 8년째 옥중생활을 하는 거네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더구나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이 박근혜 정권과 양승태 사법부 그리고 부역한 보수언론이 있어 가능했던 사건임이 2019년 5월에 밝혀졌잖아요. 탄핵 정권을 딛고 선 정부 하에선 당연히 재심청구가 받아질 거라 기대했어요. 하지만 지난 8월 6일 사법부는 재심청구를 기각했어요. 지난 4월엔 통진당 국회의원 지위확인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기각 판결을 했고요. 기가 막혀요. 심지어 조선일보는 최근 사설을 통해서도 여전히 악의적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이 2013년 11월 6일 정부의 위헌적 정당 해산 심판 청구안 제출에 항의하는 뜻에서 국회 본청 앞에서 삭발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이 2013년 11월 6일 정부의 위헌적 정당 해산 심판 청구안 제출에 항의하는 뜻에서 국회 본청 앞에서 삭발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어떤?

“이석기 전 의원과 RO 조직이 북 지령에 따라 종북세력을 규합해 통진당을 접수했다고 썼어요. 검찰이 재판과정에서 ‘이석기 의원이 북한과 연계가 없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았음에도, 조선일보는 뻔한 거짓말을 한 거예요.”

-문재인 대통령은 왜 이석기 전 의원을 사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정말 그 이유가 궁금해요. 과거 같은 상임위(기획재정부) 활동을 하면서 문 대통령의 인권변호사로서의 인품과 의지를 알고 있었고 존경도 했어요. 그래서 대통령이 된 후 민주주의를 훼손한 이전 정권의 과오들에 대해 마땅히 본인 권한 내에서 역할을 하실 줄로 믿었죠.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에요. 많은 사람은 이 전 의원 사면이나 통진당의 명예회복이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이유로 대통령이 정의 실현에 주저하고 있다고 추측하죠. 대통령께 정말 그래도 되는 건지 묻고 싶어요.”

“나와 진보당이 우리 사회에서 시민권을 획득했는가에 의문이 있어요. 문재인 대통령께 묻고 싶어요. 왜 정의 실현에 주저하는지, 정말 그래도 되는 건지..”

김 대표는 “나는 나와 진보당이 우리 사회에서 시민권을 획득했는가에 대해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 시절인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정권을 잡은 후 대통령 임기 4년 동안 관련한 어떤 언급도 없었고, 언론과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통합진보당 당시 겪은 고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8월 13일)돼요. 관련해 ‘회사에 납부할 돈 2400원을 빠뜨려 해고된 버스노동자’와 비교해 비판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더군요.

“유전무죄가 반복되고 있어요. 촛불항쟁 이후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한 정권마저 과거와 다를 바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며, 국민들이 이 나라의 시스템을 뭐라고 생각할지 우려돼요. 부당함이 당연시되는 풍토가 자리매김되지 않을까요? 그에 대한 후과는, 그리고 이후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국가의 기능은 어떻게 작동될 수 있을지 고민되죠. 더구나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들도 특유의 돌려 말하기로 석방에 찬성하는 비겁함을 보였잖아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요.

“김정은 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후 외부의 예상보다 북한이 훨씬 안정화됐다고 봐요. 미국과 관계를 풀어나가는 모습이나 인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도 TV화면으로 보면서 유연하다고 생각했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이 김정은 정권 때 이뤄질 수 있겠다고 기대했어요. 문재인 정부도 그렇게 판단하고 한반도 정책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고 있고요.”

-하지만 김 위원장은 고모부 장성택 처형에 이어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했어요. 북한 내의 인권탄압 문제도 계속 거론되고 있고요.

“남북정상회담이나 문 대통령의 평양 행사 참가 장면들에서 남측 카메라에 담긴 김 위원장은 긍정적인 이미지였어요. 반면 이른바 미국발 외신이나 국정원발 소식으로 들려오는 내용은 너무 달라 어떤 게 진짜 모습인지 저도 궁금해요. 하지만 남북이 적대적으로 살 수는 없으니 서로 최대한 이해하고 맞춰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북한은 비상식적이라는 생각에만 갇혀 있으면 남북 협력을 도모할 수 없으니까요.”.

그는 통진당 해산 후 2년간 인터넷방송과 신문배달을 하고 2016년 12월엔 의정부 골목 귀퉁이에 동네서점도 열었다.

-신문배달과 서점 운영은 생계를 위한 방편이었나요.

“물론 수입도 필요하지만, 건강한 생활인으로서 제 두발로 딱 서서 평범한 시민과 일상적으로 호흡하고, 생명력 있는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재판도 있고 각종 기자회견도 있다 보니 낮에는 일할 수 없었어요. 야간에 할 수 있는 일도 마땅치 않아 새벽시간을 이용한 신문배달을 하게 된 거죠. 돌리고 남은 신문에서 저를 비판하는 보수신문의 사설을 발견하기도 했고요(웃음).”

-서점은요.

“당시 언론에 비친 이미지 때문에 철저히 고립돼 있었어요. SNS에 올린 제 글에 지인들이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어려워했어요. 고립에서 어떻게든 탈피하고 싶어 사람들과 접촉이 잦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동네서점을 연 거예요. 제가 누군지 모르고 찾아온 손님들이 나중에서야 알고 굉장히 친해지는, 제겐 꿈처럼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과 내가 격의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데, 그다지 특별한 사람이 아닌데, 왜 이런 시간을 못 누렸을까 하는….”

돌연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곤 결국 눈물을 쏟았다. 오랜 세월 애써 꾹꾹 눌러왔지만, 심적으로 외롭고 힘들던 시간이 불현듯 치고 올라온 것으로 짐작됐다. 잠시 기다렸다가 질문을 이어갔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가 지난 8월 10일 인터뷰 도중 과거를 회상하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가 지난 8월 10일 인터뷰 도중 과거를 회상하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민주당과의 단일화는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아요. 현 정권의 한계를 지적하며 출마하면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며 중도 사퇴하는 일은 없습니다.”

-서점에선 책만 팔았나요.

“헌법이나 역사책을 읽고 같이 공부를 하고 동화책 모임, 고전읽기 모임, 시 쓰기, 콘서트도 열었어요. 첫해 회원만 1000명이 넘었어요. 평소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구현할 수 있도록 동네 청년들과 단골손님들께 공간을 제공한 거예요.”

-2017년 민중당 대변인을 맡은 후 서점은 문을 닫았겠군요.

“아니에요. 당시 서점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대해 서점 손님들께 양해를 구했더니, 대책회의를 하자고 하셨어요. 10여명이 모인 그 회의에서 조합비 50만원씩 내고 서점을 협동조합으로 만들자는 결정이 내려졌죠. 지금 그 서점은 마을기업이 됐어요. 너무 고마운 분들이죠.”

-서점을 하는 동안 수익성은 괜찮았습니까.

“완전 힘들었죠(웃음). 거의 수입이 없었으니까.”

-시댁이 의정부의 300평의 대저택에 외제차 등 고급 승용차가 3대더라는 언론보도가 있던데….

“가짜뉴스예요. 시부모님이 사신 곳은 그린벨트였고, 건물은 30평 정도였어요. 거기서 고추농사도 지으셨어요. 누구 차였는지 알 수 없으나 외제차는 단 한대도 없었고요. 나중에 해당 기사를 쓴 기자가 의원실로 찾아와 오보에 대해 사과했어요.”

-2010년에 결혼한 남편 최호현씨는 2012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는데, 여전히 학업 중인가요.

“지금 뉘른베르크대학 법학 박사 과정에 있어요. 코로나19가 없었으면 조금 더 빨리 돌아왔을 수도 있었는데 거기도 상황이 굉장히 심각해 학업 진척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요.”

-유학비는 어떻게 충당하나요.

“독일은 학비가 무료이고, 학생들은 교통비도 없고 집값도 굉장히 저렴해 다 본인이 현지에서 벌어서 살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보수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진보진영의 단일화 요구가 있어도 끝까지 완주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명쾌했다. 그는 “민주당과의 단일화는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현 정권의 한계를 지적하며 출마하면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며 중도 사퇴하는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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