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볶음밥이 ‘양식’이라고?···밥상머리 요긴 할 식문화사

임지선 기자

배달과 식탁 문화의 확산 속에

‘밥상’이란 말도 모르는 현 세대

음식·수저·주방 도구에 깃든

역사·유래·문화의 ‘한상차림’

‘김치볶음밥은 언제부터 한국 음식이라고 생각했을까.’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 저자는 프라이팬과 식용유가 대중화된 시기를 이야기하면서 ‘볶음밥의 한국 국적 취득’ 시기를 1970년대로 말한다. 픽사베이

‘김치볶음밥은 언제부터 한국 음식이라고 생각했을까.’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 저자는 프라이팬과 식용유가 대중화된 시기를 이야기하면서 ‘볶음밥의 한국 국적 취득’ 시기를 1970년대로 말한다. 픽사베이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

장원철 지음 | 글항아리 | 376쪽 | 1만9800원

요즘 아이들에게 밥상이 그려진 그림책을 보여주면 낯설어한다. 쟁반을 머리에 이고 배달하는 모습이 그려진 책을 보면 묘기를 부리는 줄 안다. 대부분 식탁에서 식사하고, 배달은 오토바이로 하는 시대에 사는 요즘 아이들에게 ‘밥상’ ‘쟁반’은 낯선 옛날 물건이다.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는 한국의 전통적 밥상은 머리를 집어넣으면 상다리가 어깨에 닿아 균형을 잡기 쉬웠고, 옆으로는 손잡이 구멍을 내 음식을 안정적으로 나를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밥상에도 과학이 숨어 있는 셈. 저자는 요식업 사장들의 말을 인용하며 “어쩌면 우리는 밥상이 사라지고 있음을 목도하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밥상을 날라본 적이 없는 디지털 세대들은 물컵 나르는 작은 일도 처음에는 균형을 잡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이 책에 호기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저자 장원철은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몇 권의 책을 쓰고 번역하다 먹고살기 위해 장사를 시작한다. 남대문 그릇도매상가 C동 3층에서 2012년부터 5년간 업소용 그릇과 주방도구 등을 팔았다. 그릇 말고도 냉장고, 가스레인지 등 음식점이 필요한 온갖 물건을 다뤘다. 나무도마를 앞에 두고 인생사를 논하는 인문학도가 ‘장사꾼’으로 살기는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장사를 접은 저자는 그릇과 주방도구들을 마주하며 얻은 지식과 경험, 그리고 박물관과 도서관 등에서 꺼내온 다양한 이야기들을 묶어냈다. 장사 5년과 집필 5년이 합쳐진 결과물이 이 책이다.

책은 호기심 어린 질문들로 시작해 사실관계와 역사적 기록, 저자의 상상을 더해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틈새로 엿본 부엌의 작은 역사 문화책이다.

‘김치볶음밥은 언제부터 먹었을까’ 대목에선 김치볶음밥이 처음부터 ‘국산’은 아니었다는 사실부터 흥미롭다. 볶음밥이 물 건너온 음식이라는 것. 저자는 1924년 책 <조선무쌍 신식요리제법>에선 볶음밥을 양식으로 봤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당시 한반도에는 프라이팬이 없었다. 참기름·들기름은 귀했고 식용유가 흔하지 않았다. 프라이팬이 만들어질 여건이 아니었다.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썼던 건 잔칫날 등 극히 한정적 시기였을 뿐이다. 올리브유가 풍부했던 유럽 대륙에서는 프라이팬이 일찍 출현했다. 저자는 1945년 ‘매일신보’에 ‘후라이판은 이러케 다룰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다며 이 시기가 되어서야 한반도 땅에 프라이팬이 꽤 보급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즈음 차가운 밥을 이용해 중국식 볶음밥을 하는 요리법도 소개된다. 1969년 이후 오뚜기, 해표 같은 식품회사가 설립되면서 대두를 사용한 콩기름이 대량으로 시장에 나온다. 같은 해 한국알루미늄제련공장이 만들어지고 알루미늄에 에나멜 코팅을 한 프라이팬도 대량 생산된다. 저자는 “밥상에 손쉽게 볶음 김치를 올려놓을 수 있는 기본 준비”가 된 시기라고 했다. “볶음밥 귀화”라는 표현도 재미있다.

5년간 주방도구를 팔면서 매일 마주했을 젓가락의 길이와 무게를 한·중·일 음식문화와 곁들여 설명하는 대목은 비교문화학에 가깝다. 중국 젓가락은 위아래가 뭉툭하며 길이는 25~27㎝, 무게는 멜라민 수지로 만든 것이 20g이다. 일본은 아래가 뾰족하며 20~22㎝, 19g이다. 한식 젓가락은 길이로 치면 23~24㎝로 딱 중간이다. 식당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스테인리스 젓가락의 무게가 43g이다. 중국은 반찬을 가운데 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손을 뻗어야 하니 젓가락이 길어야 했고, 일본은 자기 앞에 놓인 상에서 먹기 때문에 젓가락이 짧아도 무방했던 것. 한식은 딱 그 중간에 위치해 있다. 둘러앉아 먹되 밥과 국은 자기 것이다. 반찬은 다양하다. 전이나 고기처럼 무거운 것, 잘 부서지는 생선, 미끄러운 콩자반도 집어야 한다.

옛말에 ‘밥숟갈 놓는다’는 표현이 젓가락의 무게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사유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략 여든을 넘게 되면 숟가락으로 찬을 떠 올리는 경우가 잦아진다. 큰 근육을 사용하기에 이편이 먹기에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43그램의 무게가 버거운 날이 찾아온다.” 저자는 17~19g짜리 스테인리스 진공 젓가락을 보이며 ‘노인을 위한 젓가락’이 있다고 알려준다.

책은 인류문화사도 담고 있다. 주방도구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건 무엇보다도 ‘칼’이다. 저자는 “고고학자들은 석기시기에 발견된 돌칼, 돌도끼를 사냥도구, 전쟁도구라고 표현하지 주방도구라고 하지 않는다”면서도 당시 돌칼로 고기를 잘랐을 것이라는 상상을 더한다.

1896년 맥클루어의 ‘완벽한 진동식 식기세척기’ 광고. 글항아리

1896년 맥클루어의 ‘완벽한 진동식 식기세척기’ 광고. 글항아리

프라이팬으로 유명한 회사 테팔의 설립에 1943년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 연구진이 일조한 이야기, 최초의 쓸 만한 식기세척기는 하인까지 부리던 어느 귀족이 직접 설거지에 나서면서 특허를 따내 만들어졌다는 일화 등은 지적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다.

책은 주방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여성의 숨겨진 가사노동도 상당 부분 다룬다. 오믈렛 1개에 계란 12개를 넣어달라고 했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으며 체포된 어느 프랑스 혁명가, 임진왜란 피란 생활 중에 ‘밥 지을 줄 아는 여자’가 모두 ‘학질’로 앓아누워 밥을 못 먹었다는 조선시대 기록 등은 ‘한 편의 코미디’이다. 다만 저자는 “양성평등의 시작은 부엌이고 끝도 부엌”이라며 남성들이 주방에 들어가는 횟수부터 늘리자고 말하지만 책의 일부분에서 성역할 고정관념이 살짝 배어난다. “(어떤 가사노동에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강심장) 이런 한국 남자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일하는 시간’이 여성보다 2.4시간 더 길다는 점이다. (중략) 남자가 부엌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먼저 일하는 시간부터 줄어야 할 것” “식판에 잔반을 잔뜩 남기는 사람은 음식량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엄마를 도와 설거지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 등의 언급은 ‘딱 한 스푼’만큼 아쉽다.

문장의 맛이 살아 있는 책이다. ‘살육의 순간을 끊임없이 목도하며 폭력의 상흔을 제 몸에 간직하는 것이 도마’라는 철학적 사유와 재미난 역사적 사실까지 얻어갈 수 있다.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 글항아리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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