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꿈을 꿔야…꿈꾸고 행동하는 만큼 그 미래는 넓어질 것”

최민영 논설위원

천창수 울산교육감

천창수 울산교육감이 지난달 21일 울산교육청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교사 출신인 천 교육감은 “최소한 학교 안에서만이라도 배운 대로 실천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천창수 울산교육감이 지난달 21일 울산교육청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교사 출신인 천 교육감은 “최소한 학교 안에서만이라도 배운 대로 실천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1958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사범대 사회교육과 재학 중 유신독재 반대 운동 전력으로 교사 발령을 받지 못하자 1983년 울산 현대중전기에 입사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 당시 노동자대투쟁에 참가하면서 대졸 학력이 드러나 해고됐다. 그 후 영남노동운동연구소를 만들어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다 2002년 교사로 임용된 뒤 19년간 교단에 서며 ‘작은도서관’ 운동을 펼쳤다. 1984년 노옥희 당시 현대공고 교사를 만나 1989년 결혼했다. 최초의 여성·진보성향 울산교육감이 된 노옥희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교육정책 계승을 기치로 내걸고 지난 4월 보궐선거에 출마해 61.9%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학교 위기는 학생·학부모·교사 소통 부재 탓…함께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사별한 아내인 노옥희 전 교육감 뜻 이어받고 더 잘해내는 게 최고의 애도
전국 시·도 교육감 평가서 첫 1위…많이 말하기보다는 많이 듣는 편 선호
노동·교육운동, 개인 존엄성 확대라는 같은 목적…여전히 기여할 게 많아

천창수 울산교육감이 최근 전국 시·도교육감 평가에서 53.4%의 긍정평가로 첫 1위를 차지했다. ‘진보교육의 거목’이던 부인 노옥희 교육감의 갑작스러운 별세 후 지난 4월 보궐선거에 출마해 그 자리를 이은 지 약 반년 만이다. 학교폭력과 교권 추락을 비롯한 현안들이 교육현장에서 터져나오는 현재를 노동운동가이자 교사 출신인 그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달 21일 천 교육감을 울산교육청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평생 지향해온 낮고 조용한 삶을 떠나 부인이 남긴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라는 꿈을 잇기 위해 공직사회에 나선 그는 “교육은 꿈을 꿔야 한다. 그 꿈이 100% 실현되지는 않더라도 꿈꾸고 행동하는 만큼 교육의 미래는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울산교육감으로서는 처음으로 전국 교육감 평가 1위에 올랐습니다.

“1만7000명 울산 교직원들이 구석구석에서 열심히 일한 덕분입니다. 저는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였을 따름인데 좋게 평가해주신 듯합니다. 요즘 최대 현안인 교권 침해 악성민원과 관련, 교육부는 교장 직속 민원대응팀을 새로 만들고 사안을 1차 접수해 교사를 보호하는 방안을 내놨는데, 울산 교사들을 만나 보니 이 경우 교장이 사소한 사안까지 알게 돼 부담스럽고 절차도 복잡해진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교사들이 민원을 1차 처리하도록 권한을 강화하되, 풀기 힘든 사안은 교장에게 보고해 함께 해결하는 방식으로 조율했습니다.”

- 최근 울산시교육청에서 학부모 원탁회의가 두 차례 열렸는데, 악성민원을 ‘학부모들이 중재해야 한다’는 의견이 40.5%로 가장 많았다고요.

“학부모들은 자녀를 위한 자신의 요구가 수업 파행을 빚고 학교 공동체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점을 ‘학부모 교육’을 받고서야 처음 이해하게 됐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교육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학부모들이 ‘내 자녀 중심주의’를 내세우다가 결국 내 아이가 피해를 볼 수 있음도 깨닫게 된다고 하고요. 학급당 약 25명인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다소 일방적인 ‘단톡방’을 넘어 서로 다양한 소통을 이룬다면 학부모들이 충분히 문제를 중재할 수 있을 겁니다. 악성민원이 들어설 자리도 좁아지겠죠. 공동체의 문제는 공동체가 함께 나서 풀어야 합니다.”

- 학교폭력도 무거운 과제입니다.

“어른들 잘못으로 아이들 의식에 ‘돈과 힘이 최고’라는 생각이 깔리면서 학교가 불안한 곳이 됐습니다. 부모에게 학대받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폭력으로 타인을 조종하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학교의 위기는 학생·학부모·교사의 소통 부재로 신뢰가 무너진 데서 기인합니다. 함께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 소통이 변화의 바탕이라고 보시는군요. 교육감으로서 어떻게 소통하십니까.

“저는 말수가 적은 편입니다.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도 9할이 듣기, 1할이 말하기입니다. 토론을 하더라도 말하기가 5할을 넘지 않습니다. 고집부릴 때도 있지만, 저는 제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분들의 좋은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려 노력합니다. 교육감이 모든 일을 다 알 수는 없으니 많이 말하기보다는 많이 듣는 편이 아무래도 낫습니다. 의견을 낼 때는 논리적인 요점만 간략하게 제시하고 상대방이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합니다.”

1980년대 현대중전기 근무 시절.

1980년대 현대중전기 근무 시절.

2002년 교사로 뒤늦게 임용된 천창수.

2002년 교사로 뒤늦게 임용된 천창수.

천창수 교육감은 올해로 울산살이 40년째다. 1983년 현대중전기에 노동자로 취업했으나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 참가하면서 사범대 졸업 학력을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부인인 노옥희 당시 현대공고 수학교사는 1984년 만났다. 교육민주화를 외치다가 노동운동으로 고민을 확장한 해직교사였던 그와 1989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달콤한 신혼은 아니었다. 남편은 결혼 3개월 만에 노동쟁의조정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고, 아내도 수배자 신세가 됐다. 생계는 새벽녘 신문배달 등으로 간신히 꾸리며 두 자녀를 길렀다. 그럼에도 변화를 향한 꿈은 포기한 적이 없었다. 부부의 삶에서 노동과 교육은 언제나 하나로 이어진 고민이었다.

- 2002년 교사 발령을 받고 19년간 평교사로 사회 과목을 가르치셨습니다. 노동과 교육은 어느 지점에서 맞닿습니까.

“노동운동과 교육운동은 ‘개인 존엄성의 확대’라는 같은 목적을 갖습니다. 1980~1990년대 제가 노동운동가로 활동할 당시 노동자들은 적은 임금과 열악한 상황에 놓인 채 자신의 권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함께 연대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사측과 교섭해 임금 인상과 안전한 작업환경을 확보하는 게 필요했지요. 교육운동은 한 아이가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인격으로 성장해 사회문제를 주관적으로 판단하며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게 목적입니다. 사범대 재학 시절 야학 활동 때, 집안이 가난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어린 노동자들을 보면서 이들이 배움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존중하게 하는 교육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현재 비판의 여지도 있겠으나, 더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회가 되기 위해 두 운동 모두 여전히 기여할 게 많다고 믿습니다.”

-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시민 간의 결합과 연결이 이루는 ‘사회적 자본’이 튼튼할 때에야 민주주의 사회가 발전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한국사회는 외환위기 이후 고갈돼가는 사회적 자본과 공동체 회복에 있어서 학교라는 공간이 상당히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학교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자존감을 높이고, 이웃의 존엄성을 인정하도록 하고, 사회에 나아가 함께 잘 사는 태도를 익힌다면 어마어마한 사회적 자본을 이룰 수 있겠지요. 이를 위해서는 학교가 먼저 회복돼야 합니다. 현재 학교 간부급에 한정된 학부모회가 단위 학급의 학부모회 구성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학부모들끼리 소통이 늘면 결과적으로 수업환경이 개선돼 교사로서 보람이 커질 거라 믿고 함께 시도해보자고 설득 중입니다. 너무 꿈같은 얘기라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교육은 꿈을 꿔야 합니다. 그 꿈이 100% 실현되지 않더라도 꿈꾸고 행동하는 만큼 아이들 교육의 미래는 넓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교사 시절의 보람은 무엇입니까.

“교과수업에서 저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스스럼없이 질문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학생들이 민주적인 역량을 갖추는 게 중요했지요. 교사 2년차 때 담임을 맡았던 학생도 기억납니다. 매일 새벽까지 술 마시고 점심께나 등교해서 부모 속을 썩이던 아이였는데요. 하루는 책을 훔치다 걸려서 서점에서 학교로 연락이 왔어요. 제가 가서 싹싹 빌고 학생을 데리고 나와서는 ‘같이 자장면 먹으러 가자’고 했어요. 저도 어릴 때 책 훔친 적이 있다고 말해줬죠. 호되게 혼날 줄 알았던 아이가 별일 아니라는 담임 반응을 보더니 ‘앞으로는 절대 지각 안 하겠다’고 약속하더군요. 무사히 졸업하고 지금은 사업가가 되어 가끔 안부를 물어옵니다.”

2019년 노옥희 울산시교욱감 부부가 울산커플마라톤대회에 참가해 5km 구간을 완주했을 당시 모습. 경상일보 제공

2019년 노옥희 울산시교욱감 부부가 울산커플마라톤대회에 참가해 5km 구간을 완주했을 당시 모습. 경상일보 제공

그는 조용한 외조자였다. 부인 노옥희가 1990년대 전교조 울산지부장을 맡아 고교평준화를 실현하고, 학교급식과 장애인 교육 개선을 위해 뛰고, 2000년대 울산시장 선거에서 두 차례, 총선에서 한 차례 낙선할 때에도 묵묵히 곁을 지켰다. 자리 욕심 없이 평교사로 퇴임한 그가 공직에 나서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 교육감이던 부인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다. 부인은 고질적 부패에 빠져 있던 울산교육을 2018년 취임 이래 청렴 최우수 등급으로 혁신하고, 유치원부터 초·중·고교 전면 무상급식을 도입하고,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의 등굣길을 손잡고 함께했다. 그런 교육감을 잃은 울산 시민사회는 개혁을 이으라며 남편 천창수의 등을 떠밀었다. 반려자를 잃은 상실감에 잠길 틈도 없이 그는 선거운동에 나서 61.9%의 득표율로 당선했다.

- 부인이 일하던 사무실에서 업무를 이어가는 마음이 쉽지만은 않겠습니다.

“처음 교육청에 들어왔을 때 (마음이 힘든) 그런 느낌이 강했지만, 이제는 특별한 느낌 없이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고인의 뜻을 이어받고, 더 잘해내는 게 최고의 애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올해 9월부터 5세 유아 대상 사립유치원 무상교육을 도입하고, 교육감 직속 학교폭력 근절 추진단을 구성하기도 했습니다.”

- 노 전 교육감께서는 카리스마가 대단한 분이어서, 날카로운 질문에 직원들이 보고할 때 식은땀을 흘릴 정도였다고 하대요.

“집에서는 사근사근하고 여린 사람이라 저는 그런 줄 전혀 몰랐어요. 늘 제게 ‘당신 덕분이야’라며 고마워하곤 했습니다. 새내기 교사가 노동운동가로 거듭나는 과정에 저는 조언도 칭찬도 아끼지 않았는데 덕분에 힘과 자신감을 많이 얻게 됐다고 했지요.”

노 전 교육감은 자서전 <이제 다시 시작이다>에서 “(내가)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3자 개입 금지 위반으로 구속됐을 때, 남편의 선배가 ‘노 선생이 면회 기다리더라’며 하지도 않은 얘기를 해 다리를 놓은 것을 계기로 다른 관계로 발전했다”면서 “항상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그의 태도를 보면서 운동을 하면서도 남아 있던 열등감을 극복하고 내 자신을 긍정하는 힘이 생겼다”고 적었다.

- 주변에서 평등부부의 모델로 꼽았다는데, 천 교육감께선 빨래 담당이셨다죠.

“큰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교과서에 ‘빨래는 엄마가 한다’고 써 있는 걸 보고 손을 번쩍 들고는 ‘아닌데요? 빨래는 남자가 하는 건데요?’라고 말해서 교실이 웃음바다가 됐다고 해요. 육아도 월수금, 화목토 이렇게 부부가 격일로 돌아가면서 같이했습니다. 저희 집안이 그리 빛나는 집안이 아니고, 어머니께서 일하러 나가시면 6남매 중 다섯째인 제가 부엌에서 막내 여동생 밥을 챙기면서 커서 가사노동에서 남녀 구분을 두지 않는 평등한 관계가 몸에 밴 게 아닌가 싶습니다.”

- 노 전 교육감은 자서전에 “남편을 생각하면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내가 정치하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으면서도 대놓고 반대한 적은 거의 없다”면서 “2010년 울산시장 출마 당시 10%에 못 미치는 득표로 선거비 보전을 못 받아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짊어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저는 노동운동이나 시민단체, 학교 등 자기가 맡은 영역에서 꾸준하게 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아내가 선거 출마, 특히 2018년 교육감으로 출마할 때 반대를 좀 했지요. 제약이 많아 당신이 꿈꿨던 교육철학을 펼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자칫 변절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이 자리를 맡게 되었네요. 많은 이들의 요구를 잘 받아들이면서도 제가 추구하는 교육적인 목표는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균형을 잡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합니다.”

- 교육감으로서는 처음으로 최근 1억원 이상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되셨습니다. 재임 기간 월급 300만원씩 저소득 가정 아동 지원에 쓰인다고요.

“원래 노 전 교육감의 뜻이었어요. 지난해 2기 당선 이후 기부처를 고민하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제가 소원 하나를 들어준 겁니다.”

- 노 전 교육감의 철학인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울산교육’을 이어가면서 ‘배움이 삶이 되는 학교’라는 교육지표를 제시하셨습니다.

“민주주의를 공부한다면 학교의 의사결정 경험은 민주적이어야 하고, 환경교육을 한다면 재활용 분리배출을 비롯한 관련 경험도 충분해야 합니다. 공부가 지식으로만 머무는 게 아니라 최소한 학교 안에서만이라도 배운 대로 실천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올해 국세 수입 감소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되는데, 교육정책만큼은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인근의 태화강변을 찾았다. 1970년대 울산에 중화학공업단지가 조성됐을 때 폐수로 자정능력을 잃은 강에는 물고기 떼죽음이 예삿일처럼 일어났다. 그러나 학계와 시민들이 태화강 살리기에 나서면서 2019년 십리대숲이 국가정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되살아났다. 꿈을 꾸는 사람들은 지금의 현실을 넘어 다른 가능성을 본다. 조용하고도 끈질긴 이상주의자인 천 교육감은 새로운 교육을 꿈꾸고 있다.

최민영 논설위원

최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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