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김오랑이 끝내 이기길 바란다

김민아 칼럼니스트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서울의 봄>은 실패기다. 반란군은 권력욕으로 이글이글한데 진압군은 시종일관 무기력하다. 전두광 보안사령관(황정민·현실의 전두환)은 떼거리를 몰고다니는데,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정우성·현실의 장태완)은 혼자 전화통만 붙들고 있다.

‘스포일러’인 한국 현대사를 모르는 외국인이 본다 해도 결말을 짐작할 만하다. 영화를 본 관객 465만명(3일 현재)이 단죄하지 못한 역사에 분노하는 이유다.

단죄하지 못한 역사, 맞다. 전두환·노태우는 잠시 감옥에 다녀왔을 뿐이다. 사면된 뒤 평온한 만년을 보내다 ‘자연사’했다. 노태우는 사후 ‘국가장’ 영예까지 누렸다.

하지만 잊어선 안 될 것이 있다. 지금은 평온했던 만년과 자연사로 기억되지만, 그들은 대법원에서 각각 무기징역(전)과 징역 17년(노)을 확정받은 중죄인이다. 사면은 실정법 차원의 문제일 뿐이다. 반란·내란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시민을 학살한 범죄 사실은 역사에 영원히 기록된다. 그들을 형사처벌한 의미는 가볍지 않다.

1996년 서울지법에서 전두환(오른쪽), 노태우(가운데) 피고인 등이 군사반란, 내란 등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1996년 서울지법에서 전두환(오른쪽), 노태우(가운데) 피고인 등이 군사반란, 내란 등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1995~1996년 법원과 검찰을 취재했다. 푸른 수의(囚衣) 차림의 전두환·노태우가 서울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 나란히 선 모습을 보았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온갖 영화를 누리던 하나회 정치군인들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기까지는 지난한 투쟁이 있었다. 16년이 넘는 시간, 수많은 시민이 흘린 피와 땀이 ‘미완의 단죄’에 가려져선 안 된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런 시민들 가운데 한 명이 영화에서 이태신으로 등장하는 장태완 장군이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며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장 장군을 비롯한 12·12 피해자 22명은 전두환·노태우 등 38명을 군사반란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듬해에는 정동년씨 등 5·18 피해자 322명이 전·노 등을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그러나 12·12에 대해선 기소유예하고, 5·18은 ‘공소권 없음’ 처분했다. 이른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웠다. 1차 단죄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서울의 봄>에는 전두광이 반란군 지휘부에 ‘쿠데타 성공보수’를 공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저 인간들,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봐 그거 묵을라꼬 있는 기거든. 그 떡고물 주딩이에 이빠이(가득) 쳐넣어줄 기야.”

현실의 전두환은 약속을 지킨다. 반란세력은 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공기업 사장, 국회의원, 심지어 대통령까지 된다. 그리고 모두 부자가 된다. 가장 부유해진 이는 물론 청와대에 차례로 입성한 전두환·노태우다.

두 사람은 결국 돈 때문에 꼬리가 잡힌다. 1995년 10월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이 노태우 비자금 4000억원설을 폭로한 것이다. 이를 기폭제로 12·12, 5·18 재수사가 시작된다.

대법원은 1997년 4월 전두환·노태우 등의 유죄를 확정하며 “폭력에 의해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도 용인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는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는 차원을 넘어 ‘모든 쿠데타는 처벌돼야 한다’는 윤리적 언명이었다. 2차 단죄 시도로 한국 사회는 정의 실현에 한 발짝 다가섰다.

1993년 권노갑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이 12·12 군사반란 때 반란군에 맞섰던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왼쪽)과 김진기 전 육군본부 헌병감(오른쪽)으로부터 증언을 공개 청취하고 있다.

1993년 권노갑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이 12·12 군사반란 때 반란군에 맞섰던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왼쪽)과 김진기 전 육군본부 헌병감(오른쪽)으로부터 증언을 공개 청취하고 있다.

<서울의 봄>에 매우 짧게 등장하지만 그만큼 더 빛나는 이가 있다. 진압군 측 공수혁 특전사령관(정만식) 비서실장이던 오진호 소령(정해인)이다. 오 소령의 모델은 12·12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불법 체포하려는 반란군에 맞서다 전사한 김오랑 소령(1990년 중령 추서)이다.

영화에서 오 소령은 자신을 두고 떠나라는 사령관의 명령에 “혼자 계시면 적적하시지 않겠습니까”라며 ‘불복’한다. 김오랑의 죽음을 알면서도 그 순간 오진호가 이기기를 바랐다.

영화를 만든 김성수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끝까지 맞섰던 군인들이 있었기에 훗날 반란죄가 성립될 수 있었습니다.”

배우 정우성은 이태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거악을 물리치기 위한 정의의 히어로가 아닙니다. 굉장히 나약해요. 다만 (위기를) 정면에 마주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외면하고 도망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그런 무기력함을 뚫고 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이태신인 것이죠”(성시경채널).

2021년 11월 사망한 전두환은 여전히 서울 연희동 집에 (유해로) 머물고 있다. 그에게 내려진 가장 큰 형벌은 죽어도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단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완성돼야 한다. ‘무기력함’을 뚫고 나가려 했던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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