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김홍일 한동훈, ‘검사 삼형제’ 정권

김민아 칼럼니스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9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9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정됐다. 이로써 ‘검사 삼형제 정권’이 완성됐다. 3형제의 맏형은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둘째는 윤석열 대통령, 막내는 한 전 장관이다. 검찰 재직 시절 윤 대통령은 네 살 위 김 후보자를 ‘형’으로, 한 전 장관은 열세 살 위 윤 대통령을 ‘석열이 형’으로 불렀다고 한다.

‘호형호제’ 하던 사람들끼리 대통령·집권여당 대표·방송통신 총수를 나눠 갖게 된 것이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이런 사례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검사 삼형제는 민주공화국이 지켜온 상식과 관행을 파괴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방통위원장으로 지명된 지 2주 이상 흐르고 국회 인사청문회가 코앞인데도 권익위원장직을 내려놓지 않았다. 권익위원장 자격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방통위원장 후보자 자격으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출근했다. 헌정사상 최초의 ‘양다리’ 장관급이다.

그러더니 성탄절 연휴 전날(22일) 오후 ‘비공개’ 이임식을 했다. 이임식 일정을 언론에 공개하지도, 이임사 전문을 공개하지도 않았다. 장관급 공직을 이렇게 가벼이 여겨도 되나.

한 전 장관도 지난 21일 비대위원장 직을 수락하고서야 사표를 냈다. 비대위원장은 공직선거법에 의한 선출직은 아니지만, 명실상부한 정치인이다. 모든 장관이 그러하지만 특히 법무부 장관은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이다. 단 1초라도 먼저 사표부터 내고, 비대위원장 직을 수락하는 것이 상식이다. 한 전 장관은 전국을 돌며 사실상의 ‘사전선거운동’을 한다고 비판받아온 터다.

한 전 장관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인해, 법무부 장관이 추천위원에 포함돼 있는 사법·행정부 인사에 연쇄적 차질도 우려되는 형국이다. 이게 한 전 장관이 공직생활에서 추구해왔다는 ‘공공선’인가.

김홍일 전 국민권익위원장(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김홍일 전 국민권익위원장(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검사 삼형제는 법조인이다. ‘외관의 공정성’이란 개념을 잘 알 것이다. 사법·수사·규제기관은 실제로 공정해야 함은 물론, 겉으로 보기에도 공정해 보여야 한다는 원칙을 뜻한다. 방통위원회 홈페이지는 위원회의 설립목적으로 ‘방송의 독립성 보장’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 보장’ 등을 명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설렁탕집 섞박지만 봐도 김홍일 선배가 떠오른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형님’이 방송의 독립성과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외친들 누가 믿겠는가. 외관의 공정성은 깨진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이 가장 비판받는 대목은 ‘용산’의 거수기, ‘용산’의 여의도출장소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동생’이 “누구를 맹종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수직적 당정관계 변화를 약속한들, 누가 믿겠는가. 국민의힘은 정당이니, 외관의 공정성 따위는 상관없다고 할 텐가.

윤 대통령이 이런 비판을 예상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두 사람을 기어코 요직에 앉힌 것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민주공화국의 권력은 ‘칼(법치·형사사법)’과 ‘펜(여론·미디어)’에서 나온다.

윤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칼과 펜을 양손에 쥐었다. 칼은 충성스런 막내 한동훈이, 펜은 믿음직한 맏형 김홍일이 쥐고 흔들 것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 여당 대표는 검찰과 사실상 한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한 전 장관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안을 “악법”으로,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몰카 공작”으로 명명했다. 여당과 검찰에 ‘교시’를 내린 것이다. 악법인 이유는 특검법안에 ‘수사 상황 생중계’가 들어있어서라는데, 윤 대통령과 한 전 장관이 참여했던 ‘국정농단’ 특검에도 똑같은 조항이 있었다.

김홍일의 펜이 어떻게 쓰일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조폭 수사의 대부’ 출신 방통위원장이 한국 미디어산업의 미래 따위에 관심을 둘 것 같지는 않다.

네포티즘(nepotism·족벌측근정치)의 폐해는 공적 권력의 사유화다. 국가의 중대 정책·현안이 공적 회의체 등 시스템 대신, 술자리·밥자리·전화 통화·텔레그램 같은 사적 접촉을 통해 결정된다. 절차의 민주성에서만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더 나쁜 건, 동종교배가 갖는 원초적 위험성이다. 앉은 자리가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동종교배는 집단사고를 낳게 마련이다. 집단사고는 불편한 ‘사실’을 외면하고 위시풀 싱킹(wishful thinking·희망적 관측)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가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이고,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이고, 새만금 잼버리의 난맥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4일 밤 서울 혜화동 성당에서 열린 성탄대축일 미사에 참석해 주임신부의 소개에 따라 신도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4일 밤 서울 혜화동 성당에서 열린 성탄대축일 미사에 참석해 주임신부의 소개에 따라 신도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1000만 영화로 등극한 <서울의 봄>에는 전두광(황정민)이 막 하나회에 가입한 장교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전두광은 자기 의자에 앉아보라 권하며 말한다. “이제부터 자네는 나야. 나는 자네고.” 반란을 모의하는 하나회 일당은 처음엔 “사령관님” “장군님” 하고 부르지만 결국엔 “형님” “동생”이다.

1980년 5월 ‘서울의 봄’ 시절, 서울대 법대생 윤석열은 12·12 관련자들에 대한 모의재판에서 재판장을 맡아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2021년 7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내용). 그런 윤 대통령이 지금 형님·동생에 의존해 민주공화국을 ‘검찰공화국’으로, 국민의힘을 “용산의힘”(김웅 의원 표현)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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