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빈곤 직시하고 희망·연대로···“어려운 물음을 공유”한 ‘올해의 책 10권’

김종목 기자    이영경 기자
지난 18일 타계한 디아스포라 작가 서경식은 늘 현실에 어린 고통을 직시했다. 경향신문 ‘책과 삶’ 팀 선정 ‘올해의 책’들도 고통을 똑바로 들여다본다.
 지금 여기 한국에 관한 책인 <가족 각본>은 가족제도에 숨은 차별을 좇아간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빈곤 대물림을 겪은 청소년들을 조명한다.
 <포스터로 본 일제강점기 전체사>는 일제강점기 포스터에서 폭력과 착취의 역사를 읽어낸다. 소설 <잃어버린 사람>은 ‘1947년 9월16일 부산’이란 시공간에서 여성, 어린이, 징용 노동자의 가난과 수난을 그린다.
 집단 강간 살해 사건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폭력·억압의 근원을 찾으려는 소설 <사소한 일>도 머리기사로 썼다. 이후 ‘필화’가 된 소설이다.
 ‘천골무형성증’을 앓는 장애인 학자가 배제와 고립을 뚫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을 쓴 게 <이지 뷰티>다.
 <어머니의 기원>은 선의와 희생으로 덧씌워진 모성의 참뜻과 여성 차별의 근원을 찾아가는 에세이집이다. 흑인 에이젠더 여성 물리학자가 과학계의 소수자 차별과 배제에 대해 쓴 게 <나의 사랑스럽고 불평등한 코스모스>다.
 시집 <서로의 우는 소리를 배운 건 우연이었을까>는 파괴와 훼손, 육식에 희생되는 비인간 동물의 고통에 주목한다. <지구의 마지막 숲을 걷다>는 기후위기 속 인간과 공생하는 숲의 의미를 다룬다.
 이 책들은 읽기 힘들고 무거울 수 있다. 서경식이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에서 강조한 “어려운 물음을 공유하는 우리”를 떠올려본다. 책들은 고통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다. 연대, 공생, 희망, 대안도 이야기한다. 직시했기에 나온 말들이다.
김종목·이영경 기자 jomo@kyunghyang.com

경향신문 ‘책과 삶’ 팀 선정 올해의 책들. 김종목 기자, 촬영 협조 교보문고

경향신문 ‘책과 삶’ 팀 선정 올해의 책들. 김종목 기자, 촬영 협조 교보문고

가족 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일상 속 숨겨진 혐오와 차별을 생생하게 드러냈던 저자가 이번엔 한국의 ‘가족제도’를 해부한다. 가족제도 안에 내포된 차별과 배제를 성소수자 이슈가 만들어내는 균열을 좇아 추적한다.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차별금지법 반대 슬로건이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며느리’가 남편과 시부모의 지배를 받는 가족 내 ‘직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출생을 우려하면서도 ‘출생의 자격’은 엄격히 따져 비혼출산에 낙인찍고, 혼혈아를 해외입양 보내고 장애인에게 불임시술을 해온 역사를 꼬집는다.

가족제도와 긴밀히 연계된 복지제도, 인권 등의 문제를 유기적으로 엮어 설명한다. 풍부한 연구와 판례, 역사를 따라가다보면 가족제도가 한국 사회의 어떤 부분을 ‘꽉 막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인다. 분석은 날카롭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따스하다. 결국 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권리에 대한 이야기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강지나 지음 | 돌베개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책이다. 현직 교사인 저자는 한국 사회와 교육제도가 관심 갖지 않았던 ‘어떻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10년 동안 빈곤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8명의 이야기를 듣는다. 박사논문을 토대로 쓰인 책은 빈곤 청소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소중한 르포이자, 학자로서 사회 비판과 정책적 제안을 담은 날카로운 보고서다.

책은 ‘가난한 아이’에 덧씌워진, 빈곤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하거나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불쌍한 아이라는 이분법적이고 얄팍한 서사를 해체한다. 이들이 처한 상황과 고민, 사회적 자원을 이용하는 방법과 대응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빈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역량의 박탈이다.” 책에 등장하는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의 말이 죽비 같다. ‘못 배워서 가난하다는 말’은 이들이 빈곤에 의해 어떻게 역량을 펼칠 기회를 상실하는지를 가려버린다. 빈곤 대물림은 박탈의 경험이 대를 이어 축적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고착되는 과정이며 ‘사회적 살인’이라고 저자는 일갈한다.

포스터로 본 일제강점기 전체사

최규진 지음 | 서해문집 

일제강점기 포스터는 제국주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를 위한 도구였다. 최규진(청암대학교 재일코리안연구소 연구교수)은 일제 포스터를 ‘계몽’ ‘홍보’ ‘사상동원’ ‘전쟁 동원’이라는 네 범주로 나눠 분석한다.

일제는 구미 국가들의 “전쟁을 선전하고 전의를 높이려는, 의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메시지 매체의 성격이 강한 이른바 ‘대전(大戰) 포스터’ ”를 많이 만들었다. 덜 노골적인 포스터에도 지배 이데올로기를 깔았다. 사람들을 전쟁을 위한 ‘인적 자원’으로 여기는 내용의 포스터가 한 예다. 최규진은 ‘유아 사망률 줄이기’ 같은 언뜻 좋아보이는 정책에 숨은 ‘착한 제국주의’ 문제도 분석한다. 당시 수탈과 착취로 시달리던 인민의 고통도 전한다.

학술서다. 주와 참고문헌만 100쪽이다.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는 말의 사용이 천황에게 봉사한다는 뜻의 ‘사봉(仕奉)’이란 말에서 비롯된 걸 찾아낸 건 학술적 성과다. 자본주의 비판서다. 일제 프로파간다는 자본주의 프로파간다와 이어지는 점을 실증한다. 인적 자원은 지금도 쓰는 말이다.

잃어버린 사람

김숨 지음 | 모요사

김숨은 ‘1947년 9월16일 동이 튼 때부터 일몰 후까지 단 하루, 부산’이란 시공간에서 숫자나 집단으로 처리되며 역사에서 가려진 이들을 불러낸다. 일본 열도의 제련소, 탄광, 조선소에 끌려갔던 이들과 그 가족이다. “죽자 살자 살아도 오늘 하루 살기가 힘”든 사람들이다. “부모가 죽었거나, 버렸거나, 부모를 잃어버려서” 갈 데 없는 아이들도 등장한다.

김숨이 주목한 건 여성들의 수난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귀환 뒤 미군 피해자가 됐다. 김숨은 고통의 나날을 선악이나 친일과 반일의 선악 구도로 묘사하지 않는다.

김숨이 이 소설에서 부각한 건 “쪽발이 년” 소릴 듣고 살던 ‘부산의 일본인 여성들’이다. 조선인 남성은 강제징용 희생자이면서도 젠더 문제에서 가해자였다.

김숨이 참혹한 시기 인간의 복잡다단한 내면과 모순을 그려낸 소설이다. 대부분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다. 부산 지역사와 함께 강제징용·위안부·원폭 피해자들의 증언 등을 참조해 썼다.

사소한 일

아다니아 쉬블리 지음·전승희 옮김 | 강

소설 시공간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과 점령, 팔레스타인인 축출 이듬해인 1949년 8월의 네게브 사막이다. 이스라엘 점령군이 사막에서 발견한 소녀 한 명을 집단 강간하고 살해한다. 소설은 살해 25년 뒤인 1974년 8월13일 태어난 ‘나’가 불안과 공포라는 정신적 경계선, 이스라엘 군사 분할 구획과 팔레스타인인 통행 제한이라는 군사적·지리적 경계선을 넘어 집단 강간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점령 내내 이어진 이스라엘의 폭력과 억압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필화’가 된 소설이다.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는 올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자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주최 측은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기습 공격한 직후 시상식을 여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취소했다. 심사위원단 중 일부는 소설이 반유대주의를 표명한다는 이유로 사퇴했다는 전언도 나왔다.

한국 작가 175명은 “시상식 취소를 취소하라”며 항의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인종적 고발보다는 보편적 인도주의가 이 작품의 바탕에 깔린 가장 중요한 주제임을 누구라도 읽어낼 수 있다”고 했다.

이지 뷰티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저자 클로이 쿠퍼 존스에겐 척추와 골반을 연결하는 뼈인 천골(엉치뼈)이 없다. 의학 용어로 ‘천골무형성증(Sacral Agenesis)’이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존스를 빤히 쳐다봤다. “골목길의 이상한 물체” 취급을 받았다. 임신한 뒤에는 “어떤 아이를 낳게 되는데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사람들이 ‘배제의 도끼’를 휘두르는 상황에서 존스는 점차 고립됐다. 존스도 세상에 섞이지 않으려 했다. 홀로 있으며 자신의 완전한 존재를 발견하려 한 것이다.

단절과 고립, 어둠에서 벗어난 계기는 ‘비욘세 콘서트’다. 이 콘서트에서 “무엇인가를 결여하거나, 손쉬운 쾌락”인 ‘쉬운 아름다움(easy beauty)’이 아니라, “시간과 인내와 더 많은 집중을 요구”하는 ‘어려운 아름다움(dificult beauty)’을 발견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상태에 진입하는 능력도 찾았다.

책은 장애학, 철학, 미학에다 여행기, 예술비평을 종횡무진으로 오간다. 세상 사는 아름다움의 뜻을 재발견하도록 이끈다.

경향신문 ‘책과 삶’ 팀 선정 올해의 책들. 김종목 기자, 촬영 협조 교보문고

경향신문 ‘책과 삶’ 팀 선정 올해의 책들. 김종목 기자, 촬영 협조 교보문고

어머니의 기원

시리 허스트베트 지음·김선형 옮김 | 뮤진트리 

미국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시리 허스트베트는 세미나나 독자 모임에 나갈 때마다 남편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신경과학에 대한 작가님의 지식은 남편분에게서 나왔나요?” ‘제2의 버지니아 울프’ 같은 찬사를 들으며 부커상 후보에 오른 작가지만, 사람들은 허스트베트 남편인 소설가 폴 오스터를 떠올렸다.

‘여성’이라는 점 자체가 걸림돌이었다. 대학원 때 백인 남자 가득한 학술 공간에서 “사회 질서와 기존의 위계를 정당화하는 무력의 과시”인 ‘상징적 폭력’을 겪기도 했다.

자신의 경험을 여성 보편의 고통과 이어내 펼친다. ‘무균의 태아’ 같은 남성 가부장의 이데올로기가 이방인, 이민자, 유대인에 대한 배제와 억압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확인한다.

책은 에세이 20편을 실었다. 모성 문제를 두고 가족사와 문화 비평을 결합했다. 그가 중점적으로 분석하는 건 모성이다. 모성은 온기, 선의, 희생이라는 진부하고 감성적 ‘헛소리’로 덧칠된 게 아니라 “좁고 단순하지 않고, 방대하고 복잡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나의 사랑스럽고 불평등한 코스모스

찬다 프레스코드와인스타인 지음·고유경 옮김 | 휴머니스트 

지금껏 보지 못한 과학책이다. 책은 상대성이론과 입자물리학, 우주의 기원과 확장에 관한 논의와 동등한 비중으로 인종차별과 성차별, 식민주의, 파시즘에 대해 말한다.

입자물리학을 연구하는 최초의 흑인 여성 교수인 저자는 하버드대, MIT, 미국 항공우주국(NASA) 등에서 연구했다. 동시에 그는 에이젠더(agender·성별이 없다고 여기는 성 정체성을 지닌 사람)로 성소수자이며, 어머니는 비혼모로 흑인 여성운동가였다. 노동계급으로 자란 그는 과학계 동료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강간 피해자(생존자)다. 그가 쓴 과학책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입자물리학, 천체물리학의 최신 연구 결과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백인 남성 중심의 물리학계에서 이야기되지 않았던 인종차별과 성폭력, 과학의 식민주의를 통렬히 고발하는 내용이 새롭다.

물리학자로서의 열정과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는 신념이 만났을 때 과학, 과학자란 이런 것이란 상을 보여준다. 21세기에 꼭 필요한 과학책이다.

서로의 우는 소리를 배운 건 우연이었을까

이동우 지음 | 창비

이동우 시집에서 고통 겪는 존재는 비인간 동물이다. 그는 동물도감을 보다가 밀렵과 고의 방화로 숲을 위태롭게 오가는 동물을 떠올린다. 동물도감은 파괴와 훼손에 시달리는 생태계를 깨닫고 성찰하는 창이다. 이동우는 인간과 동물, 자연의 고통을 예민하게 파고들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낸다.

기후위기나 동물위기 원인 중 하나는 인간 식탐에서 찾는다. 양떼구름을 보며 “양을 양고기라 부르며/ 뼈에서 그림자까지 발라내는 입들”을 본다. “배달의 민족”이 도착할 때 말 그대로 생살을 찢어내는 참혹한 과정을 거치는 ‘닭’들을 상기한다. 두들겨 맞는 로봇 개와 동물 학대를 연결한다. “로봇을 따라 개가 운다.”

2015년 전태일문학상을 받고 처음으로 낸 이 시집은 제41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으로 뽑혔다. 심사위원단은 “역사적 사건부터 문명적 차원의 고민까지 두루 다루며 상처받기 쉬운 존재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집중 조명했다”고 평했다.

지구의 마지막 숲을 걷다

벤 롤런스 지음·노승영 옮김 | 엘리 

아름답고 동시에 끔찍한 책이다.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극지방의 이질적 풍광으로 우리를 이끄는 기행문인 동시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변화를 다룬 기후·생태 보고서다. 툰드라가 녹아내리면서 순록의 먹이인 지의류는 짓이겨지고 순록은 굶어 죽는다. 영구동토층이 녹아 바다 밑에선 메탄가스가 부글부글 거품을 쏘아올린다. 극지의 툰드라는 더 이상 순백이 아닌 엉성한 초록이다.

스코틀랜드, 노르웨이,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란드 등 북부 지방 여섯 곳을 찾아 지구 최북단 숲 북부한대수림에서 기후변화를 목격한 4년여의 여정을 담았다. 저자는 나무, 숲, 기후, 영구동토대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북극권의 토착민을 만나며 지구온난화가 그 어느 곳보다 격렬한 변화를 일으키는 극지에서 인류의 위태로운 미래를 감지한다.

국제인권감시기구에서 일했던 저자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가뭄과 기후변화로 강제이주당한 모습을 보며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극지를 할퀴는 지구온난화의 모습을 보며 저자는 분쟁지역에서 느낀 공포를 다시금 느낀다. “본능은 내게 달아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디로?” 이 공포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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