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공천 할당제를 생각한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정희진의 낯선 사이]여성 공천 할당제를 생각한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모든 피의자는 공평하게 법률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전두환씨, 아동 성폭력 가해자, 연쇄살인범도 예외가 아니다. 최종 판결까지는 무죄로 간주한다는 원리 역시 분명한 정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 강북을 공천 논란의 주인공인 조수진 변호사 수임 경력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변호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한국미래변호사회가 밝힌 변호사의 성폭력 피의자 변호에 대한 다음과 같은 입장에 동의한다. 한미변은 “변호사 출신 후보가 특정 사건을 수임했다는 이유로 과도한 사회적 비난을 받는 현실에 강한 우려”와 “변호사 윤리 장전은 사건 내용이 비난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가 수임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고 주장했다.

맞는 이야기이지만, 내 질문은 이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변호사의 수임 여부”는 사건 내용에 따라 달라지는가, 아니면 ‘수임료’에 따라 달라지는가. “사건 내용(여기서는 성폭력)”에 대한 판단은 합리적인가?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특정 사건”의 사회적 성격과 그런 사건을 ‘상습적(常習的)으로’ 수임해서 이익을 취하는 경우다. 성폭력 피의자가 돈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도록 결정적 역할을 하는 ‘전문 변호사’는 변호사 윤리 장전과 다른 차원에서 문제시되어야 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조수진 변호사보다 더 심각한 성범죄 피의자를 변호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조수진 변호사가 여성이라서 더 비난받는 것은 아니다.

젠더의 작동은 단순하지 않다. 이번 사건에서 여성 공천 할당제는 여성 인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내부 남성들 간의 권력관계에 활용된 경우다. 그렇기에 여성할당제가 조 변호사 같은 여성에게 적용되어 대다수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면, 할당제가 왜 필요한가라는 근본적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조수진 변호사는 자진 사퇴 형식을 취했지만,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조카 ‘데이트폭력’ 변호 사건이 재소환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같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이 대표의 경우 ‘가난한 집안의 어쩔 수 없는’ 친척의 변호였고 한 번이었다. 조수진 변호사는 수차례에 걸쳐 죄질이 나쁜 성폭력 혐의자를 변호했으며 변호 내용도 문제였다. 성폭력 피의자를 위한 대응 요령까지 영업 전략으로 제시했으니, 동료 변호사들의 말대로 “보수적인 남성 변호사도 그 정도까지 하지는 않는다”.

여성 할당제가 반인권적일 때

민주당이 국회의원 후보자로서 모든 결격 사유를 ‘빠짐없이 갖춘’ 정봉주 전 의원을 대신해 박용진 현 의원을 두 번째 낙천시킬 상대의 가장 확실한 조건은 ‘여성’ 후보여야만 했다. 조수진 변호사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박용진 의원 대신 후보가 된 현실은, 남성의 필요에 의한 여성할당제의 결정판이다.

주지하다시피 여성할당제는 국회의원 및 시도의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의 30% 이상을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명시되어 있으나, 정당들이 법을 위반해도 처벌할 조항이 없다. 이에 2002년 3월 개정된 선거법(현 공직선거법)에 따라 여야가 광역의회 비례대표의 50%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도록 의무화했으며 지역구 공천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권장했다.

평소와 달리 이 권장 사항을 ‘충실히 이행한’ 민주당은 “박용진 30% 감점, 조수진 25% 가산점”에다 지역구 후보를 전국구 당원이 뽑는 초유의 반칙을 통해 조수진 후보를 공천했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그의 수임 경력으로 인해 “길에서 주운 배지”는 다른 이가 가져가게 되었다.

조수진 변호사는 성폭력 가해자 변론 방식뿐 아니라 자질 논란에도 휩싸였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투표도 못하는 ‘벼락 공천’을 당연시했고,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SNS를 통해 후보 사퇴를 발표했다. 박용진 의원에게 “당을 위해 밀알이 돼라”고 말하는 등 전 과정에서 부적절한 처신을 보여주었다.

인권 변호사를 자처한 조수진 변호사는 최근까지(2020~2022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총장을 지냈다. 민변 내부에서도 회원 탈퇴 움직임이 있을 만큼, 이런 사람이 어떻게 민변 살림을 총괄할 수 있었는지 민변의 검증 장치도 민주당만큼이나 허술한 듯하다. 같은 당 세종갑 후보였다가 갭 투자 문제로 공천이 취소된 이영선 변호사 역시 2012년부터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녹색정의당은 지난달 29일 김혜란 국민의힘 춘천·철원·화천·양구 갑 후보가 성폭력 가해자 변호 이력으로 논란이 되자, 국민의힘을 향해 김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 김 후보는 성폭력상담소 운영위원 경력이 있다.

조수진 변호사도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위원이었다. ‘여성 변호사=여성 인권, 성폭력 전문가’라는 인식은 생물학적 여성은 저절로 여성주의자가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만큼 여성주의 정치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다(조수진 변호사의 사퇴에 대해 민변은 “변론 과정에서 피해자의 존엄성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경우 ‘성실한 변론 수행’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며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조수진 변호사의 수임 내용에 대해서는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와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 여성학자 권김현영의 정확한 분석과 비판이 있었다. 성폭력에 대한 여성주의적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감했다.

특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의 “여성 후보 가산제도는 국회 여성 과소 대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여성 인권 활동가가 노력한 결과물이지, 성폭력 피의자 전문 변호사 입신을 위한 디딤돌이 아니다”라는 입장은 ‘여성계’ 전체의 성찰을 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할당제, 권리 추구에서 책임으로

나는 이번 사건의 핵심이 여성할당제의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회적 소수자·약자 할당제를 포함해서, 국회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여성할당제는 더욱 제고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성할당제가 여성의 삶에 대한 이해가 없고 인권 의식도 없는 여성이 단지 생물학적 이유만으로, 직능단체 대표나 ‘법조인+시민단체 경력자’들이 주로 공천된다면 이번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

‘예전에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면, 당대는 그 현상은 여전하되, 여성들 간의 계급 차이가 벌어지면서 사회적 약자 우대 정책이 부적절한 여성 시민에게 그 대표성이 부여되고 있다. 문제는 여성이 아니라 ‘어떤 여성’인가이고 그것은 누가 판단하는가이다.

당대표의 ‘정적’을 확실히 떨어뜨리기 위해 여성 우대가 필요하다면, 그런 할당제는 존재 의미가 없다. 앞서 말한 대로 이번 조수진 변호사 공천은 민주당 내 남성 정치의 메커니즘 속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여성이 할당의 ‘특혜’를 받은 사건으로, 여성 공천 할당제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수진 변호사의 경우 그의 변호 활동이 워낙 ‘쎄서’ 거대 정당의 옹호에도 불구하고 낙천될 수 있었다.

미국의 여성주의 평화학자 베티 리어든은 이미 1985년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에서 여성들 간의 계급 차이가 심한 ‘제3세계’(지금은 신자유주의 통치체제)에서, 적절하지 않은 여성에게 과도한 특혜를 주는 것은 같은 사회의 여성들에게 해로울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성주의도, 여성주의에 대한 인식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당연히 여성들 중에도 극우주의자가 있고, 부패한 이들이 있다. 이 중에서 어떤 여성이 대표성을 가질 것인가는 그 사회의 역량에 따른 판단에 달려 있다.

조수진 변호사 사태는 시대적 증후이다. 지난 40여년간 한국의 여성주의는 남성과의 평등을 주장하며 여성의 사회 진출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남성 중심적 사회구조의 변화 없이, 여성이 불리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성보다 더 지독한 명예 남성이 되어야 했다.

여성주의는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이지,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다. 일단, ‘어떤 남성’과 같아질 것인가가 논쟁거리다. 이제까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당해왔다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반인권적 활동이 은폐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여성에게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남녀 모두 권리 주장보다 책임과 배려가 더 중요한 돌봄의 시대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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